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서>는 한밤에 읽기 좋은 책이다. 페르난두 페소아가 심야의 적막한 방에서 혼자, 퇴근 후의 권태와 피로를 무겁게 짊어진 채, 독백처럼 흘러나오는 언어를 글로 옮겨 적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밤중 침대에 누워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나의 또 다른 자아와 마주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를테면 페소아가 생의 고달픔을 나직이 털어놓은 대목에서 그랬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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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에게 극히 사소한 것만을 간청했다. 그런데 그 극히 사소한 소망들도 삶은 들어주지 않았다. 한 줄기의 햇살, 전원에서의 한순간, 아주 약간의 평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빵, 존재의 인식이 나에게 지나치게 짐이 되지 않기를, 타인들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기를, 그리고 타인들도 나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기를. 그런데 이 정도의 소망도 충족되지 못했다. 마치 어떤 사람이 마음이 악해서가 아니라 단지 외투의 단추를 풀고 지갑을 꺼내기 귀찮아서 거지에게 적선을 베풀지 않은 것처럼, 삶은 나를 그렇게 대했다.” (32쪽)

나는 이 대목을 잊을 만하면 꺼내 읽는다. 내가 삶에게 어쩔 수 없이 바랐고, 무시로 거절당했으며, 그럼에도 기대를 놓지 못했던 순간들을 페소아가 언어로 고스란히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앞서 살았던 누군가가 나와 동일한 슬픔을 감내했고 정확한 문장으로 남겨두기까지 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껴서다. 그리하여 나는 이 책을 오랫동안 반복해 읽었다.

물론 거듭되는 독서 과정에서 사소한 아쉬움도 생겼다. 큼직한 판형에 808쪽이라는 두께(그로 인한 무게)가 종종 책 읽기를 버겁게 만든 탓이다. 실제로 나는 <불안의 서>를 카페에서, 지하철에서, 여행지에서 읽는 경험을 한 번도 누리지 못했다. 책을 구입하고 8년 남짓 소장하는 동안 오직 방 안에서만 읽었다. 좀처럼 밖에 가지고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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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불안의 서>를 읽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를 책의 만듦새가 지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페소아를 접하기에 가장 알맞은 환경으로 독자를 유도하는 측면이 있는지도.

그럼에도 나는 이따금 <불안의 서>를 작고 가벼운 판형으로 들고 다니며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워낙 분량이 많으니 여러 권의 문고본으로 나누어 하나의 박스 세트로 출간되면 좋겠다는 상상도 한다.

그러면 달리는 기차 안에서도, 햇빛이 내리쬐는 벤치에서도, 숲의 한가운데에 쳐놓은 텐트에 누워서도 <불안의 서>를 한 손으로 펼쳐 든 채 읽을 수 있을 텐데(물론 전자책을 이용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또 다른 경험일 것이다). 좁고 어둑한 방이 아닌 시공간에서 <불안의 서>를 접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것은 지난 8년과 얼마나 다른 독서 체험일까. 침대맡에 묵직한 바위처럼 자리잡은 이 책을 볼 때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