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송어처럼 뛰어오르는…'수브르소 푸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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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단비의 발레의 열두 달
“거울 같은 강물에 송어가 뛰노네. 화살보다 더 빨리 헤엄쳐 뛰노네.”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1797~1828)가 작곡한 가곡 <송어Die Forelle>는 활기찬 가사로 시작한다.
슈베르트는 독일의 시인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다니엘 슈바르트(Christian Friedrich Daniel Schubart·1739 ~ 1791)의 시에 곡을 붙였고, 덕분에 시는 노래가 되어 오늘날까지 성악가와 관객 사이를 맑은 강물처럼 흘러 다닌다.
슈베르트가 이 곡을 작곡한 때는 스무 살의 나이, 그리고 봄이었다.
이 곡의 배경으로 종종 거론되기도 하는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 호수와 그곳에 사는 송어들도 봄이 되면 이 음악처럼 활기를 찾는다.
그런데 발레에서도 송어의 힘찬 움직임을 닮은 동작이 있다. 수브르소 푸와송(soubresaut poisson)이다.
프랑스어로 수브르소(soubresaut)는 급격한 움직임, 푸와송(poisson)은 물고기를 뜻한다.
즉, 이 동작은 두 발을 모아 힘차게 뛰어오르되 마치 물고기가 물 밖으로 튀어 오를 때 척추가 둥글게 휘는 것처럼 등을 뒤로 제쳐서 둥글게 곡선을 만드는 게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줄여서 ‘수브르소’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푸와송’까지 같이 붙여서 말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해외에서는 ‘물고기의 시간’라는 뜻의 탕 드 푸와송(temps de poisson), ‘물고기 걸음’이라는 뜻의 파 드 푸와송(pas de poisson)이라고 부른다.
혹은 시손느 수브르소(sissone soubresaut)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금씩 움직임의 차이는 있지만 시손느(sissone)도 뛰어오르는 동작 중 하나다.
수브르소 푸와송 동작이 중요하게 쓰인 대표적인 사례가 고전발레 <지젤Giselle>(1841)의 2막이다.
여주인공 지젤은 연인 알브레히트가 다른 여자와 이미 약혼한 사실을 알고 앓고 있던 심장병이 도져서 절규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똑같은 처지에 있던 여인들은 처녀귀신 ‘윌리’가 되어 2막에서 낭만발레의 정수를 보여주는 게 발레 <지젤>의 특징이다.
사랑 때문에 죽은 영혼들의 비탄은 발레 안에서 슬픔의 미학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남성들에게 복수의 칼을 겨누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비록 배신을 했지만 알브레히트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지젤은 새벽이 올 때까지 춤을 추며 윌리들이 그를 처단할 시간을 지연시키는데, 이 때 중요하게 등장하는 동작이 수브르소 푸와송이다.
무릎 길이의 하얀 로맨틱 튀튀를 입고 팔을 앞으로 내밀며 선보이는 수브르소 푸와송은 환상적이고 신화적인 자태를 만들며 관객들을 홀린다.
미국의 의사 던칸 맥두걸(Ducan Macdougal)은 1907년에 인간 영혼의 무게는 21g이라는 가설을 제기하기도 했었는데, 이 때 지젤의 춤을 보면 진짜 21g밖에 나가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가볍고 아름답다. 처연한 아름다움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장면이다.
이 동작은 제 자리에서 힘차게 뛰어오르기 때문에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장면에서도 쓰인다.
<돈키호테Don Quixote>(1869) 1막에서 남자 주인공인 이발사 바질이 마을처녀 두 명과 함께 춤추는 장면이 있다.
캐스터네츠의 소리에 맞춰 등장하는 바질은 힘차게 수브르소 푸와송을 뛰고 흥겹게 춤을 이어가는데, 보는 순간 비타민제를 먹은 것처럼 에너지가 충전된다.
여주인공 키트리의 아버지는 바질을 사윗감으로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춤의 에너지를 보면 바질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밝은 ‘좋은 남편감’임에 틀림없다.
이외에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의 이야기도 몇몇 안무가들에 의해 다양한 버전의 발레 작품으로 탄생했는데 바다의 생물들이 등장하는 만큼 수브르소 푸와송 동작이 쓰였다.
어린 시절,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돼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가슴 졸이며 책장을 넘겼던 기억이 있다.
슈베르트의 <송어>를 향해서도 그랬지만 낚시꾼이 맑은 강물에 흙탕물을 일으켜 눈을 가리는 바람에 송어는 낚싯바늘에 걸려버린다.
3절을 들을 때는 믿었던 알브레히트에게 배신을 당하는 지젤을 보는 것처럼 안타깝기도 하다. 슈베르트가 곡을 붙이지 않은 마지막 시구는 이렇다.
“청춘을 지키기 위하여, 황금같은 시기를 지체하고 있는 그대들이여! 그래도 한 번 송어를 생각해 보고 위험에 빠졌다면 서두르시오!” 시를 음미하면서 생각한다.
우리의 모든 시간은 청춘이며 황금같은 시기이다. 봄이다.
슈베르트가 송어를 작곡했던 그 계절, 다시 한 번 시작점에 서있는 그 계절이다.
우리의 눈을 흐리게 만드는 흙탕물의 속임수에 주저앉지 않고 물 밖으로 튀어 오르기를 꿈꾼다.
이발사 바질처럼, 봄날의 송어처럼 힘차게 수브르소 푸와송!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1797~1828)가 작곡한 가곡 <송어Die Forelle>는 활기찬 가사로 시작한다.
슈베르트는 독일의 시인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다니엘 슈바르트(Christian Friedrich Daniel Schubart·1739 ~ 1791)의 시에 곡을 붙였고, 덕분에 시는 노래가 되어 오늘날까지 성악가와 관객 사이를 맑은 강물처럼 흘러 다닌다.
슈베르트가 이 곡을 작곡한 때는 스무 살의 나이, 그리고 봄이었다.
이 곡의 배경으로 종종 거론되기도 하는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 호수와 그곳에 사는 송어들도 봄이 되면 이 음악처럼 활기를 찾는다.
그런데 발레에서도 송어의 힘찬 움직임을 닮은 동작이 있다. 수브르소 푸와송(soubresaut poisson)이다.
프랑스어로 수브르소(soubresaut)는 급격한 움직임, 푸와송(poisson)은 물고기를 뜻한다.
즉, 이 동작은 두 발을 모아 힘차게 뛰어오르되 마치 물고기가 물 밖으로 튀어 오를 때 척추가 둥글게 휘는 것처럼 등을 뒤로 제쳐서 둥글게 곡선을 만드는 게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줄여서 ‘수브르소’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푸와송’까지 같이 붙여서 말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해외에서는 ‘물고기의 시간’라는 뜻의 탕 드 푸와송(temps de poisson), ‘물고기 걸음’이라는 뜻의 파 드 푸와송(pas de poisson)이라고 부른다.
혹은 시손느 수브르소(sissone soubresaut)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금씩 움직임의 차이는 있지만 시손느(sissone)도 뛰어오르는 동작 중 하나다.
수브르소 푸와송 동작이 중요하게 쓰인 대표적인 사례가 고전발레 <지젤Giselle>(1841)의 2막이다.
여주인공 지젤은 연인 알브레히트가 다른 여자와 이미 약혼한 사실을 알고 앓고 있던 심장병이 도져서 절규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똑같은 처지에 있던 여인들은 처녀귀신 ‘윌리’가 되어 2막에서 낭만발레의 정수를 보여주는 게 발레 <지젤>의 특징이다.
사랑 때문에 죽은 영혼들의 비탄은 발레 안에서 슬픔의 미학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남성들에게 복수의 칼을 겨누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비록 배신을 했지만 알브레히트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지젤은 새벽이 올 때까지 춤을 추며 윌리들이 그를 처단할 시간을 지연시키는데, 이 때 중요하게 등장하는 동작이 수브르소 푸와송이다.
무릎 길이의 하얀 로맨틱 튀튀를 입고 팔을 앞으로 내밀며 선보이는 수브르소 푸와송은 환상적이고 신화적인 자태를 만들며 관객들을 홀린다.
미국의 의사 던칸 맥두걸(Ducan Macdougal)은 1907년에 인간 영혼의 무게는 21g이라는 가설을 제기하기도 했었는데, 이 때 지젤의 춤을 보면 진짜 21g밖에 나가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가볍고 아름답다. 처연한 아름다움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장면이다.
이 동작은 제 자리에서 힘차게 뛰어오르기 때문에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장면에서도 쓰인다.
<돈키호테Don Quixote>(1869) 1막에서 남자 주인공인 이발사 바질이 마을처녀 두 명과 함께 춤추는 장면이 있다.
캐스터네츠의 소리에 맞춰 등장하는 바질은 힘차게 수브르소 푸와송을 뛰고 흥겹게 춤을 이어가는데, 보는 순간 비타민제를 먹은 것처럼 에너지가 충전된다.
여주인공 키트리의 아버지는 바질을 사윗감으로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춤의 에너지를 보면 바질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밝은 ‘좋은 남편감’임에 틀림없다.
이외에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의 이야기도 몇몇 안무가들에 의해 다양한 버전의 발레 작품으로 탄생했는데 바다의 생물들이 등장하는 만큼 수브르소 푸와송 동작이 쓰였다.
어린 시절,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돼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가슴 졸이며 책장을 넘겼던 기억이 있다.
슈베르트의 <송어>를 향해서도 그랬지만 낚시꾼이 맑은 강물에 흙탕물을 일으켜 눈을 가리는 바람에 송어는 낚싯바늘에 걸려버린다.
3절을 들을 때는 믿었던 알브레히트에게 배신을 당하는 지젤을 보는 것처럼 안타깝기도 하다. 슈베르트가 곡을 붙이지 않은 마지막 시구는 이렇다.
“청춘을 지키기 위하여, 황금같은 시기를 지체하고 있는 그대들이여! 그래도 한 번 송어를 생각해 보고 위험에 빠졌다면 서두르시오!” 시를 음미하면서 생각한다.
우리의 모든 시간은 청춘이며 황금같은 시기이다. 봄이다.
슈베르트가 송어를 작곡했던 그 계절, 다시 한 번 시작점에 서있는 그 계절이다.
우리의 눈을 흐리게 만드는 흙탕물의 속임수에 주저앉지 않고 물 밖으로 튀어 오르기를 꿈꾼다.
이발사 바질처럼, 봄날의 송어처럼 힘차게 수브르소 푸와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