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과학] 성폭행 때 적극 저항하지 않았다?…"동의로 해석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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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신경학자 "몸이 얼어붙는 건 신경학적 현상…의지대로 행동 제어 안돼"
강간이나 성폭행 등 성범죄 재판에서 피해자가 범행 당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문제는 재판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측 사이에 쟁점이 되곤 한다.
피해자 측은 '극도의 공포감에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가해자 측은 '적극적 저항이 없었다'는 것은 '암묵적 동의'라며 성폭행을 부인한다.
이처럼 강간이나 성폭행 사건에서 피해자가 범행 당시 얼어붙어(freezing) 움직이지 못하는 것(immobility : 부동)은 '암묵적 동의'로 저항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의지와 관계 없이 나타나는 신경학적 현상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패트릭 해거드 교수팀은 23일 과학저널 '네이처 인간 행동'(Nature Human Behaviour) 논평에서 "강간·성폭행 사건(RSA)에서 나타나는 이런 비자발적 부동 현상에 관한 신경과학적 증거를 이해하면 피해자에 대한 부적절한 비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강간과 성폭행의 법적 정의는 피해자 동의가 없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동의 또는 동의 부재를 입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피해자들은 몸이 얼어붙어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고 말하지만 이에 대한 신경과학적 증거는 제한적이다.
연구팀은 논평에서 여성의 30%가 일생 성폭행이나 강간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강간과 성폭행으로 응급 클리닉을 찾은 사람 중 70%는 범행 당시 몸이 얼어붙어 비명을 지르거나 움직일 수 없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겪는 이런 끔찍한 비자발적 부동 현상은 '여성의 노(no)는 때로는 예스(yes)를 의미한다'거나 '성폭행은 모르는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다'처럼 성폭력 범죄를 정당화하는 '강간 통념'(rape myths)과 합쳐져 재판에서 피해자들에게 가혹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유호정 활동가는 "성폭력 상황에서 피해자가 몸이 얼어붙어 적극 대응하지 못하는 사례는 아주 많다"며 "하지만 사법부는 저항 못 할 정도의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 강간이 인정된다는 규정에 얽매여 피해자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해거드 교수팀은 그러나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피해자가 저항하지 않기로 선택했다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들은 뇌가 위협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기존 연구 증거들을 제시하며 극심한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부동 증상은 비자발적인 신경학적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이런 비자발적 부동 현상은 '신경학적 위협 반응'으로 알려진 것으로, 이런 상태에서는 몸의 움직임을 자기 의지로 제어하는 뇌 회로가 차단돼 원하는 행동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신체적 구속 같은 즉각적이고 심각한 위협은 다른 동물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강간·성폭행 상황에서 몸이 얼어붙는 부동 현상으로 나타나는 신경학적 위협 반응은 진화적으로 보존된 비자발적 반응으로 정상적인 운동제어가 안되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현상은 공격자의 행동이 피해자의 뇌 위협 방어 회로를 활성화해 피해자가 자기 뜻대로 행동을 제어하는 데 필요한 뇌의 신경 경로를 억제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연구팀은 또 성폭력 상황에서 스스로 행동을 제어할 수 없는 비자발적 부동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해가 높아지면 피해자에 대한 부당한 비난이나 피해자들의 자책 및 죄의식 등을 줄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그러나 성폭행은 직접 연구할 수 없는 범죄 행위이고 동물을 이용한 위협에 대한 부동 현상 연구를 인간에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이 연구가 그동안 소홀히 다뤄진 이 주제에 대한 연구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유호정 활동가는 피해자가 저항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신경학적 원인을 찾아 저항하지 않음이 동의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폭행과 위협이 아닌 지위 상하관계 같은 위력에 의한 성폭행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림대 사회학과 신경아 교수는 "많은 성폭력 사건이 지위의 상하나 상명하복 조직 문화 등을 이용한 위력으로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제압된 상황에서 발생한다"며 "단순히 저항하지 못했다는 것을 성관계 동의로 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성범죄의 사회적 심각성에 대한 인식 높이기 위해서는 사법부가 이 연구와 같이 과학적으로 제시되는 증거들을 선도적으로 검토하고 반영해 엄정한 판결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강간이나 성폭행 등 성범죄 재판에서 피해자가 범행 당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문제는 재판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측 사이에 쟁점이 되곤 한다.
피해자 측은 '극도의 공포감에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가해자 측은 '적극적 저항이 없었다'는 것은 '암묵적 동의'라며 성폭행을 부인한다.
이처럼 강간이나 성폭행 사건에서 피해자가 범행 당시 얼어붙어(freezing) 움직이지 못하는 것(immobility : 부동)은 '암묵적 동의'로 저항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의지와 관계 없이 나타나는 신경학적 현상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패트릭 해거드 교수팀은 23일 과학저널 '네이처 인간 행동'(Nature Human Behaviour) 논평에서 "강간·성폭행 사건(RSA)에서 나타나는 이런 비자발적 부동 현상에 관한 신경과학적 증거를 이해하면 피해자에 대한 부적절한 비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강간과 성폭행의 법적 정의는 피해자 동의가 없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동의 또는 동의 부재를 입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피해자들은 몸이 얼어붙어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고 말하지만 이에 대한 신경과학적 증거는 제한적이다.
연구팀은 논평에서 여성의 30%가 일생 성폭행이나 강간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강간과 성폭행으로 응급 클리닉을 찾은 사람 중 70%는 범행 당시 몸이 얼어붙어 비명을 지르거나 움직일 수 없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겪는 이런 끔찍한 비자발적 부동 현상은 '여성의 노(no)는 때로는 예스(yes)를 의미한다'거나 '성폭행은 모르는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다'처럼 성폭력 범죄를 정당화하는 '강간 통념'(rape myths)과 합쳐져 재판에서 피해자들에게 가혹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유호정 활동가는 "성폭력 상황에서 피해자가 몸이 얼어붙어 적극 대응하지 못하는 사례는 아주 많다"며 "하지만 사법부는 저항 못 할 정도의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 강간이 인정된다는 규정에 얽매여 피해자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해거드 교수팀은 그러나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피해자가 저항하지 않기로 선택했다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들은 뇌가 위협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기존 연구 증거들을 제시하며 극심한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부동 증상은 비자발적인 신경학적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이런 비자발적 부동 현상은 '신경학적 위협 반응'으로 알려진 것으로, 이런 상태에서는 몸의 움직임을 자기 의지로 제어하는 뇌 회로가 차단돼 원하는 행동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신체적 구속 같은 즉각적이고 심각한 위협은 다른 동물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강간·성폭행 상황에서 몸이 얼어붙는 부동 현상으로 나타나는 신경학적 위협 반응은 진화적으로 보존된 비자발적 반응으로 정상적인 운동제어가 안되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현상은 공격자의 행동이 피해자의 뇌 위협 방어 회로를 활성화해 피해자가 자기 뜻대로 행동을 제어하는 데 필요한 뇌의 신경 경로를 억제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연구팀은 또 성폭력 상황에서 스스로 행동을 제어할 수 없는 비자발적 부동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해가 높아지면 피해자에 대한 부당한 비난이나 피해자들의 자책 및 죄의식 등을 줄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그러나 성폭행은 직접 연구할 수 없는 범죄 행위이고 동물을 이용한 위협에 대한 부동 현상 연구를 인간에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이 연구가 그동안 소홀히 다뤄진 이 주제에 대한 연구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유호정 활동가는 피해자가 저항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신경학적 원인을 찾아 저항하지 않음이 동의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폭행과 위협이 아닌 지위 상하관계 같은 위력에 의한 성폭행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림대 사회학과 신경아 교수는 "많은 성폭력 사건이 지위의 상하나 상명하복 조직 문화 등을 이용한 위력으로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제압된 상황에서 발생한다"며 "단순히 저항하지 못했다는 것을 성관계 동의로 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성범죄의 사회적 심각성에 대한 인식 높이기 위해서는 사법부가 이 연구와 같이 과학적으로 제시되는 증거들을 선도적으로 검토하고 반영해 엄정한 판결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