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동안 지켜본 나의 고향…신안을 사진에 담다
전남 목포에서 배를 타고 북서쪽으로 61㎞를 가면 신안군 어의도가 나온다. 면적 1.6㎢의 작은 섬에서 태어난 사진작가 강홍구(66·사진)는 어릴 적 바다 위 섬들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엉뚱한 상상을 하고는 했다. ‘서쪽 섬에 해적이 보물을 숨겨둔 건 아닐까, 섬 사이에 거대한 연필로 다리를 놓으면 어떨까….’

목포교육대를 나와 ‘섬마을 선생님’이 된 뒤에도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상상으로 넘쳐났다. 강 작가가 교사를 그만두고 스물여덟 살의 나이로 홍익대 미대에 들어가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도 이런 ‘끼’를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섬 소년은 어느덧 서울에 사는 중년의 사진작가가 됐다.

잊혀가던 고향이 다시 강 작가의 삶에 들어온 것은 2005년의 어느 봄날. “오랜만에 고향에 가서 고사리를 따고 싶다”는 어머니를 모시고 섬을 다시 찾으면서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의 모습은 생소했다. 사람들과 건물은 물론 자연환경까지 강 작가의 기억과 전혀 달랐다.

17년 동안 지켜본 나의 고향…신안을 사진에 담다
기록해 둬야겠다는 생각에 사진기를 들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신안군 섬들의 구석구석을 기록하는 강 작가의 작업은 이렇게 시작됐고, 지난해까지 17년에 걸쳐 이어졌다. 그 결과물을 펼친 전시가 서울 진관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무인도와 유인도-신안바다2’다.

전시장 초입부터 눈이 시원해지는 풍경 사진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형 사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장의 작은 사진을 이어 붙인 자국이 보인다. 강 작가는 “자국이 남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보정할 수도 있었지만 ‘사진은 현실의 단면을 보여줄 뿐 현실이 될 수는 없다’는 철학을 보여주기 위해 이어 붙인 흔적을 그대로 남겨뒀다”고 했다.

풍경 사진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은 강 작가가 사진에 그림을 덧그린 ‘사진 회화’ 작업이다. ‘무인도 085’에서는 두 개의 무인도를 찍은 사진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거대한 연필을 얹었다. ‘모래의 기억’에는 갯벌 사진 위로 벌거벗은 아이들과 게, 수영복을 입고 앉아 있는 여성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는 어린 시절의 기억, 추억과 상상을 그림으로 덧입혔습니다. 원근법도 신경 쓰지 않고 마음대로 그렸는데 마음에 든다는 사람이 많아요. 제가 사실은 서양화과를 나왔거든요. 하하.”

17년 동안 지켜본 나의 고향…신안을 사진에 담다
빨랫줄에 걸린 옷, 꽃, 무, 배추, 나비, 추사 김정희와 단원 김홍도의 작품에서 차용한 난초와 대나무…. 강 작가는 자신이 찍은 섬 사진 위에 마음 가는 대로 그림을 그린다. 생선 말리는 집, 태풍이 몰아치는 바닷가, 갯벌 위에도 마찬가지다.

기법은 사진과 회화, 콜라주를 넘나든다. 재료도 다양하다. 작품 ‘신안-기록과 기억 05-22’는 벽면 한쪽을 차지하는 대작으로, 사람들과 자연의 모습을 담은 작품 26점을 이었다. 플라스틱병, 낚시용 가짜 미끼들, 색색의 유리질 부표, 각종 어구 잔해 등 바닷가에서 주운 쓰레기를 그 앞에 매달았다. 작가는 “바다가 ‘나 힘들다’며 사람들에게 쓰레기를 도로 뱉어내는 듯했다”고 말했다.

작품만큼이나 전시 구성이 빛난다. 일반적인 갤러리와 미술관보다 천장이 높고 채광이 좋은 사비나미술관의 장점을 100% 활용했다. 작품들이 벽에 드문드문 배치돼 있는데, 아무렇게나 건 듯하지만 관람객의 시선을 상하좌우로 뒤흔든다. 이명옥 관장은 “신안 바다 위에 여러 섬이 떠 있는 모습을 모티브로 꾸몄다”고 설명했다.

귀에 들려오는 신안 바닷가에서 녹음한 파도 소리도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를 더한다. 건조한 물고기 실물도 전시회장을 꾸민다. 만재도의 풍경과 파도 소리를 기록한 22분 길이의 영상을 보고 있자면 물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는 이른바 ‘물멍’을 하는 기분이 든다.

전시는 4월 23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