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칼럼] 미워도 적으로 삼아선 안 될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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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관파천·영일동맹, 을사조약 단초
지도자의 무지와 감정적 대응
국가 운명 그르치는 비극 낳아
일본과 적대적일 때 안보위기 반복
얄미운 상대이더라도
우리 생존 위해 공존의 길 찾아야
윤성민 논설위원
지도자의 무지와 감정적 대응
국가 운명 그르치는 비극 낳아
일본과 적대적일 때 안보위기 반복
얄미운 상대이더라도
우리 생존 위해 공존의 길 찾아야
윤성민 논설위원
대영제국은 300년가량 그 어느 나라와도 동맹을 맺지 않았다. 이른바 ‘영광의 고립(splendid isolation)’이다. 영국이 외교 대원칙을 깨고 첫 동맹을 맺은 것이 1902년 영·일 동맹이었다.
동맹은 공포와 증오의 합작품이다. 영국은 러시아와 세계 패권을 놓고 ‘그레이트 게임’ 중이었으며, 일본은 러시아 남하 시 막강 발트함대에 두려움을 느꼈다. 촉매제는 어이없게도 조선이 제공했다. 일본이 싫었던 고종은 러시아 공관으로 일종의 망명인 아관파천(1896년)을 하고 친러정권을 자임했다. 세계 최강 영국의 원수인 러시아와 손을 잡은 탓에 영국과, 그 형제 국가 미국과도 적대관계가 된 순간이다.
일본은 한반도가 적대국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방관할 수 없는 나라다. 천험(天險)의 지리적 이점이 적충(賊衝·적이 드나드는 통로)에 노출될 것이란 위기의식을 안고 산다. 일본은 동맹 영국의 전폭적 지원 아래 1904년 러·일 전쟁에서 이긴 뒤 이듬해 을사조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장악한다. 고종은 미국에 ‘SOS’를 쳐보지만, 대한제국의 친러 성향을 인지한 미국은 외면한다. 고종은 반일 감정만 앞섰을 뿐 피아식별과 정세 판단 능력이 없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구한말 상황은 국가만 치환됐을 뿐 얼개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러시아의 역할은 중국이, 영국의 역할은 미국이 맡았고 일본은 이번에도 최대 해양 세력과 혈맹을 맺고 대륙 세력에 맞서고 있다. 우리는 세계 최빈국 수준에서 10대 경제 대국에 올랐다. 그럼 강대국이 됐는가. 우리는 전교 10등이지만 주변국들은 나란히 전교 1, 2, 3, 4 등이다. 지정학은 상대적 개념이다. 우리는 여전히 약소국 포지션이다.
남북 분단 상황에서 우리는 미국과, 북한은 중국과 동맹을 맺고 있다는 게 그때와 가장 큰 차이다. 그런데 한·미 동맹은 온전했던가. 문재인 정권은 역대 가장 친중·종북·반일 성향의 정권이었다. 세상이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오판 아래 줄을 대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돌아온 것은 ‘방중 식사 10끼 중 혼밥 8끼’라는 하대와 굴욕이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는 헛발질로 북한에 핵 개발 시간만 벌어줬다. 그는 징용공 배상 대법원판결 이후 일본이 경제 보복 조치를 취하자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호협정)’를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의 잠수함 탐지 능력을 활용해 북한 잠수함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길을 홧김에 걷어찼다.
윤석열 정부 들어 외교·군사·안보의 정상화 과정에서 지금까지 화룡점정은 방일 정상회담이었다. 예상대로 더불어민주당은 ‘반일 감정’을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자위대 군홧발이 한반도를 다시 더럽히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런 일은 어떨 때 일어날 수 있나. 한·미 동맹이 폐기되고 미·일 동맹은 존속한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과 손잡고 남한 땅에 들어서는 때가 아닐까 싶다. 그때는 자위대의 군홧발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운명이 극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니, 우려의 번지수가 한참 잘못됐다.
한·미·일 군사협력은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해서도 긍정적이다. 동맹의 힘이란 어떤 건가. 미국의 동맹 수는 52개국이다. 반면 중국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북한과 파키스탄, 딱 두 나라다. 러·일 전쟁 때 영국은 북유럽 발트함대의 일본행 지름길인 수에즈운하를 막아줬다. 장장 2만9000㎞를 돌아온 러시아 함대가 쓰시마 앞바다에 이르렀을 땐 이미 녹초가 돼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 일본은 불구대천이었다. 그런 두 나라가 불과 11년 뒤 광해군 때 기유약조(1609년)로 국교를 재개했다. 북쪽 여진족에 군사력을 집중하기 위해선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불가피했다. 얼마 전 한 여론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의 70%는 일본에 ‘비호감’이라고 한다. 일본은 미울 때가 많다. 어제 공개된 일본 외교청서에서 독도 영유권 문제를 또 들고나온 것도 그렇다. 그런데 이 설문조사에는 무서운 내용이 있다. 우리 안보에서 일본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단 1.1%에 불과했다.
역사는 우리가 일본과 적대적일 때 늘 안보 위기가 발생했다고 가르쳐 준다. 윤 대통령의 3월 방일에 이어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5월 G7 서밋 이후 답방할 예정이다. 임진왜란 때도 국교 정상화에 11년이 걸렸는데, 한·일 정상 셔틀 외교가 부활하는 데 12년이나 걸렸다. 일본이 밉더라도 생존을 위해 공존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동맹은 공포와 증오의 합작품이다. 영국은 러시아와 세계 패권을 놓고 ‘그레이트 게임’ 중이었으며, 일본은 러시아 남하 시 막강 발트함대에 두려움을 느꼈다. 촉매제는 어이없게도 조선이 제공했다. 일본이 싫었던 고종은 러시아 공관으로 일종의 망명인 아관파천(1896년)을 하고 친러정권을 자임했다. 세계 최강 영국의 원수인 러시아와 손을 잡은 탓에 영국과, 그 형제 국가 미국과도 적대관계가 된 순간이다.
일본은 한반도가 적대국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방관할 수 없는 나라다. 천험(天險)의 지리적 이점이 적충(賊衝·적이 드나드는 통로)에 노출될 것이란 위기의식을 안고 산다. 일본은 동맹 영국의 전폭적 지원 아래 1904년 러·일 전쟁에서 이긴 뒤 이듬해 을사조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장악한다. 고종은 미국에 ‘SOS’를 쳐보지만, 대한제국의 친러 성향을 인지한 미국은 외면한다. 고종은 반일 감정만 앞섰을 뿐 피아식별과 정세 판단 능력이 없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구한말 상황은 국가만 치환됐을 뿐 얼개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러시아의 역할은 중국이, 영국의 역할은 미국이 맡았고 일본은 이번에도 최대 해양 세력과 혈맹을 맺고 대륙 세력에 맞서고 있다. 우리는 세계 최빈국 수준에서 10대 경제 대국에 올랐다. 그럼 강대국이 됐는가. 우리는 전교 10등이지만 주변국들은 나란히 전교 1, 2, 3, 4 등이다. 지정학은 상대적 개념이다. 우리는 여전히 약소국 포지션이다.
남북 분단 상황에서 우리는 미국과, 북한은 중국과 동맹을 맺고 있다는 게 그때와 가장 큰 차이다. 그런데 한·미 동맹은 온전했던가. 문재인 정권은 역대 가장 친중·종북·반일 성향의 정권이었다. 세상이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오판 아래 줄을 대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돌아온 것은 ‘방중 식사 10끼 중 혼밥 8끼’라는 하대와 굴욕이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는 헛발질로 북한에 핵 개발 시간만 벌어줬다. 그는 징용공 배상 대법원판결 이후 일본이 경제 보복 조치를 취하자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호협정)’를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의 잠수함 탐지 능력을 활용해 북한 잠수함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길을 홧김에 걷어찼다.
윤석열 정부 들어 외교·군사·안보의 정상화 과정에서 지금까지 화룡점정은 방일 정상회담이었다. 예상대로 더불어민주당은 ‘반일 감정’을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자위대 군홧발이 한반도를 다시 더럽히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런 일은 어떨 때 일어날 수 있나. 한·미 동맹이 폐기되고 미·일 동맹은 존속한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과 손잡고 남한 땅에 들어서는 때가 아닐까 싶다. 그때는 자위대의 군홧발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운명이 극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니, 우려의 번지수가 한참 잘못됐다.
한·미·일 군사협력은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해서도 긍정적이다. 동맹의 힘이란 어떤 건가. 미국의 동맹 수는 52개국이다. 반면 중국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북한과 파키스탄, 딱 두 나라다. 러·일 전쟁 때 영국은 북유럽 발트함대의 일본행 지름길인 수에즈운하를 막아줬다. 장장 2만9000㎞를 돌아온 러시아 함대가 쓰시마 앞바다에 이르렀을 땐 이미 녹초가 돼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 일본은 불구대천이었다. 그런 두 나라가 불과 11년 뒤 광해군 때 기유약조(1609년)로 국교를 재개했다. 북쪽 여진족에 군사력을 집중하기 위해선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불가피했다. 얼마 전 한 여론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의 70%는 일본에 ‘비호감’이라고 한다. 일본은 미울 때가 많다. 어제 공개된 일본 외교청서에서 독도 영유권 문제를 또 들고나온 것도 그렇다. 그런데 이 설문조사에는 무서운 내용이 있다. 우리 안보에서 일본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단 1.1%에 불과했다.
역사는 우리가 일본과 적대적일 때 늘 안보 위기가 발생했다고 가르쳐 준다. 윤 대통령의 3월 방일에 이어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5월 G7 서밋 이후 답방할 예정이다. 임진왜란 때도 국교 정상화에 11년이 걸렸는데, 한·일 정상 셔틀 외교가 부활하는 데 12년이나 걸렸다. 일본이 밉더라도 생존을 위해 공존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