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시 억대 연봉에 자가용, 거액 업무추진비까지 막강한 권한
자치단체장 출마 교두보까지 확보 가능해 유혹 뿌리치기 어려워
'홍어·전복 돌리고 현금 뿌리고'…조합장 선거 혼탁 '위험수위'
"오는 3월 8일 실시하는 조합장 선거와 관련해 금품(홍어 등)을 받은 조합원은 선거관리위원회에 자수해 과태료를 감경·면제받기를 바랍니다.

"
이달 초 전북 전주시 호성동 전주김제완주축협 지점과 사무소 등 9곳에 내걸린 자수 권고 현수막이다.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두고 금품선거 제보를 받은 전북도선거관리위원회가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메시지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홍어를 선물 받은 다수의 유권자가 자수했다.

이처럼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두고 전국에서 '돈 선거'로 대표되는 혼탁 양상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이번 조합장 선거는 선관위가 선거 관리를 위탁받은 뒤 치르는 세 번째 선거로 전국에서 1천353명의 조합장을 뽑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6일 현재 이번 조합장 선거 관련 위법행위 조치 건수는 총 149건(고발 62건·수사 의뢰 3건·경고 등 84건)으로 전체 고발 건 중에 기부행위가 52건으로 84%에 달했다.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는 조합원에게 선물을 제공한 혐의(공공단체 등 위탁 선거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모 농협 조합장 선거 입후보 예정자 A씨를 경찰에 고발했다.

A씨는 2021년 추석 때 조합원 162명에게 486만원 상당, 2022년 설에는 조합원 288명에게 518만원 상당의 선물을 각각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2022년 3월부터 8월까지 조합원 60여명에게 36만원 상당의 선물을 주는 등 모두 1천40만원 어치의 선물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홍어·전복 돌리고 현금 뿌리고'…조합장 선거 혼탁 '위험수위'
지난 9일 경북 봉화에서는 조합원에게 현금 100만원을 건넨 입후보 예정자가 현장에서 적발됐다.

앞서 지난 6일 대구 동구에서는 입후보를 앞둔 농협 조합장이 조합원들에게 전복을 선물했다가 경찰에 고발됐다.

해당 조합장은 지난해 9월 추석 선물로 개당 4만5천원짜리 전복 선물 세트 총 117만원어치를 조합원 등 26명에게 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경남에서는 이번 선거와 관련해 총 10건에 12명이 경찰에 고발됐다.

기부행위가 9건으로 대다수를 차지했고 인쇄물 시설 이용이 1건으로 나타났다.

충남선관위는 현재까지 10명을 고발하고 18건에 대해 경고했다.

지역 한 조합장은 조합원 220여명에게 718만원 상당의 과일 선물 세트를 제공했다가 고발됐다.

또 전북의 한 조합장은 조합 경비로 조합원 경조사에 축·부의금을 내면서 조합 경비임을 밝히지 않거나 본인 명의로 제공하는 등 500여건, 2천600만원 상당의 축·부의금을 제공한 혐의로 고발되기도 했다.

이처럼 조합장 선거가 혼탁하게 전개되는 이유는 조합장이 가진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조합 직원이나 조합원들은 그 권한을 '제왕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조합 규모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억대 연봉에 자가용이 나온다.

거액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할 수 있다.

거기에다 인사권까지 쥐고 있다.

특히 연임 등을 통해 인지도를 높여 기초·광역의원이나 자치단체장 출마의 교두보로 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조합장 선거는 단위별 유권자 수가 많지 않다 보니 돈을 주고 표를 사는 이른바 '매표'의 유혹이 강하다.

'6당 5락'(6억원을 쓰면 당선, 5억원을 쓰면 낙선)이나 '3당 2락'이라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개인당) 50만원을 쓰면 당선되고 30만원을 쓰면 낙선된다'는 속설이 나올 정도다.

선거와 관련해 금품 등을 제공한 사람은 형사처벌을 받고, 금품을 받은 사람도 받은 금액의 10∼50배에 해당하는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다만, 금품을 받은 사람이 자수하면 과태료를 감면받을 수 있고 신고자에게는 최고 3억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홍어·전복 돌리고 현금 뿌리고'…조합장 선거 혼탁 '위험수위'
전남 영암군의 모 조합원은 "조합장 선거만 치르면 형·동생 사이인 주민들 사이에 불신감이 팽배해 분위기가 영 좋지 않다"며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전북선관위 관계자는 "일부 출마예정자가 유권자인 조합원들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금품선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며 "적발 시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홍지인 박영서 최재훈 손현규 권준우 백나용 이준영 김재홍 김선영 정윤덕 김형우 김근주 김동철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