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학의 얼굴' 두 여성작가가 돌아본 삶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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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레일라 슬리마니 회고록 국내 출간
프랑스를 대표하는 두 여성 작가가 자신의 삶과 문학을 돌아본 에세이가 같은 시기에 국내에 번역돼 나왔다.
동시대 프랑스 문학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아니 에르노(82)와 레일라 슬리마니(41)의 회고록들은 각기 다른 개성과 매력으로 두 작가의 문학세계로 안내하는 길잡이가 될 만하다.
'아니 에르노'(사람의집)는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에르노의 회고록이다.
부제는 '이브토로 돌아가다'. 이브토는 작가가 유년 시절 살았던 노르망디 지방의 소도시다.
이브토에서 식료품점 겸 카페를 운영한 노동자 계급 출신 부모에게서 받은 영향, 자신의 출신으로부터 비롯된 수치심, 교육을 받고 책을 접하면서 맞은 내면의 변화, '계급 종단자'로서 겪은 이중의 경험 등은 에르노가 작가로서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깨닫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처음부터 저는 한쪽에 자리한 문학적 언어, 배우고 사랑했던 그 언어, 그리고 다른 한쪽에 자리한 출신 언어, 집에서 부모가 사용하는 언어, 피지배자들의 언어, 그 뒤 제가 부끄럽게 여기지만 여전히 제 안에 남아 있을 언어, 이 두 언어 사이의 긴장 속에, 심지어 찢김 속에 잡혀 있었습니다.
결국 문제는 이거죠. 글을 쓰면서 어떻게 나의 출신 세계를 배반하지 않을 것인가.
"(43~44쪽)
에르노의 문학세계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학자 마르그리트 코니에는 이브토라는 공간을 "가족의 행복, 꿈, 끝없는 독서의 장소이자 또한 비밀과 수모의 장소, 한마디로 인격의 구축과 작가의 소명이 일어나는 장소"라 규정한다.
이 책은 2013년 초판이 나온 뒤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해 몇 가지 기록을 추가한 개정판이다.
'한밤중의 꽃향기'(뮤진트리)는 소설 '달콤한 노래'로 2016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을 받은 레일라 슬리마니가 낯선 미술관에서 하루를 보내며 떠오른 상념들을 기록한 에세이다.
작가는 베네치아 '푼타 델라 도가나' 미술관에서 홀로 하룻밤을 머물러 보라는 제안을 고민 끝에 수락한다.
모로코 라바트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 아랍 문화를 뼛속까지 흡수한 작가에게 미술관은 서양 문화의 총화이자 그녀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엘리트주의적 공간이다.
미술, 특히 현대미술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는 작가는 낯선 공간에서 혼란스러운 와중에서도 미묘한 예술작품들과 함께 밤의 침묵으로 빠져든다.
여성들은 자유롭게 이동조차 하지 못했던 사회에서 '착한 소녀'가 되고 싶지 않아 밤이면 남몰래 집을 나가 외부를 정복하고자 했던 일, 파리로 이주한 뒤 아랍과 서양의 사이에 끼어서 양쪽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살던 때의 긴장감, 그리고 작가의 길을 걷게 만든 아버지에 관한 기억들이 천천히 되살아난다.
슬리마니에게 낯선 미술관에서의 하룻밤이 표상하는 침묵은 곧 문학 그 자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침묵을 가지고 노는 것이며, 실생활에서는 말할 수 없는 비밀들을 우회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중략) 문학은 침묵의 에로티시즘이다.
우리가 말하지 않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25쪽)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깊고 투명한 사유가 빛나는 책이다.
슬리마니는 최근 천명관의 장편소설 '고래'가 최종후보에 오른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의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 아니 에르노 = 정혜용 옮김. 136쪽.
▲ 한밤중의 꽃향기 = 이재형 옮김. 156쪽.
/연합뉴스
동시대 프랑스 문학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아니 에르노(82)와 레일라 슬리마니(41)의 회고록들은 각기 다른 개성과 매력으로 두 작가의 문학세계로 안내하는 길잡이가 될 만하다.
'아니 에르노'(사람의집)는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에르노의 회고록이다.
부제는 '이브토로 돌아가다'. 이브토는 작가가 유년 시절 살았던 노르망디 지방의 소도시다.
이브토에서 식료품점 겸 카페를 운영한 노동자 계급 출신 부모에게서 받은 영향, 자신의 출신으로부터 비롯된 수치심, 교육을 받고 책을 접하면서 맞은 내면의 변화, '계급 종단자'로서 겪은 이중의 경험 등은 에르노가 작가로서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깨닫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처음부터 저는 한쪽에 자리한 문학적 언어, 배우고 사랑했던 그 언어, 그리고 다른 한쪽에 자리한 출신 언어, 집에서 부모가 사용하는 언어, 피지배자들의 언어, 그 뒤 제가 부끄럽게 여기지만 여전히 제 안에 남아 있을 언어, 이 두 언어 사이의 긴장 속에, 심지어 찢김 속에 잡혀 있었습니다.
결국 문제는 이거죠. 글을 쓰면서 어떻게 나의 출신 세계를 배반하지 않을 것인가.
"(43~44쪽)
에르노의 문학세계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학자 마르그리트 코니에는 이브토라는 공간을 "가족의 행복, 꿈, 끝없는 독서의 장소이자 또한 비밀과 수모의 장소, 한마디로 인격의 구축과 작가의 소명이 일어나는 장소"라 규정한다.
이 책은 2013년 초판이 나온 뒤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해 몇 가지 기록을 추가한 개정판이다.
'한밤중의 꽃향기'(뮤진트리)는 소설 '달콤한 노래'로 2016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을 받은 레일라 슬리마니가 낯선 미술관에서 하루를 보내며 떠오른 상념들을 기록한 에세이다.
작가는 베네치아 '푼타 델라 도가나' 미술관에서 홀로 하룻밤을 머물러 보라는 제안을 고민 끝에 수락한다.
모로코 라바트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 아랍 문화를 뼛속까지 흡수한 작가에게 미술관은 서양 문화의 총화이자 그녀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엘리트주의적 공간이다.
미술, 특히 현대미술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는 작가는 낯선 공간에서 혼란스러운 와중에서도 미묘한 예술작품들과 함께 밤의 침묵으로 빠져든다.
여성들은 자유롭게 이동조차 하지 못했던 사회에서 '착한 소녀'가 되고 싶지 않아 밤이면 남몰래 집을 나가 외부를 정복하고자 했던 일, 파리로 이주한 뒤 아랍과 서양의 사이에 끼어서 양쪽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살던 때의 긴장감, 그리고 작가의 길을 걷게 만든 아버지에 관한 기억들이 천천히 되살아난다.
슬리마니에게 낯선 미술관에서의 하룻밤이 표상하는 침묵은 곧 문학 그 자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침묵을 가지고 노는 것이며, 실생활에서는 말할 수 없는 비밀들을 우회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중략) 문학은 침묵의 에로티시즘이다.
우리가 말하지 않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25쪽)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깊고 투명한 사유가 빛나는 책이다.
슬리마니는 최근 천명관의 장편소설 '고래'가 최종후보에 오른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의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 아니 에르노 = 정혜용 옮김. 136쪽.
▲ 한밤중의 꽃향기 = 이재형 옮김. 156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