군부 상징물도 라벨 전면에 인쇄…야당·인권단체 반발
제작자 "정치적 함의 없다…개인적인 계획에 따라 출시"
칠레 '쿠데타 50주년' 와인 시판 논란…피노체트 독재 향수?
남미 칠레에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15∼2006)의 군부 쿠데타 50주년을 기념하는 와인이 출시돼, 논란이 일고 있다.

15일(현지시간) 24오라스와 비오비오칠레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최근 칠레에서는 '민족해방'이라는 이름의 한정판 와인이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다.

소셜미디어 등에 공유된 사진을 보면 칠레 포도 품종인 카르메네르로 만든 이 와인에는 일반적으로 표기되는 양조장(와이너리) 이름이 빠져 있다.

대신, 1973년 9월 11일 쿠데타를 일으켜 살바도르 아옌데 당시 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차지한 피노체트를 비롯해 당시 쿠데타 주역들의 거수경례 사진이 붙어 있다.

'역사가 우리의 과업을 웅변한다.

그 무엇도 이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때가 승리의 시간이 되리라'라는, 쿠데타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는 피노체트의 유명한 문구도 라벨에 담았다.

이른바 '자유의 천사'라고 부르는 피노체트 쿠데타 상징물 이미지도 전면에 부각해 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더해 육·해·공군과 경찰 상징 표식도 넣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판매되는 이 와인은 전체적으로 피노체트를 추앙하고 쿠데타를 옹호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고 현지 매체는 보도했다.

24오라스는 이 와인 제작자가 특정 집단이 아닌 개인이라고 전했다.

칠레 '쿠데타 50주년' 와인 시판 논란…피노체트 독재 향수?
제작자로 알려진 호세 루이스 레온 변호사는 24오라스 인터뷰에서 "어떤 정치적 함의도 없는, 순전히 개인적인 계획에 따라 출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칠레 정치권과 인권사회단체에서는 시판돼서는 안 되는 제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사회융합당 소속 로레나 프라이스 하원의원은 "쿠데타 당시 여러 피해를 본 희생자와 그 가족에 대한 배려가 없는 행위"라며 "우리가 수십년 전에 경험한 것에 대한 이해와 존경이 부족한 데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회주의 공산당 지도자였던 왈도 피사로의 딸, 로레나 피사로 하원의원 역시 "너무 잔인하다"며 "문제는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비전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왈도 피사로는 1976년 정보요원들에 납치돼 여전히 '실종' 상태다.

칠레 인권단체 역시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와인 출시를 성토하는 반응을 보인다고 비오비오칠레는 보도했다.

칠레 정치권에서는 이 와인병에 쓰인 군 표식이 무단으로 사용된 정황이 있는 만큼, 법적 조처를 할 것을 마야 페르난데스 아옌데 국방부 장관에게 요구했다.

마야 페르난데스 아옌데 장관은 피노체트에 의해 축출된 살바도르 아옌데의 손녀다.

피노체트는 1973년 쿠데타 이후 1990년까지 17년간 집권하며 독재정치를 했다.

이 기간 칠레에선 반체제 인사 등 3천여 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고문 등 인권탄압도 만연했다.

다만, 이 시기에 칠레는 유례 없는 경제 발전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피노체트에 대한 칠레 내부 평가는 크게 엇갈리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