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NGO통제법' 추진하는 정부에 친서방 야권·인권단체 반발
"민주주의 후퇴로 10년 공들인 EU 가입 어려워질 것" 우려
야권연대 "친서방의 길 보증하지 않는 한 시위 계속" 주장
조지아 시위사태 일단 봉합됐지만…'친러 대 친서방' 갈등 여전
캅카스 지역의 옛 소련 국가 조지아에서 외국으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언론매체나 비정부기구(NGO)를 규제하는 법이 추진되자 이에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거센 시위는 표면적으로는 권력 감시와 표현의 자유 억압에 반발하는 데서 비롯됐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친러시아 서향의 정부·여당의 반서방 행보에 대한 광범위한 분노가 존재한다.

시위 이틀 만에 집권당은 법안 추진을 멈추겠다고 한발짝 물러섰지만, 친러시아 대 친서방 노선 사이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

9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외국 세력 영향의 투명성을 위한 법안'을 발의했던 여당 '조지아의 꿈'과 친여 정당 소속 의원들이 이날 법안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수도 트빌리시 등지에서 수만 명이 모여 격렬한 시위를 벌인지 이틀 만이다.

전날 밤에는 경찰이 물대포와 최루탄을 쏘는 등 강경 진압에 나섰고, 시위 참가자 133명이 체포됐다.

철회된 법안은 언론사나 NGO가 연간 수입의 20%를 외국으로부터 지원받을 경우 '외국 세력의 대행자'로 등록하도록 의무화하고 자금 명세를 당국에 신고하게 하는 등 내용이 골자다.

집권당은 '외국 세력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는 경우 투명성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야당과 인권단체는 이 법안이 2012년 러시아가 정부에 비판적인 여론을 단속하기 위해 제정한 법률을 모델로 하는 것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비판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조지아 내 선거, 부패 감시 단체 및 독립 언론 등이 영향을 받게 되며 이들에 '외부 세력'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다고 지적했다.

법안에 따르면 외국의 도움을 받는 언론이나 NGO는 정부에 정기적인 활동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며 엄격한 세무 조사를 받아야 한다.

이를 거부하거나 일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9천600 달러(약 1천200만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

위반이 반복되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도 있다.

조지아 시위사태 일단 봉합됐지만…'친러 대 친서방' 갈등 여전
휴먼라이츠워치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조지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법치주의의 후퇴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조지아 정부와 집권당의 친러시아 성향에 대한 조지아인들의 쌓인 분노가 분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집권당인 조지아의 꿈은 친러시아 성향 기업가 출신 정치인 비드지나 이바니슈빌리가 2012년 창립했다.

NYT는 이바니슈빌리가 러시아에서 벌인 사업으로 부를 축적했고, 현재까지도 크렘린궁의 지원을 받는 인물로 알려졌다고 소개했다.

이 당 소속 의원들은 조지아의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미국과 유럽이 내정 간섭을 한다고 비난해 왔다.

범유럽 싱크탱크인 유럽국제관계협의회(ECFR)는 조지아의 꿈 당이 조지아를 러시아의 영향권으로 되돌려 놓으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지아는 지난 10년간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해 왔다.

지난해 3월에는 공식적으로 가입 신청서를 냈지만, 아직 후보국 지위를 얻지 못했다.

야당과 시위대는 이번 법안 통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이에 따라 EU 가입이 더욱 어려워지는 것을 우려한다.

실제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는 "이 법은 EU의 가치와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친러시아·친서방 노선 지지 세력 간 대립이 존재하지만, 과거 러시아의 침공 역사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많은 조지아인은 유럽과 밀착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외신들은 분석한다.

지난해 실시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조지아인의 4분의 3 이상이 친서방 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는 2008년 조지아의 친서방 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친러 분리주의 지역 남오세이탸와 압하지야에 대한 조지아 정부의 탄압을 빌미로 조지아를 전면 침공한 바 있다.

시위는 정부가 법안 추진을 완전히 포기하고 잘못을 인정할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야권 연대는 9일 낸 성명에서 "조지아가 친서방의 길을 확실히 밟고 있다는 보증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이 과정(시위)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당은 야권이 법안 내용을 왜곡하고 '러시아의 법'이라는 거짓 딱지를 붙였다며 갈등을 줄일 방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조지아 시위사태 일단 봉합됐지만…'친러 대 친서방' 갈등 여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