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 줄이고, 설명은 쉽게…'조명치'·'메소포타미아' 展 등 눈길
무겁고 딱딱한 '벽돌책'은 그만…관람객에 다가가는 도록의 변신
두꺼운 표지에 빳빳한 종이, 그 안을 펼쳐보면 유물을 가까이서 찍은 사진과 설명이 가득하다.

흔히 전시 도록이라 하면 이런 '벽돌 책'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전시를 보지 못한 사람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사진과 내용을 넣다 보니 발생한 결과다.

일부 도록은 전문가들이 쓰는 용어가 많아 일반 관람객에게는 자칫 어렵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 권의 교양서처럼 쉽고 재미나게 전시를 풀어낸 도록이 잇달아 나와 관심을 끈다.

이달 초 개막한 국립민속박물관의 특별전 '조명치'의 도록은 크기부터 남다르다.

보통 전시 도록은 A4 용지와 비슷한 크기인데, 이 도록은 가로 13㎝, 세로 19㎝에 불과하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소설이나 에세이 책과 비슷하다.

무겁고 딱딱한 '벽돌책'은 그만…관람객에 다가가는 도록의 변신
표지 또한 전시 도록의 '정석'을 벗어나 있다.

대부분의 도록은 무늬가 없거나 화려하지 않은 바탕에 대표 유물을 가운데 배치하는 식으로 표지를 구성한다.

전시 포스터 이미지를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허나 '조명치' 도록은 기획전 이름이기도 한 조기, 명태, 멸치를 삽화로 보여준다.

더군다나 도록에서는 잘 쓰지 않는 반짝이는 은빛 표지를 사용함으로써 물고기 비늘을 연상시킨다.

언뜻 보면 도록이 아닌 교양서로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시를 기획한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유물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기존 도록에서 벗어나 이야기와 맥락에 집중하려는 시도였다"고 의도를 설명했다.

도록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무겁고 딱딱한 '벽돌책'은 그만…관람객에 다가가는 도록의 변신
생선을 얇게 저며서 말린 어포, 바다 위에서 물건을 사고팔던 시장인 '파시'(波市) 등을 설명하는 이야기는 전시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김 학예연구사는 "밥상 위의 조기·명태·멸치 이야기와 그 안에 담긴 생활상 등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구성하고 민속학, 생물학 등 분야별 칼럼 12편을 넣어 읽을거리도 다양하게 했다"고 말했다.

색다른 시도에 박물관 안팎에서의 반응은 뜨거웠다고 한다.

박물관에 따르면 당초 '조명치' 도록은 1천부를 찍었으나, 개막 1주일도 채 되지 않아 다 소진했다.

보통은 100부 정도 여유를 두는데 직원들에게도 나눠주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김창일 학예연구사는 "'조명치' 도록이 나온 뒤 박물관 관계자들의 문의가 많았다.

두껍고 무거운 '벽돌 책'을 넘어 쉽고 편하게 이야기를 건네는 시도로 봐달라"고 말했다.

무겁고 딱딱한 '벽돌책'은 그만…관람객에 다가가는 도록의 변신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이 펴낸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전시 도록도 이러한 변화 흐름을 보여준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협업한 전시를 소개하는 이 도록은 가로 15㎝, 세로 21㎝ 크기다.

주로 단행본에서 많이 쓰는 책 크기인데 각 유물에 집중하기보다는 '최초의 도시', '쐐기문자와 기록문화' 등 주제로 나눠 역사와 문화를 두루 설명하는 식이다.

특히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상징이기도 한 쐐기문자 점토판, 인장(도장) 등의 유물은 앞·뒷면에 새겨진 내용을 설명하고 관련한 배경지식을 함께 다뤄 이해도를 높였다.

무겁고 딱딱한 '벽돌책'은 그만…관람객에 다가가는 도록의 변신
양희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처음 접하거나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역사·문화적 흐름을 따라가면서 유물을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양 학예연구사는 "특정 작품이나 유물이 궁금할 때는 기존과 같은 카탈로그 형식의 도록이 적절하지만, 메소포타미아 역사와 문명 전반을 다루고 싶어 일부러 이런 콘셉트를 택했다"고 덧붙였다.

관람객과의 거리를 조금 더 좁히려는 이런 시도가 더욱 활발해질까.

박물관에서 일하는 한 관계자는 "무겁고 딱딱한 도록에서 벗어나 보다 쉽게 이야기를 건네는 도록에 관심이 많다.

기존과 다른 시도를 고민하는 전시 기획자가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무겁고 딱딱한 '벽돌책'은 그만…관람객에 다가가는 도록의 변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