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어려운데 왜 개발 프로젝트 부도 이야기는 없죠" [김진수의 부동산 인사이드]
지난해 하반기부터 건설·부동산 시장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개발하기 위해 토지를 매입하는 시행사도 자금 조달이 여의찮아 사업을 포기하거나 디폴트(채무불이행)를 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별다른 이야기가 없습니다. 왜일까요.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구에서는 개발 사업지에 대한 공매 입찰이 잇따랐습니다. 공급 과잉과 입주 물량 증가, 기존 아파트값 하락으로 금융권이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을 우려해서 발생한 일들입니다.

하지만 아직 개발업계에 내로라하는 업체의 프로젝트가 공매로 나온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금융기관별로 '소규모' 개발사업과 관련한 PF 부실 사업장은 늘고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입니다. 이들 프로젝트는 부동산 시장 침체와 공사비 인상 등에 따른 기한이익상실(EOD) 등의 이유로 공매로 나옵니다. 하지만 규모가 작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습니다.

개발 프로젝트가 금융기관 연결되는 경우는 토지를 계약한 뒤 토지비를 조달하는 브릿지론과 인허가를 마치고 공사비와 운영비까지 조달하는 본PF가 있습니다. 일단 지난해 하반기 이후 신규로 브릿지론을 일으키는 건 쉽지 않습니다. 초기 단계 개발 사업은 '일단 멈춤' 상태입니다. 브릿지론을 본PF로 전환해야 하는데, 금리도 높고 대주단 구성도 쉽지 않습니다. 공사비 인상과 자금 조달 비용 상승으로 사업성이 팍팍해졌기 때문입니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최근 상황을 '태풍의 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태풍이 몰려오면 사방으로 비바람이 거세지만, 태풍의 한가운데인 눈은 고요합니다. 마치 아무 일 없는 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시행사가 브릿지론 연체 이자를 조달하면 대부분의 대주단이 만기 연장을 인정해주는 분위기입니다. 시행사가 손을 들 경우 상황이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대주단의 자산 건전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여러 금융기관이 대주단을 구성해 자금을 지원하기 때문에 1건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프로젝트의 부실이 누적되면 고정이하여신비율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건전성은 5단계(정상,요주의,고정, 회수의문,추정손실)로 나뉘고, 고정이하여신비율이 높으면 자산 건전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총여신 중 연체 기간 3개월 이상으로 회수에 문제가 생긴 부실채권 비율을 의미합니다.

연체되고 회수에 문제가 생기는 프로젝트가 늘어나면 금융기관도 골치 아파집니다. 정상여신이 디폴트(채무불이행)이 나는 순간 부실여신 처리 부담이 커집니다. 그만큼 충당금을 쌓아야 하고 금융기관 이미지에도 타격을 주고 조달금리도 치솟습니다. 또 다른 시행사 관계자는 "오히려 금융기관이 여신을 연장하는 방법을 찾아서 제안하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갑과 을이 바뀌는 셈입니다. 차주인 시행사보다 대주인 금융기관이 더 답답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개발업계는 '정중동' 상태입니다. 아니 '살얼음을 걷는다'는 말이 더 적합할 수 있습니다. 금리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미분양 물량은 늘어가고 아파트값도 하락세입니다. 전·월세 시장도 불안합니다. 몇 년간 증가한 공급 물량은 입주난으로 닥칠 기세입니다. 어디를 봐도 시장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개발 프로젝트의 사업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통상 6~9개월인 브릿지론 재연장 만기가 도래하는 하반기 사고 프로젝트가 급증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건 이 같은 개발 프로젝트가 좌초될 경우 3년 뒤 수급 미스매치(불균형) 상태가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지금과는 다른 시장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