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등 대중 의존도 높은 국가들 참여…한중관계 추가부담 가능성 작아
美, RCEP 주도한 중국 맞서 IPEF로 '맞불'…"미 리더십 회복"
'美 인태지역 복귀' IPEF 첫 성과물 나와…"中압박 성격 약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자 미국 정부 주도로 출범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가 27일(현지시간) 첫 성과물을 내놓았다.

세계 공급망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탈동조화(디커플링) 및 위험제거(디리스킹)에 주력하는 미국 입장에선 이번 IPEF의 '공급망 합의'가 대중(對中) 압박 동력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다만 이날 IPEF의 공급망 협정 타결과 관련한 공동 보도성명 내용상으로는 최근 주요 7개국(G7)의 공동성명처럼 대중 압박 성격이 선명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번 합의는 주로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회원국 간의 공동 노력 방향을 서술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평가된다.

'위험제거'(derisking)나 '탈동조화'(decoupling) 등의 표현으로 중국 같은 특정국을 구체적으로 겨냥해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내용도 담기지 않았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IPEF의 '공급망 합의'가 당초 예상보다 빨리 이뤄진 것은 중국 관련 디커플링 등 쟁점 이슈가 테이블 위에 오르지 않았음을 뜻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전방위 중국 압박'이라는 이번 G7 정상회의 결과물에 만족하는 만큼 IPEF에서는 수위 조절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G7은 지난 20일 히로시마 정상회의 직후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경제안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경제적 강압' 대응 기구 창설, 중요 광물·반도체·배터리 등 중요 물자 공급망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또 IPEF에 대중 경제 의존도가 높은 나라가 다수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이번 '공급망 합의' 수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IPEF에는 중국이 자국의 경제적 영향권으로 여기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 중 7개국이 참여한다.

더욱이 IPEF 참여국 14개국 중 10개국은 중국이 제1의 교역 상대다.

따라서 공급망 분야의 논의 수준을 미국의 기대만큼 높이기 어려운 구조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이시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대학원 교수는 "공급망 위험 신호가 발생했을 때 협력한다는 것이지, '중국을 겨냥한다'고 하면 불편해할 국가가 많다"고 말했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대중국 견제'라는 키워드로 보기보단 공급망의 지속가능한 안정성을 확보하자는 취지로 봐야 한다"며 "전 세계 어느 국가도 중국과 디커플링은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따라서 IPEF 참여국으로서 이번 '공급망 합의'에 포함된 한국 입장에서도 부담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만수 위원은 "중국이 IPEF를 경계하는 얘기를 많이 했지만, 이번과 같은 합의 수준에서는 중국의 강한 반발이나 보복을 우려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도 "협상 내용상 특정국을 표적으로 하는 것은 없다"며 "중국은 우리에 중요한 파트너이고, 중국과 양자 협력을 지속할 여러 대안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IPEF의 첫 성과물 도출은 미국이 한때 스스로 떠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리더십 회복 도모 측면에서는 적지 않은 지정학적 의미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美 인태지역 복귀' IPEF 첫 성과물 나와…"中압박 성격 약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나갔고, 이는 역내에서 미국의 공백을 낳았다는 논란으로 이어졌다.

이후 중국은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주도하며 영향력 키우기에 나섰다.

아세안 10개국이 주축인 RCEP과 IPEF의 회원국은 상당 부분 중첩된다.

중국이 RCEP으로 먼저 다진 역내 통상 질서 주도권을 미국이 통상 규범의 틀을 바꾸는 IPEF를 활용해 다시 흔드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IPEF 출범 당시 "인도·태평양에서 미국의 경제적 리더십을 회복하고 중국의 접근법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의 발언은 미국 정부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

4개의 분야 중 이번에 타결된 공급망 외에도 ▲ 무역 ▲ 청정 경제 ▲ 공정 경제 영역에 관한 협상이 남았다.

이들 분야에서는 낮은 수위 합의로 마무리된 공급망 분야와 달리 역내 경제 질서에 실질적 변화를 이끌 합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우선 무역 분야에서는 무역 원활화, 디지털 경제, 환경, 노동, 농업, 투명성 등 9개 소주제(챕터)에 관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청정 경제 분야에서는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친환경 규범 마련 및 협력 사업 발굴이 논의된다.

각국이 탄소중립 전환에 속도를 내면서 전 산업 지형에 큰 변화가 초래되는 상황과 맞물려 IPEF 진영 안에서 굵직한 경제협력 사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협상 추이가 주목된다.

공정 경제 분야는 반부패·조세 투명성 확보 등을 다룬다.

일각에서는 서방 선진국에 유리한 이 같은 새 규범 논의가 실질적으로 중국 압박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지 연구위원은 "미국이 새 워싱턴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새 무역 규범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탄소중립, IT 등 분야에서의 규범 만들기가 향후 더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