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유출 기밀문건…WP "참을성 있는 지도자 이미지와는 달라"
"젤렌스키, 내부회의서 러 도시 점령·송유관 폭파 주장했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 국경도시를 점령하고 송유관을 폭파하는 등 과감한 공격에 나설 것을 주장했던 정황이 최근 유출된 미 정부 기밀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에서 유출된 미국 정부 기밀문서 가운데 우크라이나 정부 내부회의를 도·감청한 문서들이 있었다며 13일(지시간) 이같이 보도했다.

'1급 비밀'로 표기된 한 문서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올해 1월 한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지상군이 러시아의 불특정한 국경 도시들을 점령하는 사이 러시아 내부를 타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런 작전을 주장한 것은 모스크바와 협상에서 지렛대를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설명됐다.

또 다른 문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 2월 말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이 참석한 회의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내 군대를 타격할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지 못한 점에 우려를 표현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크라이나가 드론(무인항공기)을 이용해 러시아 서부 로스토프 지역을 타격하는 공격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월 중순에는 율리아 스비리덴코 우크라이나 제1부총리와 진행한 회의에서 드루즈바 송유관을 폭파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드루즈바 송유관은 러시아 동부에서 우크라이나 등을 경유해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과 독일에 석유를 공급하는 데 사용된다.

"젤렌스키, 내부회의서 러 도시 점령·송유관 폭파 주장했었다"
그런 드루즈바 송유관을 폭파하자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은 러시아산 석유에 의지하며 친러성향을 보이는 헝가리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 것으로 기밀문서는 평가했다.

극우 성향의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유럽에서 러시아에 가장 우호적인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WP는 이처럼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는 과감한 공격을 비밀리에 꾸민 것은 확전 우려 때문에 러시아 본토 공격을 자제하는 침착하고 참을성 많은 지도자라는 대중적 이미지와는 다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 국방부는 러시아에 대한 과감한 공격을 주장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진정성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다고 WP가 전했다.

우크라이나가 장거리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하는 것은 미국 정부에 매우 민감한 문제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제 불능 상태로 빠뜨리고 세계의 양대 핵강국인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동안 러시아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에이태큼스(ATACMS) 장거리 미사일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거부해 왔다.

이런 우려를 의식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작년부터 우크라이나가 미국산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기밀문서 중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공격적 발언만 담긴 것은 아니라고 WP가 전했다.

우크라이나군 정보기관이 지난해 쿠르드족의 도움으로 시리아 내 러시아 병력을 은밀히 공격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해 12월 참모들에게 시리아 내 러시아 병력을 겨냥한 작전 계획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