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이냐 족쇄냐…美 반도체 보조금 조건에 국내기업 셈법 복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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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수표는 없다" 엄포에 커지는 고민…곧 공개 '중국 가드레일' 예의주시
미국내에서도 "과하다" 여론…대미투자 망설여질 상황
수출 반토막에 1분기 적자 눈앞…사면초가 위기에도 잠자는 'K칩스법'
미국 상무부가 자국내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지급하는 보조금의 세부 기준을 공개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분주하게 손익계산을 따져보고 있다.
미국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올 정도로 기업 입장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도체 핵심 공정 접근 허용과 초과이익 공유 등이 대표적으로 논란을 부를 만한 기준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조만간 공개될 '중국 가드레일'(안전장치)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미중 갈등 상황에서 양쪽 눈치보기를 해온 국내 반도체 업체로서는 가뜩이나 최악의 업황으로 1분기 수조원대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미국 측 지원금을 마냥 흘려버릴 수도 없는 처지여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이해득실 따져봐야"…미국 내에서도 '과하다' 지적
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종 채널을 통해 미 상무부의 반도체 제조시설 보조금 지원 조건 세부 내용을 면밀히 따져보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앞서 미 상무부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경제·국가 안보, 사업 상업성, 재무 건전성, 기술 준비성, 인력 개발, 사회공헌 등의 6가지 보조금 심사 기준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재무 건전성을 검증할 수 있는 수익성 지표와 예상 현금흐름 전망치를 제출하고, 지원금을 1억5천만달러(한화 약 2천억원) 이상 받은 기업의 경우 현금 흐름과 수익이 전망치를 초과하면 초과 이익을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 이 조건을 끝까지 지킬 수 있도록 여러 안전장치를 시행할 것"이라며 "우리는 백지수표를 쓰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당장 미국 내부에서도 과하다는 여론이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설에서 "(반도체 회사들은) 진보적인 사회 정책의 계약 하인이 될 것"이라며 "아시아보다 40% 이상 비싼 생산비용을 만회하려고 보조금을 지급한다면서 기업에 비용을 전가시키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미 싱크탱크인 경제혁신그룹의 애덤 오지멕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반도체 산업을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게 만드는 일이 어려운 도전임을 인정하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성취하려고 해 그 도전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짚었다.
예상보다 까다로운 조건에 국내 반도체 업계는 고민이 커진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기술 노출 가능성과 정보 공개 위험 등의 우려도 나온다.
자금 활동이나 향후 사업 확장에 대해 감시에 가까운 제한을 받는 점도 부담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설 접근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될지, 초과이익 환수는 몇 년이나 한다는 건지 아직은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며 "지금 공개된 내용만 보면 독소조항인데 이를 협상으로 풀어낼 수 있는지 이해득실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황당하다"며 "가뜩이나 미국에서 생산하면 국내보다 인건비 등의 비용이 30% 가량 더 들어가는데 이렇게 제재가 많으면 과연 세액공제를 받아야 할 것인지 기업 입장에서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대미 투자 지연될까…'중국 가드레일' 예의주시
일단 삼성전자는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현재 삼성전자는 170억달러(약 22조5천억원)를 투입해 미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삼성전자가 보조금을 신청한다고 가정하고 단순 계산하면, 받을 수 있는 직접 보조금은 8억5천만∼25억5천만달러(약 1조1천억∼3조4천억원) 규모다.
대출과 보증까지 포함하면 지원액은 59억5천만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아직 할 얘기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미 공장을 건설 중인 삼성전자와 달리 SK하이닉스는 아직 공장 부지조차 선정하지 않은 상태다.
앞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작년 7월 조 바이든 대통령과 화상 면담에서 총 220억달러(약 29조원)의 신규 투자 계획을 밝히고 이중 150억달러(약 19조9천억원)는 연구개발, 메모리 반도체 첨단 패키징 제조시설 등 반도체 산업에 투자한다고 약속한 바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상반기부터 부지를 물색한다는 계획이다.
패키징 등 후공정 시설 지원금 신청은 6월 말부터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짓고 있는 (삼성전자의) 테일러 공장은 어쩔 수 없지만 보조금 조건이 이런 식이라면 삼성전자의 다른 공장 신·증설 계획이나 SK하이닉스의 투자 계획은 미뤄질 수 밖에 없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작년 7월 텍사스주에 1천921억달러(약 252조6천억원)를 투자해 오스틴 2곳, 테일러 9곳의 반도체 생산공장을 새로 짓는 방안을 담은 세제혜택신청서를 제출한 바 있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지원금 활용을 전제로 향후 미국 내 D램 생산도 가능한 상황이었으나 정보 공개 우려와 초과이익 반납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고수익성 제품의 생산은 기피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업계에서는 이달 중 공개될 '중국 가드레일' 조항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보조금을 받은 업체는 향후 10년간 중국 내 생산 능력을 확대할 수 없도록 명시한 가운데 중국 투자 제한 기준이 더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실상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중국 시안 공장에서 낸드 생산량의 40%를 생산하고 있고, SK하이닉스는 D램 생산량의 40% 이상을 중국 우시 공장에서, 낸드 생산량의 20%를 인텔로부터 인수한 다롄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에 공개된 보조금 심사 기준은 '보조금 지급 기준이 빡빡하구나' 정도지만, 조만간 공개될 '중국 가드레일'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에 따라 정말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관계자는 "중국의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데 우리는 미국의 제재 때문에 중국 공장을 업그레이드 못 해서 경쟁력 낮은 제품을 생산하게 되면 누가 사겠느냐"며 "그동안의 투자와 공장 내 장비 등을 고려하면 탈중국이나 중국 공장의 저부가 전환 등도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 2월 반도체 수출 반토막…1분기 반도체 적자 기정사실
반도체 업황 부진도 국내 기업의 고민을 깊게 하는 요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반도체 2월 수출액은 59억6천만달러로 작년 같은 달보다 42.5%(44억달러) 급감해 거의 반토막 수준이 됐다.
반도체 수출은 1월에도 44.5% 감소한 데 이어 월간 기준으로 7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D램과 낸드 가격(고정가격 기준)은 각각 전년 대비 46.1%, 13.9% 하락한 상태다.
올해 1분기 반도체 적자는 기정사실화됐다.
연합인포맥스가 최근 2개월 내 보고서를 낸 증권사 20곳의 컨센서스를 집계한 결과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2조1천83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4.54% 급감할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반도체 부문에서 3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6.1% 급감한 5조3천368억원, 영업손실은 2조7천758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최태원 회장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3'에서 "반도체 사이클이 짧아져 곧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고는 했지만, 수요 부진에 반도체 재고는 사상 최고 수준으로 눈덩이처럼 쌓이고 있다.
당장 현금이 아쉬운 상황에서 까다로운 조건을 이유로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거부할 수도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투자를 지속한다는 명목 아래 이례적으로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빌리기도 했다.
◇ 'K칩스법' 제자리…"정부·국회 적극 노력해야"
이처럼 국내 반도체 기업이 사실상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하면서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도 미국 정부와 가드레일 조항 관련 협의에 나서며 기업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그간 정부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미 상무부에 가드레일 조항과 관련한 입장을 개진해 왔으며 앞으로도 세부 규정 마련 과정에서 우리 기업 입장이 반영되도록 협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반도체 산업을 지원할 일명 'K칩스법'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세액공제율을 대기업·중견기업은 현행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현행 16%에서 25%로 각각 상향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 정부안을 원안 관철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세원 감소를 문제 삼고 있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안타깝게도 반도체산업 등 국가전략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특법 등 시급한 민생 경제 법안들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며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당부하기도 했다.
박재근 교수는 "우리가 미국 주도 반도체 공급망 확보에 협조하는 만큼 동맹의 대우를 해야 된다는 점을 대통령이 나서든 해서 국가적으로 어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이어 "다른 트랙으로는 우리가 반도체 제조 경쟁력을 올려야 한다"며 "우리 경쟁력 강화를 위해 조세특례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등 정부와 국회가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미국내에서도 "과하다" 여론…대미투자 망설여질 상황
수출 반토막에 1분기 적자 눈앞…사면초가 위기에도 잠자는 'K칩스법'
미국 상무부가 자국내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지급하는 보조금의 세부 기준을 공개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분주하게 손익계산을 따져보고 있다.
미국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올 정도로 기업 입장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도체 핵심 공정 접근 허용과 초과이익 공유 등이 대표적으로 논란을 부를 만한 기준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조만간 공개될 '중국 가드레일'(안전장치)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미중 갈등 상황에서 양쪽 눈치보기를 해온 국내 반도체 업체로서는 가뜩이나 최악의 업황으로 1분기 수조원대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미국 측 지원금을 마냥 흘려버릴 수도 없는 처지여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이해득실 따져봐야"…미국 내에서도 '과하다' 지적
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종 채널을 통해 미 상무부의 반도체 제조시설 보조금 지원 조건 세부 내용을 면밀히 따져보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앞서 미 상무부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경제·국가 안보, 사업 상업성, 재무 건전성, 기술 준비성, 인력 개발, 사회공헌 등의 6가지 보조금 심사 기준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재무 건전성을 검증할 수 있는 수익성 지표와 예상 현금흐름 전망치를 제출하고, 지원금을 1억5천만달러(한화 약 2천억원) 이상 받은 기업의 경우 현금 흐름과 수익이 전망치를 초과하면 초과 이익을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 이 조건을 끝까지 지킬 수 있도록 여러 안전장치를 시행할 것"이라며 "우리는 백지수표를 쓰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당장 미국 내부에서도 과하다는 여론이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설에서 "(반도체 회사들은) 진보적인 사회 정책의 계약 하인이 될 것"이라며 "아시아보다 40% 이상 비싼 생산비용을 만회하려고 보조금을 지급한다면서 기업에 비용을 전가시키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미 싱크탱크인 경제혁신그룹의 애덤 오지멕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반도체 산업을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게 만드는 일이 어려운 도전임을 인정하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성취하려고 해 그 도전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짚었다.
예상보다 까다로운 조건에 국내 반도체 업계는 고민이 커진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기술 노출 가능성과 정보 공개 위험 등의 우려도 나온다.
자금 활동이나 향후 사업 확장에 대해 감시에 가까운 제한을 받는 점도 부담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설 접근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될지, 초과이익 환수는 몇 년이나 한다는 건지 아직은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며 "지금 공개된 내용만 보면 독소조항인데 이를 협상으로 풀어낼 수 있는지 이해득실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황당하다"며 "가뜩이나 미국에서 생산하면 국내보다 인건비 등의 비용이 30% 가량 더 들어가는데 이렇게 제재가 많으면 과연 세액공제를 받아야 할 것인지 기업 입장에서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대미 투자 지연될까…'중국 가드레일' 예의주시
일단 삼성전자는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현재 삼성전자는 170억달러(약 22조5천억원)를 투입해 미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삼성전자가 보조금을 신청한다고 가정하고 단순 계산하면, 받을 수 있는 직접 보조금은 8억5천만∼25억5천만달러(약 1조1천억∼3조4천억원) 규모다.
대출과 보증까지 포함하면 지원액은 59억5천만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아직 할 얘기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미 공장을 건설 중인 삼성전자와 달리 SK하이닉스는 아직 공장 부지조차 선정하지 않은 상태다.
앞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작년 7월 조 바이든 대통령과 화상 면담에서 총 220억달러(약 29조원)의 신규 투자 계획을 밝히고 이중 150억달러(약 19조9천억원)는 연구개발, 메모리 반도체 첨단 패키징 제조시설 등 반도체 산업에 투자한다고 약속한 바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상반기부터 부지를 물색한다는 계획이다.
패키징 등 후공정 시설 지원금 신청은 6월 말부터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짓고 있는 (삼성전자의) 테일러 공장은 어쩔 수 없지만 보조금 조건이 이런 식이라면 삼성전자의 다른 공장 신·증설 계획이나 SK하이닉스의 투자 계획은 미뤄질 수 밖에 없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작년 7월 텍사스주에 1천921억달러(약 252조6천억원)를 투자해 오스틴 2곳, 테일러 9곳의 반도체 생산공장을 새로 짓는 방안을 담은 세제혜택신청서를 제출한 바 있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지원금 활용을 전제로 향후 미국 내 D램 생산도 가능한 상황이었으나 정보 공개 우려와 초과이익 반납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고수익성 제품의 생산은 기피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업계에서는 이달 중 공개될 '중국 가드레일' 조항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보조금을 받은 업체는 향후 10년간 중국 내 생산 능력을 확대할 수 없도록 명시한 가운데 중국 투자 제한 기준이 더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실상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중국 시안 공장에서 낸드 생산량의 40%를 생산하고 있고, SK하이닉스는 D램 생산량의 40% 이상을 중국 우시 공장에서, 낸드 생산량의 20%를 인텔로부터 인수한 다롄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에 공개된 보조금 심사 기준은 '보조금 지급 기준이 빡빡하구나' 정도지만, 조만간 공개될 '중국 가드레일'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에 따라 정말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관계자는 "중국의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데 우리는 미국의 제재 때문에 중국 공장을 업그레이드 못 해서 경쟁력 낮은 제품을 생산하게 되면 누가 사겠느냐"며 "그동안의 투자와 공장 내 장비 등을 고려하면 탈중국이나 중국 공장의 저부가 전환 등도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 2월 반도체 수출 반토막…1분기 반도체 적자 기정사실
반도체 업황 부진도 국내 기업의 고민을 깊게 하는 요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반도체 2월 수출액은 59억6천만달러로 작년 같은 달보다 42.5%(44억달러) 급감해 거의 반토막 수준이 됐다.
반도체 수출은 1월에도 44.5% 감소한 데 이어 월간 기준으로 7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D램과 낸드 가격(고정가격 기준)은 각각 전년 대비 46.1%, 13.9% 하락한 상태다.
올해 1분기 반도체 적자는 기정사실화됐다.
연합인포맥스가 최근 2개월 내 보고서를 낸 증권사 20곳의 컨센서스를 집계한 결과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2조1천83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4.54% 급감할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반도체 부문에서 3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6.1% 급감한 5조3천368억원, 영업손실은 2조7천758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최태원 회장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3'에서 "반도체 사이클이 짧아져 곧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고는 했지만, 수요 부진에 반도체 재고는 사상 최고 수준으로 눈덩이처럼 쌓이고 있다.
당장 현금이 아쉬운 상황에서 까다로운 조건을 이유로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거부할 수도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투자를 지속한다는 명목 아래 이례적으로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빌리기도 했다.
◇ 'K칩스법' 제자리…"정부·국회 적극 노력해야"
이처럼 국내 반도체 기업이 사실상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하면서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도 미국 정부와 가드레일 조항 관련 협의에 나서며 기업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그간 정부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미 상무부에 가드레일 조항과 관련한 입장을 개진해 왔으며 앞으로도 세부 규정 마련 과정에서 우리 기업 입장이 반영되도록 협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반도체 산업을 지원할 일명 'K칩스법'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세액공제율을 대기업·중견기업은 현행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현행 16%에서 25%로 각각 상향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 정부안을 원안 관철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세원 감소를 문제 삼고 있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안타깝게도 반도체산업 등 국가전략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특법 등 시급한 민생 경제 법안들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며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당부하기도 했다.
박재근 교수는 "우리가 미국 주도 반도체 공급망 확보에 협조하는 만큼 동맹의 대우를 해야 된다는 점을 대통령이 나서든 해서 국가적으로 어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이어 "다른 트랙으로는 우리가 반도체 제조 경쟁력을 올려야 한다"며 "우리 경쟁력 강화를 위해 조세특례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등 정부와 국회가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