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이어 정순신 낙마…조직 안팎서 사퇴론 고조
취임 반년만에 두번째 '초대형 위기' 윤희근 경찰청장
정순신(57) 변호사가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국가수사본부장(이하 국수본부장)에서 낙마하면서 추천자인 윤희근 경찰청장의 책임론과 사퇴론이 고조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경찰의 수장에 올라 두 달여 뒤 이태원 참사로 맞은 위기를 무혐의 처분을 받아 간신히 넘겼으나 이번 '정순신 사태'로 취임 6개월 만에 두번째 '초대형 위기'에 몰린 셈이다.

정 변호사의 임명이 하루 만에 취소됐지만 아들 학교폭력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으면서 인사검증 실패에 대한 1차 책임이 윤 청장에게로 몰리는 모양새다.

경찰 내부의 우려와 비판을 무릅쓰고 검사 출신을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수본부장에 추천한 윤 청장의 입지는 한층 줄어들었다.

행정안전부 경찰국 설치와 이에 반발해 모인 총경 회의 참석자들에 대한 인사 보복 논란이 불거지는 터라 조직 장악력에도 의문에 제기되면서 윤 청장에 대한 경찰 내부 불만은 임계치에 다다르고 있다.

경찰 안팎에선 경찰 조직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이태원 참사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국수본부장 인사 파동을 초래한 윤 청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예기치 못했던 대형 재난이었던 이태원 참사와 달리 이번 '정순신 사태'는 윤 청장 본인의 의지로 충분히 막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책임론의 무게는 더 커지고 있다.

취임 반년만에 두번째 '초대형 위기' 윤희근 경찰청장
경찰 내부 반응도 윤 청장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25일 정 변호사의 낙마 후 경찰 내부 게시판에는 윤 청장이 정 변호사 추천을 강행한 장본인이라며 불신임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일선 경찰들은 "무능한 경찰청장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용퇴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거나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경찰의 중립성을 지켜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며 윤 청장의 사퇴를 강하게 요구했다.

내부 발탁이 원칙인 국수본부장 인선 절차를 굳이 외부 공모로 고집한 이유를 따지는 반응도 나온다.

민관기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위원장은 26일 성명에서 "경찰청의 치안감 및 치안정감에도 수사를 전문분야로 하는 대상자가 있는데도 외부에서 임용할 필요가 무엇이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수본부장 외부 공모는 '필요가 있을 때'에만 하도록 규정한다.

이 때문에 경찰 일각에선 윤석열 대통령과의 근무 인연 등을 근거로, 정 변호사가 국수본부장에 '사전 내정'됐고 이에 윤 청장이 호응한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온다.

정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네 기수 선배인 윤 대통령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1과장이던 2011년 대검찰청 부대변인으로 재직했다.

2018년에는 서울중앙지검장과 인권감독관으로 같은 검찰청에 근무했다.

또 윤 대통령의 최측근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이원석 검찰총장과는 사법연수원 27기 동기다.

정 변호사가 국수본부장 지원을 앞두고 변호사 휴업을 한 것을 두고서도 이런 내정설의 정황으로 꼽힌다.

취임 반년만에 두번째 '초대형 위기' 윤희근 경찰청장
정 변호사 낙마 이후 윤 청장이 언론을 대하는 태도도 구설에 올랐다.

정 변호사의 임명이 취소된 뒤 주말 내내 언론의 입장 표명 요구에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않던 윤 청장은 27일 출근 때도 한 시간가량 일찍 출근해 언론 노출을 피했다.

오전 9시께 국회 일정을 위해 경찰청 청사를 나가기 직전 예고없는 기자회견을 했지만 "추천권자로서 일련의 상황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은 채 자리를 피했다.

윤 청장을 국회에서 만난 취재진이 '사퇴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으나 "(거취에 대해) 고민은 늘 하고 있다"는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그는 지난달 4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나가서도 사퇴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고민하겠다"고 즉답을 피한 적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