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 변한 도로, "전진 불가" 역사속 전투 데자뷔?…우크라에 악재되나
"러, 정착지 6곳 포격·포위망 구축 시도"…러 드론 공격에 서부서 2명 사망
젤렌스키, 바흐무트 전황에 "갈수록 악화…항공 금기 해제돼야" 전투기 거듭 요청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바흐무트 전선에 우크라이나로선 예기치 못한 악재가 돌출했다.

봄비가 내리면서 얼어붙었던 땅이 진창으로 바뀌면서다.

여기에 머릿수에서 앞서는 러시아군이 포위망 구축을 시도하는 상황이다.

2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바흐무트를 비롯한 동부 도네츠크주(州) 일대의 우크라이나군은 진흙구덩이가 된 참호에 몸을 숨긴 채 격전을 치르고 있다.

날씨가 갑작스레 따뜻해진데다 비까지 내려 땅이 물러진 탓이다.

우크라이나군 최전방 포병대 지휘관 미콜라(59)는 "양쪽 모두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보다시피 봄은 진창을 뜻하고, 따라서 전진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은 실제로 다수의 군용차량이 진흙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게 된 모습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일대에선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비포장도로와 평원이 거대한 진흙탕으로 변해 통행이 힘들어진다.

러시아어로 '라스푸티차', 우크라이나어로는 '베즈도리자'로 불리는 이 현상은 1812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러시아 원정과 1941년 아돌프 히틀러의 소련 침공을 좌절시킨 요인 중 하나가 되는 등 역사적으로 공격 측에 불리하게 작용해 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이 화력적으로 우세한 러시아군을 상대로 우월한 기동력과 정보력을 앞세워 '치고 빠지기' 전술을 구사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라스푸티차로 인한 기동력 상실은 우크라이나군에 불리한 조건으로 볼 수도 있다.

러시아군은 서서히 전선을 밀어내며 바흐무트를 완전히 포위하려 시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작전참모는 "적 병사의 수가 늘고 있다"면서 러시아군이 바흐무트 주변 6개 정착지에 포격을 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방 정보당국과 군사 전문가들은 바흐무트 전선의 러시아군이 엄청난 인명피해를 냈을 것으로 보지만, 러시아군은 바흐무트 북쪽과 남쪽에서 느리지만 확실히 전선을 밀어붙이며 우크라이나군을 시내에 고립시키려 시도 중인 것으로 보인다.

바흐무트는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 지역 전체를 장악하기 위한 교두보로 여겨진다.

바흐무트를 손에 넣는다면 러시아 입장에선 반년여 만에 최대의 군사적 성과가 된다.

작년 8월 부분동원령을 내려 소집한 예비군 수십만명이 최근 전력화되면서 러시아군은 동부 전선 곳곳에서 공세를 강화해 왔다.

우크라이나 동부사령부 대변인인 세르히 체레바티는 현지 방송에 출연해 "(바흐무트에서) 악랄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며 "지휘부는 우리 영토를 통해 적이 진격하는 걸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화상연설에서 바흐무트의 전황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적은 우리 위치를 무장하고 방어하는데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끊임없이 파괴하고 있다.

바흐무트 주변 지역을 지키는 우리 병사들은 진정한 영웅들이다"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27일 이란제 자폭 드론으로 흐멜니츠키시를 폭격해 응급요원 2명이 숨지는 등 피해를 내는 등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 대해서도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는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깜짝 방문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재확인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키이우를 전격 방문한 지 일주일만이다.

옐런 재무장관은 "미국은 얼마가 걸리든 우크라이나 편에 설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미 정부가 할당한 99억 달러의 예산 중 12억5천만 달러를 우선 전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데니스 시미할 우크라이나 총리는 말했다.

다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우크라이나가 요구해 온 F-16 전투기 지원에는 여전히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밤 라디오로 방송된 연설에서 "협력국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항공 금기'가 완전히 해제돼야만 우리는 하늘을 완전히 보호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몇주 우크라이나군은 수세를 유지하며 러시아군의 공세를 막아내는 데 전력을 집중해 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군사원조를 바탕으로 올해 중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것으로 전망한다.

작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은 초반 파죽지세의 기세로 수도 키이우 바로 앞까지 진격했다가 예상과 달리 패퇴했지만, 아직 우크라아니 영토의 20% 가까이를 장악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