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큰손'된 한국계 VC "한국인 창업자, 유능하지만 약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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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희 미국 스톰벤처스 대표 인터뷰
24년째 실리콘밸리 창업에 힘 보탠 한인
컴투스, 블라인드 등 韓 IT 기업에도 투자
"클라우드와 AI 접목한 기업이 성공할 것"
24년째 실리콘밸리 창업에 힘 보탠 한인
컴투스, 블라인드 등 韓 IT 기업에도 투자
"클라우드와 AI 접목한 기업이 성공할 것"
“한국의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들은 비전을 남들에게 설득하는 데에 약한 편입니다. 회사 규모가 임직원 100명 이상으로 커지면 가장 중요한 역량이 이 ‘비전 설득력’입니다.”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오렌지플래닛 사무실에서 만난 남태희 스톰벤처스 대표가 이같이 말했다. 남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서 이름을 날린 대표적인 한인 투자전문가로 꼽힌다. 2000년 투자전문사인 스톰벤처스를 설립해 200여개 기업에 투자했다. 국내 기업인 컴투스, 블라인드 등도 이 회사에서 자금을 수혈했다.
남 대표는 실리콘밸리 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대부’로 불린다. 5살 때 의대 교수였던 아버지와 함께 세인트루이스로 이민 간 그는 하버드대 응용수학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받은 뒤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 생활을 한 인재다. 그는 스타트업들의 법률 자문을 맡았던 경험을 살려 2000년 투자전문사인 스톰벤처스를 세웠다. 기업간 거래(B2B)에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를 내놓는 스타트업이 집중 투자 대상이다. 투자금의 절반은 실리콘밸리에, 나머지 절반은 해외에 투자한다.
남 대표는 기업 성장 단계에 따라 스타트업 CEO가 갖는 역량이 달라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창업 초기엔 일선 현장에서 자신이 구축한 사업모델로 영업하는 탐험가형 CEO가 필요하다. 임직원 규모가 20명 밑일 때엔 ‘현장에서 강한 CEO’가 살아남는다는 얘기다. 이후 임직원 규모가 20~100명으로 커지면 분야별로 유능한 전문가를 포섭해야 한다. 각계 전문가들을 통솔하는 ‘관리자’로서의 역량이 CEO에게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남 대표는 이 두 번째 단계에서 CEO가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고 봤다. 자신보다 유능한 이들을 영입하다 보면 CEO의 실무적 역량이 이들에 밀려 묻힐 수 있어서다. 그는 “기존에 갖고 있던 탐험가로서의 역량을 내려놓는 과정에서 CEO는 무기를 다 빼앗기고 벌거벗겨지는 느낌이 들 수 있다”며 “자기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관리자로서의 역량을 드러내야 두 번째 단계의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직원 100명 이상으로 기업이 성장하면 CEO도 또 진화해야 할 때다. 남 대표는 CEO 성장의 세 번째 단계로 사업 전반의 비전을 제시하고 인재 양성에 몰두하는 ‘학장형’ 인재로서의 역량이 필요하다고 봤다. 전장에서 직접 싸우진 않았지만 전선 전반을 책임졌던 아이젠하워 장군이 그가 꼽은 대표적인 학장형 인재다. 남 대표는 “결국 각 단계별로 CEO가 기존에 가졌던 역량들을 비워내고(unlearning) 새로운 역량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이 간과할 수 있는 법적 리스크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신사업을 추진하다가 각종 규제나 법률 문제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는 얘기다. 남 대표는 “창업 시작부터 법무 담당이 가능한 인재를 둬야 한다”며 “법률 문제가 생기기 전에 의사에게 진찰을 받듯 법률 자문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법적 문제가 사업에 큰 위험이 될 수 있는 기업에는 투자자들도 투자를 꺼린다”고 덧붙였다.
남 대표의 이번 방한은 그의 책 ‘생존을 넘어 번창으로’의 속편 출간에 맞춰 성사됐다. 그는 창업자, 투자자, 이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관점에서 스타트업 운용에 대한 조언들을 남기고자 이 책을 펴냈다. 스마일게이트 오렌지플래닛 창업재단은 창업 생태계에서 ‘혁신 확산 활동’의 일환으로 남 대표의 책을 번역 출간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2021년 말 첫 편인 <생존을 넘어 번창으로:1 기업의 여정을>을 출간한 데 이어 지난달 <생존을 넘어 번창으로 2:리더의 도전>을 출간했다.
남 대표는 앞으로도 오렌지플래닛과 함께 벤처기업에 도움이 될 만한 지식들을 한국에 널리 알릴 계획이다. 그는 “성장 단계별 스타트업이 가져야 할 고민들을 이 책에 담았다”며 “성공하길 바라는 창업자들은 내가 뛰어들 사업이 최근 시장에서 일고 있는 파도에 올라탈 수 있는지, 내가 그 파도에 올라탈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이주현/최진석 기자 deep@hankyung.com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오렌지플래닛 사무실에서 만난 남태희 스톰벤처스 대표가 이같이 말했다. 남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서 이름을 날린 대표적인 한인 투자전문가로 꼽힌다. 2000년 투자전문사인 스톰벤처스를 설립해 200여개 기업에 투자했다. 국내 기업인 컴투스, 블라인드 등도 이 회사에서 자금을 수혈했다.
남 대표는 실리콘밸리 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대부’로 불린다. 5살 때 의대 교수였던 아버지와 함께 세인트루이스로 이민 간 그는 하버드대 응용수학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받은 뒤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 생활을 한 인재다. 그는 스타트업들의 법률 자문을 맡았던 경험을 살려 2000년 투자전문사인 스톰벤처스를 세웠다. 기업간 거래(B2B)에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를 내놓는 스타트업이 집중 투자 대상이다. 투자금의 절반은 실리콘밸리에, 나머지 절반은 해외에 투자한다.
“스타트업이 잡아야 할 파도는 ‘AI 기반 SaaS’”
남 대표가 최근 주목하는 투자처는 ‘인공지능(AI) 기반 SaaS’다. SaaS는 업무 흐름을 자동화한 소프트웨어를 구독 형태로 공급해 수익을 낸다. 남 대표는 SaaS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AI가 분석하고, 이 분석 데이터를 SaaS가 다시 활용하는 순환 구조가 정보기술(IT) 업계 전반에 자리 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남 대표는 “최근 소프트웨어 분야 변혁의 첫 물결이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한 디지털 전환(DX)이었다면 그 다음 물결은 AI”라며 “클라우드와 AI를 접목한 기업들만이 이 물결에 올라탈 수 있다”고 강조했다.남 대표는 기업 성장 단계에 따라 스타트업 CEO가 갖는 역량이 달라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창업 초기엔 일선 현장에서 자신이 구축한 사업모델로 영업하는 탐험가형 CEO가 필요하다. 임직원 규모가 20명 밑일 때엔 ‘현장에서 강한 CEO’가 살아남는다는 얘기다. 이후 임직원 규모가 20~100명으로 커지면 분야별로 유능한 전문가를 포섭해야 한다. 각계 전문가들을 통솔하는 ‘관리자’로서의 역량이 CEO에게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남 대표는 이 두 번째 단계에서 CEO가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고 봤다. 자신보다 유능한 이들을 영입하다 보면 CEO의 실무적 역량이 이들에 밀려 묻힐 수 있어서다. 그는 “기존에 갖고 있던 탐험가로서의 역량을 내려놓는 과정에서 CEO는 무기를 다 빼앗기고 벌거벗겨지는 느낌이 들 수 있다”며 “자기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관리자로서의 역량을 드러내야 두 번째 단계의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직원 100명 이상으로 기업이 성장하면 CEO도 또 진화해야 할 때다. 남 대표는 CEO 성장의 세 번째 단계로 사업 전반의 비전을 제시하고 인재 양성에 몰두하는 ‘학장형’ 인재로서의 역량이 필요하다고 봤다. 전장에서 직접 싸우진 않았지만 전선 전반을 책임졌던 아이젠하워 장군이 그가 꼽은 대표적인 학장형 인재다. 남 대표는 “결국 각 단계별로 CEO가 기존에 가졌던 역량들을 비워내고(unlearning) 새로운 역량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창업 시작부터 법률 자문 구해야”
남 대표는 CEO가 가져야 할 덕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CEO는 겉으론 비전을 확고하게 제시하는 ‘모세’가 돼야 하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사업 방향성에 대해 회의하는 ‘갈릴레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거꾸로 CEO가 고민하는 척을 하면서 속으론 한쪽 길에만 확신을 가질 경우엔 이사회가 CEO를 해고하거나 외부 투자가 끊기고 임직원들이 이직을 준비하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타트업 CEO들이 가질 만한 고민에 대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조직 운용과 관련해 남 대표는 “임직원의 해고 시점에서 적기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해고가 급작스러우면 CEO에 대한 조직의 불신이 커지는 문제가, 해고가 너무 늦으면 CEO가 유유부단해 보이고 사업 속도가 늦어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남 대표는 “인사에서 적절한 의사결정 기간은 6개월”이라며 “그 결정에 앞서 인사 대상과 충분한 협의가 이뤄져야 하고 그 소통 과정은 조직 전체에 공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스타트업이 간과할 수 있는 법적 리스크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신사업을 추진하다가 각종 규제나 법률 문제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는 얘기다. 남 대표는 “창업 시작부터 법무 담당이 가능한 인재를 둬야 한다”며 “법률 문제가 생기기 전에 의사에게 진찰을 받듯 법률 자문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법적 문제가 사업에 큰 위험이 될 수 있는 기업에는 투자자들도 투자를 꺼린다”고 덧붙였다.
“인도계 CEO가 주목받는 이유 알아야”
남 대표는 한국인 창업자가 미국에서 맞닥뜨리는 문제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숱한 기업들을 탐색하며 느낀 소회를 드러낸 것이다. 남 대표는 “한국인 창업자들은 열정적이고 유능하지만 비전을 남들에게 설득하는 데엔 약점이 있다”며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스라엘계나 인도계 CEO들이 적극적으로 비전을 제시하는 모습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남 대표의 이번 방한은 그의 책 ‘생존을 넘어 번창으로’의 속편 출간에 맞춰 성사됐다. 그는 창업자, 투자자, 이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관점에서 스타트업 운용에 대한 조언들을 남기고자 이 책을 펴냈다. 스마일게이트 오렌지플래닛 창업재단은 창업 생태계에서 ‘혁신 확산 활동’의 일환으로 남 대표의 책을 번역 출간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2021년 말 첫 편인 <생존을 넘어 번창으로:1 기업의 여정을>을 출간한 데 이어 지난달 <생존을 넘어 번창으로 2:리더의 도전>을 출간했다.
남 대표는 앞으로도 오렌지플래닛과 함께 벤처기업에 도움이 될 만한 지식들을 한국에 널리 알릴 계획이다. 그는 “성장 단계별 스타트업이 가져야 할 고민들을 이 책에 담았다”며 “성공하길 바라는 창업자들은 내가 뛰어들 사업이 최근 시장에서 일고 있는 파도에 올라탈 수 있는지, 내가 그 파도에 올라탈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이주현/최진석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