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일성, '임시정부 인장 헌납' 김구 만류" 주장도
[평양NOW] '김구·김일성 회담' 남북연석회의 75주년…통일전선전술 성격
북한이 남북연석회의 75주년(19일)을 맞아 김일성 우상화를 강화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 라디오 방송인 '통일의 메아리'는 김일성 주석이 해방 직후 "민족의 모든 애국적 민주 역량을 굳게 묶어 세워 구국통일전선을 형성할 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해 북과 남의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를 소집하도록 하시었다"고 19일 전했다.

통일의 메아리는 "(연석회의에 참석한) 남조선의 민족주의자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 뵈오면 뵐수록 그이께서 지니신 숭고한 민족애와 고결한 인품에 완전히 매혹되었으며 그이의 통일전선 노선을 받들어 나갈 결의를 다짐하였다"고 주장했다.

통신강의 대학인 김일성방송대학 사이트 '우리민족강당'은 남북연석회의가 "(김일성의) 민족대단결 사상에 응축되어 있는 민족자주의 사상, 애국애족의 사상과 민족단합의 사상이 안아온 빛나는 결실"이라고 칭송했다.

일부 관영매체는 연석회의에 참가한 김구 선생이 김일성에게 상해임시정부 인장을 헌납하려 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대남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연석회의에 참가하여 꿈만 같은 나날을 보내면서 김구 선생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생각이 끝없이 갈마들었다"며 "그것은 자신이 오랜 기간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고 소중히 간직해 온 상해임시정부의 인장을 위대한 수령님께 바칠 결심이었다"고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는 김일성이 인장 헌납을 만류하며 '그저 인민대중의 두터운 신임이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고도 했다.

[평양NOW] '김구·김일성 회담' 남북연석회의 75주년…통일전선전술 성격
남북연석회의는 해방 직후 남북한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들이 남북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결성한 의사 결정체다.

북한의 제의에 따라 1948년 4월 19일부터 30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됐다.

북한 15개, 남한 40개, 해외 1개 등 총 56개 정당·사회단체의 대표 695명이 참가했다.

그러나 연석회의에서는 남한의 단독 총선거를 반대하는 북한의 일방적 진행 속에 진행됐다.

이에 반발한 김구와 김규식의 요구로 김일성, 김두봉과의 '4김 회담'과 15명이 참가한 '남북 정당·사회단체 지도자협의회'가 열렸다.

협의회는 외국군대 철수, 총선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 '단선단정'(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등을 내용으로 한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 발표 이후 단선단정 반대 운동이 전개됐지만 5월 10일 국회의원 총선거와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막지는 못했다.

북한은 이후로도 남북연석회의 개최를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남한 정부는 '남남갈등'을 조장하려는 통일전선전술의 일환으로 판단해 수용하지 않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8년 4월 18일 남북연석회의 50주년 기념 중앙연구토론회에 보낸 서한에서 '민족 자주의 원칙에 기초한 단결' 등이 포함된 '민족대단결 5대 방침'을 제시하기도 했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는 "김구 선생이 합의서 도장을 찍으려고 인장을 가지고 간 것 같지만 김일성에게 헌납하려고 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김일성이 연석회의에 김구를 초청한 것은 자리의 무게를 높이기 위한 것일 뿐 진정으로 남북 회의를 할 뜻은 없었다"고 분석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안 받아들여질지 알면서 남북연석회의를 주기적으로 제의하는 것은 내부 정치적 이유에 따른 것"이라며 "내부적으로 (북한 당국의 평화통일 노력과 의지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NOW] '김구·김일성 회담' 남북연석회의 75주년…통일전선전술 성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