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의 주요 금융 기관들이 몰려 있는 350 캘리포니아 스트리트. 이곳에 22층 높이로 우뚝 서 있는 오피스 건물이 급매물로 나왔다. 낙찰 예상가는 6000만달러(약 803억원). 4년 전 3억달러(약 4106억원) 대비 80% 폭락한 수준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현지시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재택근무가 활성화하면서 시작된 상업용 부동산 침체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를 소개했다. WSJ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는 상업용 건물들의 가치 하락이 유독 컸던 도시로 꼽힌다. 매물로 나온 건물의 공실률은 75%에 달한다.

미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 업체 CBRE그룹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내 사무실 30%가량이 현재 비어 있다. 공실률은 팬데믹 전 대비 7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이에 따라 건물 가치는 급속히 하락했다. 2020년 1분기 제곱피트당 88.40달러였던 평균 사무실 임대료는 올해 1분기 75.25달러로 내렸다.

설상가상으로 금리까지 치솟으면서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의 ‘거래 절벽’은 점점 심화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 분석업체 MSCI 리얼에셋에 따르면 올해 1~3월 상가 건물 거래는 10년여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 때문에 건물의 가치를 매기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상가 건물 시장의 위기는 금융권으로 번져가고 있다. 미 대형은행 웰스파고는 원금과 이자 상환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불량 대출 규모가 지난해 4분기 1억8600만달러(약 2500억원)에서 올해 1분기 7억2500만달러(약 9730억원)로 급증했다고 추산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상업용 부동산 시장발(發) 불안이 미 ‘은행 위기’를 한층 악화시킬 수 있다는 금융권 고위 인사들의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미 은행 스테이트스트리트의 론 오핸리 최고경영자(CEO)는 “상업용 부동산, 특히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최대 관심사”라고 말했다. 1220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굴리고 있는 PGIM의 부동산 대출 부문 책임자 브라이언 맥도넬은 “오피스 부문에서 시작된 위기가 전염성을 갖고 있느냐가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한 고위 관리는 상가 건물 시장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조사에선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이 연쇄 신용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상업용 부동산 시장을 꼽았다.

은행들에 미친 타격은 실적에서 이미 감지되고 있다. 웰스파고는 상가 건물을 담보로 한 부실 대출 규모가 지난해 12월 이후 50% 폭증한 15억달러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전체 상업용 부동산 담보 대출 4조5000억달러 중 3분의 1이 2025년 말 이전 만기가 도래한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촉발된 신용경색으로 이미 벼랑 끝에 내몰린 소규모 은행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전체 대출 중 상업용 부동산 담보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형은행이 13% 수준인 반면 중소형 은행은 40%에 달한다. 이들은 부실 대출 상각을 위한 대손충당금을 대폭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아칸소주 지역은행인 OZK가 1분기 책정한 대손충당금은 3600만달러로, 1년 전 대비 10배 많은 규모다.

크레디트스위스(CS) 은행 파산 사태가 휩쓸고 유럽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FT는 MSCI 자료를 인용해 올해 1분기 유럽 내 상가 건물 거래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2% 쪼그라든 365유로(약 54조원)로 집계됐다고 전했다. 이는 11년 만에 최저치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