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난시장은 높은 벽으로 은폐…코로나 폭로 리원량은 흔적 없어
도시 곳곳에 '영웅 도시' 조형물 설치해 당국 부실대응 가리기
[르포] 코로나19 상흔은 가리고 '영웅과 승리'만 남은 중국 우한
"정말 끔찍했죠. 3년이 훨씬 지났지만, 당시 상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택시 기사로 일하는 왕모 씨는 코로나19와 봉쇄라는 말을 꺼내자 긴 한숨을 내쉬더니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사람 만나는 게 무서워 한동안 집 밖을 나가지 못했다며 눈에 보이는 사람이 모두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보였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의 사실상 '위드 코로나' 전환으로 14억 중국인은 일상을 회복했지만, 우한 주민들은 여전히 깊은 상흔을 안고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비상사태 해제를 맞아 우한을 둘러봤다.

우한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대규모 확산을 겪은 곳이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화난수산시장이다.

2021년 1월 코로나19 기원 조사를 위해 우한을 방문한 WHO 전문가들이 14일간 격리가 끝나자마자 방문한 곳도 화난시장이다.

화난시장은 수산물 도매 시장이지만, 음성적으로 각종 식용 야생동물을 팔던 곳이다.

[르포] 코로나19 상흔은 가리고 '영웅과 승리'만 남은 중국 우한
코로나19 초기 확진자 대다수는 이곳 상인들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집단감염이 확인된 곳이다.

하지만 화난시장을 찾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 바이두로 검색해도 신(新)화난수산시장만 검색될 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화난시장은 3m 높이의 하늘색 벽으로 둘러싸여 내부를 볼 수 없는 상태였다.

이정표와 간판 등 어디에도 이곳이 시장이었다는 표시는 없었다.

코로나19 발병 직후 폐쇄된 화난시장은 3년 이상 문을 걸어 잠갔고, 그 사이 상인들은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하늘색 벽에 그려진 각종 그림은 뿌연 먼지를 뒤집어쓴 채 빛바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여서 시장이 폐쇄된 지 오래됐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시장 입구 대형간판이 있던 자리도 철거한 지 오래돼 붉은 녹이 슬어 있었다.

다만 시장 2층의 안경 도매시장은 영업 중이라는 대형 간판을 내걸고 영업하고 있었다.

미리 알고서 찾아오지 않는다면 이곳이 코로나19 최초 발병지로 지목된 화난시장이 있던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인근에서 간식을 파는 상점에 들어가 간단한 음식을 주문하며 이곳이 화난시장이 있던 곳이 맞냐고 묻자 주인은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당국은 높은 장벽을 설치해 외부 노출을 막고 주민들도 당시를 생각하기 싫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코로나19 초기 당국의 은폐에 맞서 사태를 폭로한 리원량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르포] 코로나19 상흔은 가리고 '영웅과 승리'만 남은 중국 우한
우한중심병원 안과 의사였던 그는 2019년 12월 30일 의대 동창 단체 대화방에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유사한 질병이 퍼지고 있다는 소식을 올렸다.

이를 계기로 '원인 불명 폐렴' 확산 소식이 중국 안팎으로 급속히 퍼져나갔고 당국은 그제야 관련 정보를 공개했다.

하지만 그는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공안에 끌려가 '반성문'을 쓰는 처벌을 받았고, 며칠 뒤 코로나19에 감염돼 34세의 나이로 숨졌다.

그가 일했던 우한중심병원은 환자들로 가득했다.

병원 1층에는 의사들을 소개하는 전시물이 가득했지만, 어디서도 리원량에 대한 전시물은 찾을 수 없었다.

지난해 12월 중국의 방역 완화 후 현지 소셜미디어에는 리원량의 희생을 추모하는 글 수백 건이 쏟아졌지만, 정작 그가 일했던 병원에 그의 정보가 없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병원 정문 앞 상점에 들어가 리원량에 관해 물었더니 "그는 우한 인민의 영웅이자 중국 인민의 영웅"이라면서도 "하지만 우한 사람들은 코로나19라는 악몽을 잊고 싶어 한다"고 답했다.

우한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됐지만, 한편으로는 당국 주도의 역사 은폐 작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진도 팽목항에 세월호 기억관을 설치하고 목포 신항에 세월호 선체를 전시하는 등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며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하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셈이다.

코로나19 초기 우한의 상황을 알린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시민기자 팡빈이 지난달 30일 만기 출소했지만, 중국 매체에서 그에 대해 보도하지 않는 것도 '불편한 기억 지우기'라는 의혹에 힘을 싣는다.

[르포] 코로나19 상흔은 가리고 '영웅과 승리'만 남은 중국 우한
병원에서 시내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우한 인민은 영웅적 인민'(武漢人民是英雄的人民)이라고 쓰인 대형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코로나19를 극복한 위대한 인민이라는 의미다.

우한과 주변 도시를 연결하는 한커우역 광장과 우한 최대 번화가로 꼽히는 훙산광장 앞에도 '신시대 영웅도시 건설을 위해 힘을 내자'(奮力打造新時代英雄城市)라는 대형 조형물이 설치돼 있었다.

주민과 도시를 영웅으로 띄워 당국의 대응에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미국 등 서방에서는 중국의 코로나19 초기 부적절한 대응이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고 지적한다.

또 우한에서 코로나19가 기원했고 중국이 감염자와 사망자 수 등 많은 데이터를 은폐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중국은 과감한 우한 봉쇄 조처가 확산 방지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면서 우한은 감염자가 처음 발견된 곳일 뿐 미군의 포트 데트릭 실험실 등에서 바이러스가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