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빈·송중기 주연…김창훈 감독 "범죄의 파장에 대한 이야기"
질긴 폭력의 굴레 끊어내려는 소년…칸 초청작 '화란'
저벅, 저벅, 저벅.
한밤중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잠을 청하려던 소년 연규(홍사빈 분)의 심장도 따라 쿵쾅거린다.

아버지가 아니길, 아버지라면 오늘만큼은 자기 존재를 잠시 잊어주길 연규는 눈을 꼭 감은 채 기도한다.

연규의 삶은 영화의 영어 제목처럼 절망(Hopeless) 그 자체다.

의붓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연규와 어머니를 무자비하게 때린다.

같은 동네에 사는 또래들에게서도 샌드백 신세다.

지독한 가난은 연규에게 방 한 칸도 허락하지 않는다.

커튼을 가림막 삼아 의붓여동생 하얀(김형서)과 방을 쓴다.

얼른 돈을 모아 "모두가 비슷비슷하게 산다는" 네덜란드로 떠나는 게 그의 유일한 꿈이다.

24일(현지시간)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드뷔시 극장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된 '화란'은 질기게 엉겨 붙는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소년의 이야기다.

김창훈 감독의 첫 장편으로, 칸영화제가 새로운 경향의 작품을 소개하는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다.

질긴 폭력의 굴레 끊어내려는 소년…칸 초청작 '화란'
극 중 연규만큼 중요한 인물이 그와 비슷한 궤적의 삶을 살아온 치건(송중기)이다.

조직의 중간 보스인 치건은 우연히 알게 된 연규가 꼭 자기 어릴 적 모습 같아 마음이 쓰인다.

돈을 벌게 해달라는 연규를 처음엔 내치지만, 그의 얼굴에 남은 구타의 흔적을 보고서 마음을 바꾼다.

연규는 치건 밑에서 일을 배운다.

빚을 갚지 않는 사람을 때려서 돈을 받아내고 조직에 방해가 되는 사람을 '처리'하는 게 그의 업무다.

지긋지긋한 폭력을 피해 도망친 곳에서 연규는 어느새 폭력의 가해자로 뒤바뀌어 있다.

치건은 "우린 해야 하면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연규에게 폭력성을 전염시킨다.

그토록 두려워하던 의붓아버지를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한 연규는 치건의 품마저 떠나고 싶다.

그는 새 아버지나 다름없는 치건을 버리고 꿈에 그리던 화란에 갈 수 있을까.

질긴 폭력의 굴레 끊어내려는 소년…칸 초청작 '화란'
신인 감독 작품인 만큼 '화란'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결말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간다.

근래 보기 드문 진한 누아르이기 때문에 이런 장르에 목말랐던 관객에게는 반갑게 느껴질 듯하다.

김창훈 감독은 시사회 전날인 23일 인터뷰에서 "범죄 자체보다는 범죄가 인물의 세계에 미치는 파장을 다뤄보고 싶었다"며 "한 소년이 원래보다 더 냉혹한 세계에 살게 되면서 본성과 다른 삶을 강요당하고, 위태롭게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라고 영화를 소개했다.

스토리 자체와 연출이 다소 올드하고 투박하다는 점은 아쉽다.

인물들의 감정선에 충분히 공감이 가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폭력적인 장면이 많아 무의미한 캐릭터 학대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배우진의 호연만큼은 빛난다.

그간 밝고 깔끔한 역할을 주로 해왔던 송중기는 무자비하면서도 연민이 가는 치건 역으로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신예 홍사빈 역시 폐수 속을 헤엄치며 꽃을 갈망하는 듯한 연규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했다.

김형서는 그동안 가려져 있던 연기력을 이번 작품으로 드러낸다.

질긴 폭력의 굴레 끊어내려는 소년…칸 초청작 '화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