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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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기업들이 지난해 실적이 크게 악화한 가운데서도 연구개발(R&D) 투자를 대폭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경기 회복 이후에 대비해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미래 유망 산업의 핵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익 줄어도 R&D 투자 늘려 지난해 15%↑…첫 50조 돌파
7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상위 200대 기업은 지난해 연구개발비로 총 51조4224억원을 지출했다. 전년(44조6504억원) 대비 15.19% 증가한 수치다. 유가증권시장 200대 기업의 연구개발비 총액이 50조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이들 기업의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218조6447억원에서 188조4125억원으로 13.83% 줄었다. 영업이익이 두 자릿수 감소했지만 연구개발비는 오히려 두 자릿수 늘린 것이다. 작년 연구개발비 증가율은 영업이익이 70% 이상 늘어난 2021년 연구개발비 증가율(10.05%)보다 5%포인트 높았다.

지난해 R&D 투자 확대는 대기업이 주도했다. 업종별로는 반도체, 자동차, 2차전지 분야 기업의 R&D 투자 증가가 두드러졌다. 삼성전자는 연구개발비를 2021년 22조4017억원에서 작년 24조9192억원으로 11.2%(2조5175억원) 늘렸다. SK하이닉스 역시 전년 대비 26% 늘린 4조4746억원의 연구개발비를 지난해 집행했다. 이들은 TSMC, 마이크론, 인텔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 경쟁하고 있는 만큼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업황 하락 사이클에서도 대규모 R&D 투자를 이어간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자동차도 2021년 1조5350억원이던 연구개발비를 작년엔 1조7627억원으로 14.5% 늘렸다. 현대차그룹 전체를 합치면 지난해 R&D 투자 총액은 7조원이 넘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같은 미래산업 원천기술 확보 등을 위해 그룹 전반적으로 R&D 투자를 확대했다는 분석이다.

전장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삼은 LG전자도 연구개발비를 2021년 2조930억원에서 지난해 2조3973억원으로 14.54% 늘렸다. LG에너지솔루션(전년 대비 26.09% 증가), SK(17.73%), 두산에너빌리티(47.1%) 등도 지난해 연구개발비 집행을 크게 확대했다.

코스닥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상위 200대 기업은 지난해 연구개발비로 2조2887억원을 썼다. 이는 전년(1조9537억원)보다 17.15% 늘어난 것으로, 전년 연구개발비 증가율(16.6%)을 소폭 웃도는 수치다. 코스닥 200대 기업의 영업이익 증가율은 2021년 40.5%에 달했지만 작년엔 9.7%로 크게 낮아졌다.

김범준 가톨릭대 회계학과 교수는 “연구개발비는 4~5년 후 기업 실적과 뚜렷한 양의 관계를 보여주는 핵심 요인”이라며 “연구개발비 증액은 당장은 이익을 감소시키는 요인이지만 기업이 기술 역량을 높이는 데 성공하면 중장기적으로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