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개 보건의료단체 집단행동 동참…공통 우려는 '간호사의 영역 침범'
'지역사회'가 논란의 키워드…간호사들은 "타영역 침범·부정 안해"
의사·간호조무사·응급구조사는 왜 한목소리로 간호법 반대하나
간호법 제정안 등의 국회 통과에 반발해 3일 집단행동을 시작하는 '보건복지의료연대'엔 모두 13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는 물론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에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 등도 이름을 올렸다.

간호법 논란 초기엔 '의사 대 간호사'의 구도로 비친 경향이 있지만, 그걸 너머 '간호사 대 간호조무사' 그리고 '간호사 대 응급구조사 등 소수 직역'의 갈등인 것이다.

각 직역의 반대 사유는 제각각이지만, 공통적으로 간호법을 통해 간호사가 병원 밖 '지역사회'로 영역을 넓혀 자신들의 업무 영역을 침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바탕이 돼 있다.

◇ '간호사 단독개원' 우려하는 의사…"대리수술도 우려"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 내 간호 관련 내용을 분리한 것으로, 간호사, 전문 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업무를 명확히 하고 간호사 등의 근무 환경·처우 개선에 관한 국가 책무 등을 규정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간호사들의 숙원인 간호법 제정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2021년 무렵부터 의사단체들은 간호법이 독자적으로 진료업무를 수행하고 단독 개원까지 가능한 법이라고 반대해왔다.

의사·간호조무사·응급구조사는 왜 한목소리로 간호법 반대하나
의료법에는 간호사가 '의사의 지도하에 진료의 보조'를 할 수 있다고 돼 있지만 간호법 초안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라는 표현이 있었다.

반발과 갈등 끝에 이 표현은 빠졌지만,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제정안의 '이 법은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는 조항이 여전히 논란이다.

의사들은 '지역사회'라는 표현이 간호사가 의료기관 밖에서 의사 지도 없이 단독 개원할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간호사의 무면허 수술과 처방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한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간호법과 관련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앞으로 대리수술과 대리처방이 합법적으로 승인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라며 "앞으로 병원, 의원 및 지역사회 각종 센터 내에서 의사 없이 각종 시술 등 의료행위가 합법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의사들의 간호법 투쟁은 간호법과 함께 통과된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저항과도 맞물려 있다.

의료인 결격·면허취소 사유를 '범죄 구분 없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로 확대하는 내용인데 의사들은 교통사고로도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 있는 '면허박탈법'이라며 간호법과 엮어 전선을 구축한 상태다.

◇ '고졸 학력상한'·'간호사 보조' 반대하는 간호조무사
간호법의 당사자이기도 한 간호조무사들은 지난달에도 한 차례 연가투쟁을 하고 3일 연가투쟁도 주도하는 등 현재 투쟁 수위가 가장 높은 단체다.

의사·간호조무사·응급구조사는 왜 한목소리로 간호법 반대하나
간호조무사들의 문제 삼는 간호법 조항은 우선 간호조무사의 자격을 '특성화고의 간호 관련 학과 졸업한 사람', '고등학교 졸업자로 간호조무사양성소 교육을 이수한 사람' 등으로 규정한 부분이다.

이는 사실 의료법과도 거의 같은 조항인데, 이 조항에 반발해온 간호조무사들은 간호법에도 수정 없이 그대로 들어간 채 통과됐다는 것을 규탄하고 있다.

간호의 질을 높이려면 간호조무사들이 더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 함에도, 고졸이라는 학력 상한이 규정돼 있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이 규정대로라면 전문대 졸업자는 간호조무사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

의원급 의료기관을 제외하고는 간호조무사가 '간호사를 보조'해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 조항도 논란의 대상이다.

장기요양기관과 장애인복지시설 등 의료기관이 아닌 지역사회 시설에선 간호조무사들이 간호사 없이도 촉탁의의 지도 하에 근무가 가능한데, 간호법이 시행되면 이들 시설에서도 간호사 없이는 간호조무사를 고용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이들 시설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둘 다 채용하는 대신 간호사만 고용할 수 있다.

이 역시 '지역사회' 표현 때문에 생긴 우려다.

전동환 대한간호조무사협회 기획실장은 "'지역사회' 조항을 빼든가, '간호사 보조 업무'를 '의사·치과의사·한의사 또는 간호사 지도 하에 업무'로 변경해 달라는 것"이라며 "논란 많은 지역사회 조항 빼고 지역사회 보건의료시스템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 후 세부조항을 정하자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의사·간호조무사·응급구조사는 왜 한목소리로 간호법 반대하나
◇ 업무 침탈 우려하는 응급구조사 등 소수 직역
응급환자에 대한 구조 및 이송, 응급처치 업무 등을 수행하는 응급구조사들도 간호법이 "약소지역을 말살하는 간호사의 특혜법"이라고 강하게 반발한다.

대한응급구조사협회는 민간이송단 소속 응급구조사들이 이송 업무 중단이라는 방식으로 연가 투쟁에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응급구조사들은 간호법을 통해 의료기관 밖으로 간호사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응급구조사의 업무까지 간호사가 할 수 있게 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국내에 약 4만6천 명인 1·2급 응급구조사는 업무 범위가 법에 열거식으로 규정돼 있다.

심폐소생술, 정맥로 확보 등 14종이 1999년 이후 유지됐다가 최근에서야 심전도 측정, 심정지 시 에피네프린 투여 등 5종이 추가됐다.

소수 직역인 응급구조사들은 수행할 수 있는 업무 범위가 엄격히 제한돼 있는데 다수 간호사들이 병원 밖으로까지 업무 범위를 넓히면 생존권이 위태롭다는 것이 응급구조사들의 주장이다.

강용수 대한응급구조사협회장은 "추후에 간호법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으로 '응급간호사' 등이 등장해 응급구조사 업무를 할 수 있게 될 것이 우려된다.

간호사 인원이 많아 이 분들이 지역사회로 나오면 소수 직역은 감당이 안 된다"며 '지역사회' 조항 삭제를 요구했다.

이는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요양보호사 등 다른 직역들의 우려나 요구와도 비슷하다.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에 업무가 규정돼 있는 임상병리사와 방사선사는 간호법을 통해 간호사들이 지역사회에서 검체 채취, X레이 촬영 등 의료기사의 업무를 잠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의사·간호조무사·응급구조사는 왜 한목소리로 간호법 반대하나
◇ 간호사 "단독 개원·업무 침해 불가능"…한의사협은 "간호법 지지"
이에 대해 간호사들은 대체로 거짓 주장이고 기우라고 일축하고 있다.

현재 의료법상 건호사 업무와 대체로 동일하기 때문에 간호법이 제정된다고 해도 간호사들이 단독 개원을 할 수도, 다른 직역의 업무를 침해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대한간호협회는 "간호법안 어디에도 간호사 혼자서 돌봄을 도맡겠다는 조문은 없다"며 "간호법은 다른 직역의 영역을 침해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간호사들은 보건복지부가 간호법과 관련한 오해들을 객관적으로 정리해 갈등을 해소하는 대신 '갈등 자체가 문제라는 식의 태도'로 오히려 직역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고도 비난하고 있다.

간호사단체와 정부 사이 갈등의 골마저 깊어져 정부의 중재 역할을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간호사들 외에 간호법 제정안의 국회 통과를 환영하는 또 다른 의료계 단체는 한의사들이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지난달 28일 "간호법 제정 필요성의 근본적 취지에 공감"한다며 "국민의 고통과 불편은 외면한 채 양의사단체 등이 기어이 파업에 돌입한다면 회원 모두 최선을 다해 진료에 매진함으로써 의료 공백에 대처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의사·간호조무사·응급구조사는 왜 한목소리로 간호법 반대하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