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사히신문 기자가 쓴 돌봄 이야기
정신질환 아내를 돌본 20년의 기록…신간 '아내는 서바이버'
나가타 도요타카는 지금의 아내와 만나 1년여의 연애 끝에 1999년 봄 결혼했다.

아내는 그야말로 완벽한 여자였다.

세탁이든 청소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깔끔하게 했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 보였다.

신문기자인 그는 2002년 요미우리신문에서 아사히신문으로 이직해 대형 사건을 맡아 취재했다.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태반이었다.

몇 달 동안 아내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 아내의 몸무게는 10㎏ 가까이 줄어 있었다.

또한 무언가를 엄청 사 먹고, 그 먹은 걸 바로 게워 내는 섭식 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내는 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그게 시작이었다.

완벽했던 아내는 먹고 토하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이로 인해 아내는 자주 응급실에 실려 갔다.

정신과 진료가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조언대로 그는 아내를 설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내는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최근 번역돼 출간된 '아내는 서바이버'(다다서재)는 아내의 정신질환을 오랫동안 돌본 한 신문사 기자의 기록을 담은 에세이다.

책은 깊어져 가는 아내의 정신질환에 점점 궁지에 몰려가는 한 남자의 마음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정신질환 아내를 돌본 20년의 기록…신간 '아내는 서바이버'
저자의 아내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방임 속에 아버지의 학대를 받았다.

잦은 폭력에 시달렸고, 심지어 성폭력까지 당했다.

결혼은 그의 탈출구였다.

그러나 첫 번째 결혼은 좋지 않게 끝났다.

저자를 만나 재혼하면서 아내는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트라우마를 억누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섭식장애로 시작된 아내의 상태는 남편에 대한 폭력과 '알코올 의존증', 다른 남자와의 만남, 여러 가지 다중인격이 나타나는 '해리성 장애'로 발전해갔다.

게다가 엄청나게 식료품을 사는 관계로 저자는 생전 처음으로 빚에 시달렸다.

저자는 아내를 돌보면서 늘 불안에 시달렸다.

취재를 하는 것만이 그의 탈출구였다.

그러나 일에 몰두할 수도 없었다.

아내의 잦은 입원 탓에 그는 일정한 출퇴근이 보장되는 부서를 찾아 다닐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특종 기회도 여러 번 날렸다.

후배들은 그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정신질환 아내를 돌본 20년의 기록…신간 '아내는 서바이버'
저자까지 우울증 전 단계인 '적응장애'에 시달렸다.

그는 항불안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아내의 알코올 의존증은 점점 심해졌다.

저자는 "아내가 맨정신이면 행복했다가 술을 마시면 절망"했다.

"상처가 나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실려 가고, 대소변 실수를 하고, 한밤중에 고함을 치고, 취한 상태로 거리에 쓰러졌다.

몇 년 전과 다름없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
아내의 기행이 조금씩 잠잠해진 건 "옛날 일은 기억하지만, 최근 일은 기억하지 못하게 된" 인지 저하증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병 덕택에 아내와 그는 조금씩 일상의 균형을 찾으며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책은 아내의 정신질환으로 저자의 삶이 무너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포착하는 한편, 사회적 차별과 편견, 생활고, 고립 등 정신질환자를 둘러싼 사회 구조적 문제도 짚어낸다.

정신질환자는 무조건 폐쇄병동에 입원시키려는 일본 사회의 문화, 상담보다는 처방에 중점을 두며 환자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 병원, 의사가 환자 면담을 겨우 5~10분밖에 할 수 없는 병원의 구조적 문제 등도 조명한다.

정신질환 아내를 돌본 20년의 기록…신간 '아내는 서바이버'
수많은 난관 속에서도 저자는 아내의 곁을 지킨다.

이유는 다양하다.

순애보 때문일 수도, 의리 때문일 수도, 연민 때문일 수도, 심리적 종속 때문일 수도 있다.

저자는 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둘 사이에 벌어진 사건과 세부 묘사에 치중한다.

그리고 그런 건조함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가장 큰 동력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아내 곁에 있는 것뿐이었다.

"
서라미 옮김. 180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