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예금자보호 확대
최근 보름 새 벌어진 국제 금융계의 혼란에는 전에 없던 몇몇 특이점이 보였다. 무엇보다 ‘휴대폰(디지털) 뱅크런’으로 예금 인출이 순식간에 이뤄졌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을 보면 이런 ‘소리 없는 뱅크런’은 밤도 없다. 미국 중앙은행(Fed)과 연방예금보험공사가 곧바로 대책회의를 열고 ‘계좌 폐쇄, 예금 전액 보장’ 결정을 내린 것도 일요일이었다. 대책도 즉각, 휴일 여부를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디지털 시대답다. 크레디트스위스(CS) 좌초도 말 그대로 ‘블랙스완’이었다. 세상 돈이 다 몰린다는, 그것도 167년 역사의 스위스 은행이 몰락하리라고 누가 예상했나.

‘그렇다면 내 돈은 안전한가?’ 예금자보호 제도가 있지만 국내에선 ‘일괄 5000만원’이다. 예금자 불안이 커질 만하다. 2001년 2000만원에서 이렇게 올린 뒤 22년째 그대로다. 지난해 3월 금융위원회가 한도 증액을 추진했는데, 정권 교체기에 유야무야돼 버렸다. 이번 위기 같은 혼란에 확대 필요성이 다시 급부상했다.

예금보호 한도를 늘리면 예금자는 금융회사 형편이야 어떻든 금리만 좇고, 저축은행·상호금융 같은 소규모 금융사도 건전성보다 ‘고위험 돈장사’에 몰두할 것이라는 우려가 전부터 있었다. 예금보험료도 올라가니 그 부담이 당장은 금융사, 곧바로 금융소비자에 전가된다는 문제점도 있다. 하지만 22년 새 경제 규모가 많이 커졌다. 국내총생산(GDP)은 3배, 금융자산은 4배나 불었다. 손볼 때가 된 것이다. 더구나 불안심리가 팽배해졌다.

미국 25만달러(약 3억3000만원), 유럽연합 10만유로(약 1억4000만원), 일본 1000만엔(약 1억원)과 비교해도 적다. 최소 1억원 정도로는 올려야 한다. 물론 이렇게 했을 때 금융 업종·회사 간 예금 이동, 주식·채권에서 일반 예금으로 쏠림이 있을 것이다. 금융시장에 작지 않은 충격이 된다. 그렇다면 금융권별 차별화, 금융상품별 한도 세분화 같은 보완책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과 불가피한 고금리, 국내외 불안 심리를 두루 감안하면 예금자보호 제도는 어떻게든 경제 덩치에 맞게 새 옷으로 갈아입을 때다. 매사 싸움질인 국회의 여야가 이 문제에선 모처럼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도 고무적이다. 행여 국내에서도 뱅크런 조짐이 보이면 그때는 늦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