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삶이 지옥 같아요" 가정까지 무너뜨리는 대전 전세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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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도마동·괴정동 등 피해가구 55가구, 피해 규모 50억원 추산
어린자녀 둔 부모·신혼부부 피해자들, 신용불량 낙인에 이혼까지 걱정
"뉴스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 볼 때 남 일로만 생각했지, 제가 그 당사자가 될 거라고는…" 최근 인천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잇따라 숨진 가운데, 대전에서도 다가구 주택이 모여있는 서구 도마동·괴정동 등을 중심으로 50억원대 규모 전세사기가 발생했다.
전세사기 의심 피해자들은 입을 모아 "지옥 같다"며 자신들의 심정을 21일 연합뉴스에 전했다.
전날 오후, 전세사기 의혹이 있는 서구 도마동 한 다가구주택 건물에는 적막만 감돌았다.
건물 외벽 우편 반송함에 가득 차 있는 우편물과 고지서에는 오랜 기간 손길이 미치지 않은 듯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 옆에 붙어 있는 건축물 관리책임자 표시판에는 임대인 A씨의 이름이 적혀 있다.
30대인 임대인 A씨 소유의 다가구 주택 건물은 피해자 모임에서 파악한 것만 세 채다.
그중 하나인 이 건물에 세 들어 사는 피해자 조모(44)씨는 3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아내의 흔적이 남아있던 예전 집을 떠나 이곳에 10대 두 자녀와 함께 살았다.
전세계약이 만료되던 지난해 10월부터 A씨가 '두 달 안에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겠다'는 말만 반복하며 보증금 반환을 미루자 조씨는 A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걸었다.
그러나 소송을 통해 가압류된 A씨 명의의 통장에는 1만원도 되지 않는 금액만 찍혀있었다.
현재 A씨는 잠적해 피해자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다.
피해자 모임을 처음 만든 조씨는 "세입자들이 변호사를 선임하고 싶어도 대부분 어렵게 사는 서민들인데 사기까지 당해 금전적으로 어려워 대응이 힘든 상황"이라며 "방법이 없으니 다들 막막한 심정으로 반쯤 정신을 놓고 산다"고 털어놨다.
중구 문창동에 위치한 A씨 명의의 또 다른 다가구주택 건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세입자인 홍모(52)씨는 1억4천만원을 대출받아 전세 1억8천만원인 이곳에서 대학생 딸 둘과 3년 가까이 살고 있다.
계약 당시 시세 10억원이던 이 건물에는 9억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었지만, 계약을 중개하던 중개보조원은 "이 정도 근저당은 요즘 건물에 다 잡히는 정도"라며 홍씨를 안심시켰다.
최근 집이 곧 경매에 넘어가게 될 것이란 말을 듣게 된 홍씨는 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사무소를 찾아갔으나 사무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당시 계약에 관여한 중개보조원은 연합뉴스에 "우리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라며 "중개업자가 확인할 수 있는 서류들은 제한적이라 임대인 양심을 믿고 중개한 것인데, 이 임대인과 중개거래한 다른 중개사들도 실체를 알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가해자와 중재자가 '나 몰라라' 하는 사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피해자들은 "죽고 싶지만 죽지 못해 살아간다"고 했다.
홍씨는 "인천에서 자살한 사람들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갔다.
우리 빌라에서도 누구 하나 죽으면 나라에서 한 번 더 우리(피해자)를 봐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했다"면서 "경매 들어오면 나가서 살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은행 이자도 밀릴 테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도 그만둬야 하는데, 그런 상황이 올까 봐 무섭다"고 호소했다.
이제 막 가정을 꾸리기 시작한 신혼부부에게도 첫 보금자리에서 쌓은 추억들은 어느새 악몽으로 변해 있었다.
피해자 윤모(34)씨 부부가 1억원을 대출받아 1억4천만원에 신혼집을 마련한 괴정동 다가구주택은 지난달 경매에 넘어갔다.
윤씨는 "사회초년생 때부터 모았던 돈도 통째로 날리고 1억4천만원의 빚을 안게 돼 아내와 계획했던 모든 게 다 물거품이 됐다.
자녀 계획도 포기한 지 오래고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된다고 생각하니 지금 삶이 지옥 같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피해자 최모(40)씨도 "40살 직장인이 6살 아기 키우면서 억대 빚을 감당할 수 있을지 그저 막막하다.
전세사기는 피해자만 죽이는 게 아니라 가족을 다 같이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출받아 전세 1억원에 지금 집에 살면서 신축 아파트 분양에 당첨될 때까지만 해도 최씨는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최씨는 "아파트에 입주할 돈도 없고 전세자금을 갚을 길도 없다"며 "당장 생활비도 만만치 않은데 아내와 아이를 봐서라도 차라리 이혼해서 나 혼자 빚을 떠안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고 힘겹게 말을 이었다.
최씨가 전세로 사는 도마동 다가구주택은 또 다른 임대인인 30대 B씨 소유의 건물이다.
B씨 소유의 다가구주택은 도마동·태평동·월평동 등에서 지금까지 파악된 것만 다섯 채다.
그중 세금 체납과 은행 이자 연체로 두 채는 이미 경매로 팔렸고, 최씨가 사는 곳을 포함한 세 채가 경매 절차를 밟고 있다.
그런데도 최씨는 계약기간이 남아 있고 집이 아직 경매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해 피해자 신고 접수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한 피해자는 20여 명이지만 최씨처럼 잠재적인 피해자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예상돼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피해가 보상될 수 없다고 보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있다.
한 피해자는 "전세 사기 벌이고 도망친 임대인은 나중에 잡히더라도 재산은 다 빼돌리고도 남았을 것"이라며 "이들이 빼돌린 돈을 쓸 생각만 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인데 차라리 그 돈 못 쓰게 평생 감옥에서 썩었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피해자는 피해자가 더 생기기 전에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수사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전세 제도가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과 정보의 비대칭성을 지적했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차인이 중개인과 임대인에 대한 신뢰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세 자금을 믿고 맡기는 건데, 갭투자로 마음먹고 사기를 치려고 하면 지금처럼 전세사기가 가능한 제도적 허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면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범죄 피해자들에 상응하는 피해자로 보고 이에 대한 국가적 구휼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어린자녀 둔 부모·신혼부부 피해자들, 신용불량 낙인에 이혼까지 걱정
"뉴스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 볼 때 남 일로만 생각했지, 제가 그 당사자가 될 거라고는…" 최근 인천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잇따라 숨진 가운데, 대전에서도 다가구 주택이 모여있는 서구 도마동·괴정동 등을 중심으로 50억원대 규모 전세사기가 발생했다.
전세사기 의심 피해자들은 입을 모아 "지옥 같다"며 자신들의 심정을 21일 연합뉴스에 전했다.
전날 오후, 전세사기 의혹이 있는 서구 도마동 한 다가구주택 건물에는 적막만 감돌았다.
건물 외벽 우편 반송함에 가득 차 있는 우편물과 고지서에는 오랜 기간 손길이 미치지 않은 듯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 옆에 붙어 있는 건축물 관리책임자 표시판에는 임대인 A씨의 이름이 적혀 있다.
30대인 임대인 A씨 소유의 다가구 주택 건물은 피해자 모임에서 파악한 것만 세 채다.
그중 하나인 이 건물에 세 들어 사는 피해자 조모(44)씨는 3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아내의 흔적이 남아있던 예전 집을 떠나 이곳에 10대 두 자녀와 함께 살았다.
전세계약이 만료되던 지난해 10월부터 A씨가 '두 달 안에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겠다'는 말만 반복하며 보증금 반환을 미루자 조씨는 A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걸었다.
그러나 소송을 통해 가압류된 A씨 명의의 통장에는 1만원도 되지 않는 금액만 찍혀있었다.
현재 A씨는 잠적해 피해자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다.
피해자 모임을 처음 만든 조씨는 "세입자들이 변호사를 선임하고 싶어도 대부분 어렵게 사는 서민들인데 사기까지 당해 금전적으로 어려워 대응이 힘든 상황"이라며 "방법이 없으니 다들 막막한 심정으로 반쯤 정신을 놓고 산다"고 털어놨다.
중구 문창동에 위치한 A씨 명의의 또 다른 다가구주택 건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세입자인 홍모(52)씨는 1억4천만원을 대출받아 전세 1억8천만원인 이곳에서 대학생 딸 둘과 3년 가까이 살고 있다.
계약 당시 시세 10억원이던 이 건물에는 9억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었지만, 계약을 중개하던 중개보조원은 "이 정도 근저당은 요즘 건물에 다 잡히는 정도"라며 홍씨를 안심시켰다.
최근 집이 곧 경매에 넘어가게 될 것이란 말을 듣게 된 홍씨는 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사무소를 찾아갔으나 사무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당시 계약에 관여한 중개보조원은 연합뉴스에 "우리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라며 "중개업자가 확인할 수 있는 서류들은 제한적이라 임대인 양심을 믿고 중개한 것인데, 이 임대인과 중개거래한 다른 중개사들도 실체를 알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가해자와 중재자가 '나 몰라라' 하는 사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피해자들은 "죽고 싶지만 죽지 못해 살아간다"고 했다.
홍씨는 "인천에서 자살한 사람들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갔다.
우리 빌라에서도 누구 하나 죽으면 나라에서 한 번 더 우리(피해자)를 봐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했다"면서 "경매 들어오면 나가서 살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은행 이자도 밀릴 테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도 그만둬야 하는데, 그런 상황이 올까 봐 무섭다"고 호소했다.
이제 막 가정을 꾸리기 시작한 신혼부부에게도 첫 보금자리에서 쌓은 추억들은 어느새 악몽으로 변해 있었다.
피해자 윤모(34)씨 부부가 1억원을 대출받아 1억4천만원에 신혼집을 마련한 괴정동 다가구주택은 지난달 경매에 넘어갔다.
윤씨는 "사회초년생 때부터 모았던 돈도 통째로 날리고 1억4천만원의 빚을 안게 돼 아내와 계획했던 모든 게 다 물거품이 됐다.
자녀 계획도 포기한 지 오래고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된다고 생각하니 지금 삶이 지옥 같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피해자 최모(40)씨도 "40살 직장인이 6살 아기 키우면서 억대 빚을 감당할 수 있을지 그저 막막하다.
전세사기는 피해자만 죽이는 게 아니라 가족을 다 같이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출받아 전세 1억원에 지금 집에 살면서 신축 아파트 분양에 당첨될 때까지만 해도 최씨는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최씨는 "아파트에 입주할 돈도 없고 전세자금을 갚을 길도 없다"며 "당장 생활비도 만만치 않은데 아내와 아이를 봐서라도 차라리 이혼해서 나 혼자 빚을 떠안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고 힘겹게 말을 이었다.
최씨가 전세로 사는 도마동 다가구주택은 또 다른 임대인인 30대 B씨 소유의 건물이다.
B씨 소유의 다가구주택은 도마동·태평동·월평동 등에서 지금까지 파악된 것만 다섯 채다.
그중 세금 체납과 은행 이자 연체로 두 채는 이미 경매로 팔렸고, 최씨가 사는 곳을 포함한 세 채가 경매 절차를 밟고 있다.
그런데도 최씨는 계약기간이 남아 있고 집이 아직 경매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해 피해자 신고 접수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한 피해자는 20여 명이지만 최씨처럼 잠재적인 피해자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예상돼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피해가 보상될 수 없다고 보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있다.
한 피해자는 "전세 사기 벌이고 도망친 임대인은 나중에 잡히더라도 재산은 다 빼돌리고도 남았을 것"이라며 "이들이 빼돌린 돈을 쓸 생각만 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인데 차라리 그 돈 못 쓰게 평생 감옥에서 썩었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피해자는 피해자가 더 생기기 전에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수사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전세 제도가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과 정보의 비대칭성을 지적했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차인이 중개인과 임대인에 대한 신뢰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세 자금을 믿고 맡기는 건데, 갭투자로 마음먹고 사기를 치려고 하면 지금처럼 전세사기가 가능한 제도적 허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면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범죄 피해자들에 상응하는 피해자로 보고 이에 대한 국가적 구휼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