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요구 기업에 여과없이 전달 '어두운 과거'…국정농단으로 위상 추락
非기업인 중심 윤리경영위 운영…"회장·사무국 독단 결정 제어"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정경유착의 한 축으로 낙인돼 재계에서 위상이 크게 하락했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기업에 대한 국가권력의 외압을 차단할 내부 장치를 갖춰 어두웠던 과거 이미지를 벗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전경련은 18일 발표한 혁신안에 윤리헌장 제정 계획을 담으면서 헌장에 '정치·행정권력 등의 부당한 압력을 단호히 배격'이라는 항목을 포함하겠다고 명시했다.

아울러 정경유착으로 여겨질 우려가 있는 사안의 적정성을 검토할 '윤리경영위원회'를 별도로 꾸려 문제 소지를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과거 재계를 대표하고 정부와 재계 간 다리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국정 운영에 협조한다는 취지로 정부 요구에 따라 기업들에 지출을 요청했다.

문제는 이런 행위가 기업에 사실상의 강요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있었고, 국가적 이익보다는 정권의 이해득실 차원일 때가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치권력 압력 배격"…정경유착 고리 근절 선언한 전경련
국정농단과 관련해서도 전경련은 청와대 요구로 사태의 발단인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에 필요한 거액의 자금을 회원사들이 출연하게 하는 데 관여했다.

청와대로부터 친정부 성향 보수단체들을 지원하라는 압박을 받고 자금을 집행하는 등 정권의 정치적 목적에 활용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전경련은 대중적 이미지가 실추됐을 뿐 아니라 재계에서도 위상이 깎였고, 직전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사실상 '패싱' 수준으로 소외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그간 구축해 온 해외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기업들의 한일·한미 정상회담 동행을 주관하는 등 전보다는 입지가 다소 회복된 느낌이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향후에도 전경련이 주체가 돼 기금을 출연하는 사례 등이 생기면 선뜻 협조하기가 아직은 불편하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전경련은 혁신안에 이 같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았다.

회원 기업에 부담이 될 만한 사안이 집행되는 일 자체를 막을 장치를 두는 것이 혁신안의 주요 내용 중 하나다.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은 "이전까지 전경련의 의사결정 구조는 회장과 사무국 중심으로 결정하고 회원사들은 그냥 따라오거나 묵인하는 형태였다"며 "전경련 내부에 외부 압력을 차단할 수 있는 윤리경영위원회를 설치해 위원회가 회장과 사무국의 독단적 결정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력 압력 배격"…정경유착 고리 근절 선언한 전경련
윤리경영위원회 운영에 관한 세부 내용은 향후 정관 개정 등을 통해 구체화하겠지만, 포괄적으로는 회원사들에 특별기금 출연을 요청하는 등 어떤 형태로든 부담을 주는 사안은 윤리경영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만 집행이 가능하게 하는 방식이 될 전망이다.

위원회는 비(非)기업인 중심으로 구성한다는 게 전경련의 구상이다.

김 직무대행은 위원 위촉에 대해 "아직 특정인을 생각한 단계는 아니다"라면서도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봤을 때 누구라도 '저 정도면 부당한 압력과 행위들을 막을 수 있겠다' 싶은 분들로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경련은 윤리경영위원회 안건과 심의 결과 등을 일반에도 공개할 방침이다.

정경유착 차단과 싱크탱크 기능 확대, 글로벌 경제 이슈 대응 강화, 대국민 소통 강화 등 혁신안을 실행해 나가다 보면 대국민 이미지와 경제계 내 위상이 개선되고,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탈퇴한 4대 그룹(삼성·SK·현대자동차·LG)의 복귀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겠냐는 게 전경련의 속내로 보인다.

전경련은 4대 그룹의 재가입 가능성을 두고는 아직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회원사 재가입 여부와는 별개로 여러 현안과 관련한 소통은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직무대행은 "전경련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더욱 단단히 하고 회원 서비스를 강화하는 기구로 거듭나면 4대 그룹이 당연히 우호적 입장을 취하고 관심을 보일 것"이라며 "실무자들 중심으로는 4대 그룹과 상당한 소통을 하고 있고, 전경련 개혁의 기본 방향 등은 4대 그룹도 다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