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기록 귀로 듣고 직접 만지며 업무…장애인 사법지원 충분치 않아"
로스쿨 재학 중 시력 잃어…서울중앙지법 장애인의 날 행사서 강연
시각장애 김동현 판사 "장애인도 시대 같이 살아가는 한 사람"
"민사소송이 전자소송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해도 시각장애가 있는 저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속기사들의 도움을 받아 소송 기록과 자료를 한글·엑셀 파일로 바꾼 다음 '스크린리더' 프로그램을 통해 음성 변환 작업을 거쳐 문서 내용을 귀로 들으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
제43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서울중앙지법이 17일 서울법원종합청사 청심홀에서 개최한 강연에 나선 시각장애인 김동현 판사는 시종일관 밝은 표정이었다.

카이스트 출신인 김 판사는 지난 2012년 로스쿨 재학 중 의료사고로 시력을 잃었지만 성적 우등생으로 로스쿨을 졸업했다.

이후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과 서울시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변호사와 수원지방법원을 거쳐 현재는 서울중앙지법에서 근무하고 있다.

김 판사는 방대한 소송 자료와 기록을 열람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시각장애로 인한 어려움이 크다고 인정하면서도 법원 직원들의 도움과 시스템 지원을 통해 판결문 작성 등의 업무를 무리 없이 수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담 속기사 두 명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그는 "서증으로 제출된 도면은 3D 펜으로 선을 따라 그려주면 직접 손으로 만지면서 파악한다"며 "제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판결문 작성이나 정보 검색 시스템의 접근성이 충분히 확보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판사는 접근성의 개념에 대해 "특별히 무엇인가를 변경하지 않아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시설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여전히 현행 사법제도에 장애인을 위한 지원 체계가 충분히 구축돼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판사는 "발달장애인 진술 조력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이 있지만 5일간 교육을 받는 게 전부고 그 수도 충분치 않아 모두 지원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또 소송 비용과 관련해서도 "위자료 청구 소송의 경우 일부라도 패소를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의 (소송)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수임료를 받지 않고 무료로 소송 지원을 하는 점이 상대방에게만 좋은 결과로 돌아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처음부터 판사가 꿈은 아니었지만 "인권 감수성이 좋은 사람들이 좋은 판결을 해주면 좋겠다"는 말에 목표를 갖게 됐다는 김 판사는 시각장애인 구기종목인 '쇼다운' 국가대표에 도전하는 등 틈틈이 건강한 취미 생활도 즐기고 있다며 웃었다.

김 판사는 "30년간 비장애인이었고 어쩌다 보니 사고로 장애인이 됐지만 그 이전과 이후의 제가 다른 사람이 아닌 것처럼 장애인도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일 뿐"이라며 "제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살아가는, 따지고 보면 별로 특별할 게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달라"는 소망을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