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 대신 소설 정주행해볼까…책 기자의 연휴 책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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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기간 동안 읽을 책을 찾고 계신가요? 한경 책 담당 기자가 이번 설 연휴에 읽어볼 만한 책을 골라봤습니다.
넷플릭스 대신 대하소설 '정주행'
연휴에 넷플릭스 드라마 '정주행'하는 분들 많으시죠? 드라마 말고 대하소설 몰아보기에도 연휴는 좋은 기회입니다. 평소 읽기 힘든 대하소설을 이번 기회에 읽어보자! 하는 분에게는 최명희 작가의 <혼불>을 추천합니다. 총 10권짜리예요. 신문과 잡지에 7년 넘게 연재된 대작이거든요.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남원이 배경입니다. 양반가 매안 이씨 문중과 그들과 어울려 사는 거멍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박경리 작가의 <토지>와 함께 언급되는 작품이기도 하죠. 둘다 여성작가가 쓴, 나라를 잃어가는 위태로운 시대 속 종가를 그린 대하소설이라서요.
<혼불>은 남원이 배경인 만큼 한국, 특히 호남 지역의 전통 문화가 멋스럽게 녹아있습니다.
5권 중에는 명절에 대한 이런 묘사도 있죠. "명절, 그것은 어미의 품이었다. 이렇게 세상살이가 고되고 서러워 온몸이 다 떨어진 남루가 될수록 어디에서도 위로받지 못하는 육신을 끌고 와 울음으로 부려 버리고 싶은 것이 바로 명절이었다. 그 울음은 정중 엄숙한 차례나 세배로 나타나기도 하고, 얼음같이 차고 푸른 하늘에 높이 띄워 올리는 연이나, 마당 가운데 가마니를 베개처럼 괴고 뛰는 널, 혹은 방안에 둘러앉아 도·개·걸·윷·모, 소리치며 노는 윷놀이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처럼 아름다운 문장들과 최명희 작가 특유의 표현들이 빛나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10권짜리여도 지루하지 않아요. 비극의 시대,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등장인물에서 눈을 떼기 힘들기도 하고요. 아마 1권을 읽기 시작하면 10권까지 연휴 내내 붙잡고 있게 될 겁니다.
'제사 스릴러'를 아시나요
그런가 하면 명절이나 전통이란 게 달갑지만은 않은 분들도 있겠죠.'명절증후군'. 해마다 이맘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니까요. 특히 허리가 끊어지도록 전 부치고 차례상 차려야 하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호소하곤 합니다. 대개 주부들이죠.
명절, 가족의 전통이 누군가에게 상처나 피로감만 넘겨주고 있진 않을까요. 이런 생각이 들 때 읽어볼 만한 소설이 있어요. 강화길의 단편소설 '음복'입니다. '제사 스릴러' 또는 '가족 스릴러'로 불리는 작품이죠.
소설은 '나'의 결혼 후 첫 시댁 제사 풍경을 다뤘습니다. 가부장제의 핵심 상징 제의인 제사를 중심축으로 두고 '가족 내 위계와 차별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흡입력 있게 그려냈습니다. 익숙해져버린 어떤 풍경을 기이하게 바라보도록 만드는 매력이 있어요. 이 소설은 소설집 <화이트호스>와 <2020년 제65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려 있습니다.
'영웅' 안중근을 그린 소설은
가족 혹은 연인들간 영화관 나들이 계획하고 계신 분들도 많겠죠. 요새 극장가 화제작인 뮤지컬 영화 '영웅'은 1909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하고 순국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습니다. 영화 '영웅'을 보러 갈 계획이 있다면 안중근 의사의 일생을 다룬 소설 두 편도 함께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김훈 작가의 <하얼빈>, 그리고 이문열 작가의 <죽어 천년을 살리라>입니다. <죽어 천년을 살리라>의 경우 첫 출간 당시 제목은 <불멸>이었습니다. 두 소설 속 안중근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죽어 천년을 살리라> 속 안중근은 대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던지는 투사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 죽은 이후에도 잊혀지지 않는 존재가 됐죠. 반면 <하얼빈>은 안중근을 불안도 고민도 많은 청년으로 묘사했습니다. 김훈의 전작 <칼의 노래>가 영웅 이순신보다 전쟁 속 인간 이순신의 위태로운 모습을 바라봤듯이, 안중근이라는 한 인간의 내면에 집중했어요.'영웅'과 함께 극장가를 달구고 있는 또 다른 영화로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있죠. 이 영화와 원작 만화책을 같이 즐기는 것도 좋겠죠. 이미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슬램덩크 만화책이 거침 없이 역주행 중입니다.
어떤 책과 함께이든, 평안한 명절 보내시기를.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