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차 15분 당겨진 146번 버스…그만큼 늘어난 '공짜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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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두개 층 맨날 뛰어다니며 청소"…"돈 더 달라 할 수 있나"
정시보다 이미 30분∼1시간 일찍 출근 "아침에 직원들 출근하기 전까지 청소 끝내려면 6시에 시작해서는 어림도 없지. 그러니까 맨날 방방 뛰어다니면서 청소하는 거야."
지난 19일 오전 4시 30분 속눈썹에 하얀 얼음이 맺힌 채 서울 새벽버스 8146번에 오른 김정희(75·가명)씨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 중랑구 중화동에 사는 김씨는 2년째 강남구 선릉역 근처 지상 15층∼지하 4층 건물에서 청소 일을 한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는 모두 9명이다.
김씨는 "원래 150평짜리 한 층을 한 사람이 청소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혼자 두 층을 청소하니까 날아다녀야 할 만큼 바쁘다"며 "한 층만 하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했다.
"일이 너무 많다고 (용역업체에) 말했더니 '그 정도는 다 한다'라고 하더라고요.
젊은 사람들처럼 그렇게 법 따져서 일할 수 있겠어요.
정 힘들면 내가 그만둬야지."
노원구 상계동과 강남역을 오가는 8146번 버스는 '새벽 만원버스'로 알려진 146번 첫차를 앞당기기 위해 신설된 새벽전용 버스다.
이달 2일 146번 버스를 탄 한덕수 국무총리가 첫차 시각을 당겨달라는 승객들의 효청에 응답하면서 16일 운행을 시작했다.
노선은 기존 146번과 같지만 첫차 시간은 15분 당겨졌다.
오전 3시 50분부터 5분 간격으로 평일 총 3회 운행한다.
8146번 버스 승객 대다수는 146번과 마찬가지로 강북 지역에 살면서 강남의 도심 빌딩에서 청소·경비일을 하는 노년층이다.
매일 새벽 서울을 북에서 남으로 종단하는 셈이다.
8146번 버스 신설로 이들의 출근 시간은 15분 빨라졌다.
146번 첫 차 시간 4시5분도 부족해 국무총리에게까지 더 당겨달라는 '민원'을 해야 했던 속사정은 무엇일까.
서울시는 8146번 버스를 신설하며 "새벽 근로자들이 지각 걱정 없이 출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실제 만나본 이들이 밝힌 이유는 '지각 걱정'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날 첫차에서 만난 청소·경비 노동자 대부분은 정시에 일을 시작해서는 사무직이 출근하기 전에 도저히 할당량을 마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미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30분∼1시간 일찍 출근해 왔다는 것이다.
공식적으론 '지각'해 본 적이 없는 부지런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마저도 충분치 않아 조금이라도 더 일찍 출근하기를 애타게 바랐다.
삼성역 근처 빌딩에서 청소 일을 하는 이옥순(79·가명)씨는 "원래 정해진 출근 시간은 새벽 6시지만 늦어도 5시 반까지는 출근한다"고 했다.
"400평짜리 사무실의 복도·계단·화장실을 물청소하는데 (직원들이 출근할 때) 젖어 있으면 안 돼서 미리 닦아야 해. 바짝 마르게 해야 하니까…."
역삼동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 서미해(75·가명)씨도 "평수는 잘 몰라도 사무실 몇 칸씩을 혼자 청소하니 다들 일이 많다"며 "더럽게 해 놓으면 사무실 직원들한테 전화로 지적이 들어오니 쫓겨 가며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승객은 "이왕이면 (첫차가) 3시 30분에 출발하는 게 낫겠다"고 했다. 빨라진 출근 시간만큼 늘어난 노동 시간이 보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씨는 "일찍 출근해서 일하는 시간이 늘어 돈을 더 줘야 한다고 하면 '그럼 6시에 오라'고 하지 돈을 더 주겠느냐. 급한 건 우리 사정인데"라고 말했다.
서씨 역시 "우리가 알아서 자유롭게(스스로) 일찍 가는 건데 더 일한다고 돈을 더 주겠느냐"고 되물었다.
다른 새벽 버스를 타는 청소·경비 노동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성북구에서 출발하는 171번 버스로 광화문의 한 건물로 출근하는 청소 노동자 박해미(가명·61)씨 역시 "원래 새벽 6시가 출근 시간"이라고 했다.
박씨는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미리 가야 일이 되니까 4시 첫차를 타고 4시 30분부터 일을 시작한다"며 "실제로는 (돈을 받지 않고) 1시간 반을 더 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영등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와 공공운수노조의 '여의도 업무지구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여의도 업무지구로 출근하는 일부 청소 노동자는 출근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심야 버스, 카풀, 택시 합승 등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등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 김보금 교육팀장은 새벽버스 첫차를 앞당기는 것과 관련해 "실태 조사 결과 '공짜 노동'이 만연하고, (실제로는 일을 했음에도) 사실상 돈을 못 받고 있는데 그걸(무급 노동) 인정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정시보다 이미 30분∼1시간 일찍 출근 "아침에 직원들 출근하기 전까지 청소 끝내려면 6시에 시작해서는 어림도 없지. 그러니까 맨날 방방 뛰어다니면서 청소하는 거야."
지난 19일 오전 4시 30분 속눈썹에 하얀 얼음이 맺힌 채 서울 새벽버스 8146번에 오른 김정희(75·가명)씨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 중랑구 중화동에 사는 김씨는 2년째 강남구 선릉역 근처 지상 15층∼지하 4층 건물에서 청소 일을 한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는 모두 9명이다.
김씨는 "원래 150평짜리 한 층을 한 사람이 청소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혼자 두 층을 청소하니까 날아다녀야 할 만큼 바쁘다"며 "한 층만 하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했다.
"일이 너무 많다고 (용역업체에) 말했더니 '그 정도는 다 한다'라고 하더라고요.
젊은 사람들처럼 그렇게 법 따져서 일할 수 있겠어요.
정 힘들면 내가 그만둬야지."
노원구 상계동과 강남역을 오가는 8146번 버스는 '새벽 만원버스'로 알려진 146번 첫차를 앞당기기 위해 신설된 새벽전용 버스다.
이달 2일 146번 버스를 탄 한덕수 국무총리가 첫차 시각을 당겨달라는 승객들의 효청에 응답하면서 16일 운행을 시작했다.
노선은 기존 146번과 같지만 첫차 시간은 15분 당겨졌다.
오전 3시 50분부터 5분 간격으로 평일 총 3회 운행한다.
8146번 버스 승객 대다수는 146번과 마찬가지로 강북 지역에 살면서 강남의 도심 빌딩에서 청소·경비일을 하는 노년층이다.
매일 새벽 서울을 북에서 남으로 종단하는 셈이다.
8146번 버스 신설로 이들의 출근 시간은 15분 빨라졌다.
146번 첫 차 시간 4시5분도 부족해 국무총리에게까지 더 당겨달라는 '민원'을 해야 했던 속사정은 무엇일까.
서울시는 8146번 버스를 신설하며 "새벽 근로자들이 지각 걱정 없이 출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실제 만나본 이들이 밝힌 이유는 '지각 걱정'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날 첫차에서 만난 청소·경비 노동자 대부분은 정시에 일을 시작해서는 사무직이 출근하기 전에 도저히 할당량을 마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미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30분∼1시간 일찍 출근해 왔다는 것이다.
공식적으론 '지각'해 본 적이 없는 부지런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마저도 충분치 않아 조금이라도 더 일찍 출근하기를 애타게 바랐다.
삼성역 근처 빌딩에서 청소 일을 하는 이옥순(79·가명)씨는 "원래 정해진 출근 시간은 새벽 6시지만 늦어도 5시 반까지는 출근한다"고 했다.
"400평짜리 사무실의 복도·계단·화장실을 물청소하는데 (직원들이 출근할 때) 젖어 있으면 안 돼서 미리 닦아야 해. 바짝 마르게 해야 하니까…."
역삼동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 서미해(75·가명)씨도 "평수는 잘 몰라도 사무실 몇 칸씩을 혼자 청소하니 다들 일이 많다"며 "더럽게 해 놓으면 사무실 직원들한테 전화로 지적이 들어오니 쫓겨 가며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승객은 "이왕이면 (첫차가) 3시 30분에 출발하는 게 낫겠다"고 했다. 빨라진 출근 시간만큼 늘어난 노동 시간이 보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씨는 "일찍 출근해서 일하는 시간이 늘어 돈을 더 줘야 한다고 하면 '그럼 6시에 오라'고 하지 돈을 더 주겠느냐. 급한 건 우리 사정인데"라고 말했다.
서씨 역시 "우리가 알아서 자유롭게(스스로) 일찍 가는 건데 더 일한다고 돈을 더 주겠느냐"고 되물었다.
다른 새벽 버스를 타는 청소·경비 노동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성북구에서 출발하는 171번 버스로 광화문의 한 건물로 출근하는 청소 노동자 박해미(가명·61)씨 역시 "원래 새벽 6시가 출근 시간"이라고 했다.
박씨는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미리 가야 일이 되니까 4시 첫차를 타고 4시 30분부터 일을 시작한다"며 "실제로는 (돈을 받지 않고) 1시간 반을 더 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영등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와 공공운수노조의 '여의도 업무지구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여의도 업무지구로 출근하는 일부 청소 노동자는 출근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심야 버스, 카풀, 택시 합승 등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등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 김보금 교육팀장은 새벽버스 첫차를 앞당기는 것과 관련해 "실태 조사 결과 '공짜 노동'이 만연하고, (실제로는 일을 했음에도) 사실상 돈을 못 받고 있는데 그걸(무급 노동) 인정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