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글쓰기도, 요가도 오래한다고 계속 잘하는 건 아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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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요가 다녀왔습니다' 펴내…15년간 요가하며 몸과 마음 살핀 기록
"요가는 인생 고비 함께 하는 친구…내게 친절한 태도 있다면 그 덕"
내년 초 소설집·'아버지에게 갔었어' 영문판 출간…"글 쓰는 마음은 늘 무거워" "요가에서 숨쉬기(호흡)는 소설의 문장과 같아요.
기본이 되며 하나하나 이루고 쌓아가야 하죠. 문장이나 숨이 흔들리면 작품도, 아사나(요가 자세)도 완성할 수 없어요.
"
신경숙(59) 작가와 요가를 두고 나누는 대화라니, 낯설었다.
'엄마를 부탁해', '외딴방', '리진' 등의 대표작을 낸 37년 이력의 작가는 발음도 어려운 아사나 이름을 술술 풀어냈다.
신경숙이 최근 에세이 '요가 다녀왔습니다'(달)를 펴냈다.
지난해 3월 장편 '아버지에게 갔었어'에 이은 신작으로, 그간 펴낸 산문집은 '아름다운 그늘'이 거의 유일했다.
"수련하는 요가인"이 아니라는 그의 말처럼 요가책은 아니다.
15년 넘게 요가를 하며 몸과 마음을 들여다본 일상을 기록한 산문이다.
요가는 그가 "소설 쓰기 다음으로 가장 오래 한 일"이라고 한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지독한 달리기 사랑 같은 걸까.
최근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신경숙은 "40대가 되니 몸이 부서지는 느낌이었다"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데 없이 불균형이었다.
여기저기 통증이 생겼다.
이러다 글을 못 쓰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서 요가를 시작했다"고 떠올렸다.
매일 오전 3시에 일어나 9시까지 글을 쓰고 집 근처 요가원의 오전 9시 30분 수업에 가는 건, 그의 오랜 '루틴'이 됐다.
"요가가 제게 잘 맞았어요.
몸을 방치하고 있지 않다는, 아프지 않을 수 있다는 자기 확인이기도 했고요.
" 그렇다고 요가로 글을 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리진'의 미국 출간 때 뉴욕의 한 요가원에서 북리딩을 한 게 계기였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요가 이야기로 시작된 낭독회는 평화롭고 진지했다.
이날 에이전트가 그에게 말했다.
"왜 요가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아? 쓰겠다고 약속해."
이 약속을 마음에 담아 둔 신경숙은 요가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한편 씩 3년에 걸쳐 써 내려갔다.
그는 "요가는 내게 한 끼 식사 같다"고 했다.
뉴욕·베를린 등지 여행자가 될 때도, 즐겨 찾는 제주에서도 숙소 인근에 요가원이 있는지부터 살폈다.
요가 매트는 트렁크 필수품이 됐다.
요가는 몸의 불균형뿐 아니라 그의 마음도 평평하게 다져줬다.
몸과 호흡에 집중하는 시간은 소설을 쓰며 예민해진 마음을 고르게 정리해줬다.
"성급하지 않고, 친절하고 상냥한 태도가 제게 있다면 요가 덕이에요.
(웃음) (마음이) 날뛰던 지점도 '괜찮아'라고 얘기해주는 것 같았어요.
"
벽을 지지대 삼지 않고 머리 서기에 성공한 경험은 "두려움을 마음에서 밀어내는" 순리를, 코로나19가 닥쳐 요가원이 문을 닫은 일상은 "당연하던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소설 쓰기처럼 요가도 오래 한다고 계속 잘하는 건 아니란 깨달음도 얻었다.
잠시라도 중단하면 몸이 아파 매번 새로 시작해야 했다.
그는 실망하지 않고 꾸준함에 의미를 두며 "되는 만큼" 하려 했다.
"글을 오래 쓴다고 계속 잘 쓰는 게 아니듯이, 요가도 어떤 날은 됐던 자세가 흔들리기도 해요.
앞으로도 요가 실력은 점점 나빠질 것 같아요.
인생의 고비가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친구 같은 요가가 시간을 넘어가는 징검다리가 돼주는 것 같아요.
" 에세이에는 작가로서의 삶도 녹여져있다.
한국일보 신춘문예 최종심에서 떨어지고 1985년 문예중앙에 '겨울 우화'로 등단하던 때, 제주의 작은 호텔에서 '외딴 방' 연재 1회분을 미친 듯이 쓰던 기억, '새야 새야'를 쓰며 허구의 세계가 현실 같아 기묘한 두려움에 싸였던 순간도 담았다.
그는 "세 번쯤 섬찟한 단계를 넘어가야 완성되는 작품은 작가 자신도 못 잊는다"며 "'새야 새야'뿐 아니라 '외딴 방'과 '엄마를 부탁해'의 어느 장면을 쓸 때도 그랬다.
'아버지에게 갔었어'도 여러 시간을 겪은 후 쓴 작품이어선지 (그런 순간이) 굉장히 많았다"고 기억했다.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출간한 지난해 여름, 그의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이 소설은 이 시대 익명의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헌사와 같은 작품이다.
"2020년에 1년간 집중적으로 써서 지난해 아버지에게 갖다 드리니 책을 쓰다듬으며 '경숙이가 책을 냈구나' 하시더라고요.
한국 현대사를 거친 아버지들은 무서워서 하지 못한 말들을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아버지들의 잠긴 말들을 끄집어 내놓은 소설이었죠." "글을 쓰는 마음이 늘 무겁다"는 그는 내년 초 중편 위주의 소설집을 낼 계획이다.
지난해 온라인 간담회에서 밝힌 차기작을 쓰려던 계획은 내년으로 미뤘다.
그는 "어느 날 아침에 다른 날들처럼 출근했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의 하루를 올해 내내 쓰려고 했는데, 내년에 작업하려 한다"고 말했다.
'맨 아시아 문학상'을 받은 '엄마를 부탁해'를 비롯해 '외딴 방', '리진' 등 해외에 번역 출간되는 그의 작품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 4월 미국에서 출간된 '바이올렛'은 내셔널퍼블릭라디오(NPR) 올해의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내년 3월에는 '아버지에게 갔었어' 영문판이 나올 예정이다.
그는 "많은 책이 번역되고 소개되는 것은 소중하다"며 "한국 문학 안에 좋은 작품이 많다.
이렇게 시작해서 젊은 세대는 한국어에 갇히지 않은 작업을 하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고 했다.
/연합뉴스
"요가는 인생 고비 함께 하는 친구…내게 친절한 태도 있다면 그 덕"
내년 초 소설집·'아버지에게 갔었어' 영문판 출간…"글 쓰는 마음은 늘 무거워" "요가에서 숨쉬기(호흡)는 소설의 문장과 같아요.
기본이 되며 하나하나 이루고 쌓아가야 하죠. 문장이나 숨이 흔들리면 작품도, 아사나(요가 자세)도 완성할 수 없어요.
"
신경숙(59) 작가와 요가를 두고 나누는 대화라니, 낯설었다.
'엄마를 부탁해', '외딴방', '리진' 등의 대표작을 낸 37년 이력의 작가는 발음도 어려운 아사나 이름을 술술 풀어냈다.
신경숙이 최근 에세이 '요가 다녀왔습니다'(달)를 펴냈다.
지난해 3월 장편 '아버지에게 갔었어'에 이은 신작으로, 그간 펴낸 산문집은 '아름다운 그늘'이 거의 유일했다.
"수련하는 요가인"이 아니라는 그의 말처럼 요가책은 아니다.
15년 넘게 요가를 하며 몸과 마음을 들여다본 일상을 기록한 산문이다.
요가는 그가 "소설 쓰기 다음으로 가장 오래 한 일"이라고 한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지독한 달리기 사랑 같은 걸까.
최근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신경숙은 "40대가 되니 몸이 부서지는 느낌이었다"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데 없이 불균형이었다.
여기저기 통증이 생겼다.
이러다 글을 못 쓰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서 요가를 시작했다"고 떠올렸다.
매일 오전 3시에 일어나 9시까지 글을 쓰고 집 근처 요가원의 오전 9시 30분 수업에 가는 건, 그의 오랜 '루틴'이 됐다.
"요가가 제게 잘 맞았어요.
몸을 방치하고 있지 않다는, 아프지 않을 수 있다는 자기 확인이기도 했고요.
" 그렇다고 요가로 글을 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리진'의 미국 출간 때 뉴욕의 한 요가원에서 북리딩을 한 게 계기였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요가 이야기로 시작된 낭독회는 평화롭고 진지했다.
이날 에이전트가 그에게 말했다.
"왜 요가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아? 쓰겠다고 약속해."
이 약속을 마음에 담아 둔 신경숙은 요가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한편 씩 3년에 걸쳐 써 내려갔다.
그는 "요가는 내게 한 끼 식사 같다"고 했다.
뉴욕·베를린 등지 여행자가 될 때도, 즐겨 찾는 제주에서도 숙소 인근에 요가원이 있는지부터 살폈다.
요가 매트는 트렁크 필수품이 됐다.
요가는 몸의 불균형뿐 아니라 그의 마음도 평평하게 다져줬다.
몸과 호흡에 집중하는 시간은 소설을 쓰며 예민해진 마음을 고르게 정리해줬다.
"성급하지 않고, 친절하고 상냥한 태도가 제게 있다면 요가 덕이에요.
(웃음) (마음이) 날뛰던 지점도 '괜찮아'라고 얘기해주는 것 같았어요.
"
벽을 지지대 삼지 않고 머리 서기에 성공한 경험은 "두려움을 마음에서 밀어내는" 순리를, 코로나19가 닥쳐 요가원이 문을 닫은 일상은 "당연하던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소설 쓰기처럼 요가도 오래 한다고 계속 잘하는 건 아니란 깨달음도 얻었다.
잠시라도 중단하면 몸이 아파 매번 새로 시작해야 했다.
그는 실망하지 않고 꾸준함에 의미를 두며 "되는 만큼" 하려 했다.
"글을 오래 쓴다고 계속 잘 쓰는 게 아니듯이, 요가도 어떤 날은 됐던 자세가 흔들리기도 해요.
앞으로도 요가 실력은 점점 나빠질 것 같아요.
인생의 고비가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친구 같은 요가가 시간을 넘어가는 징검다리가 돼주는 것 같아요.
" 에세이에는 작가로서의 삶도 녹여져있다.
한국일보 신춘문예 최종심에서 떨어지고 1985년 문예중앙에 '겨울 우화'로 등단하던 때, 제주의 작은 호텔에서 '외딴 방' 연재 1회분을 미친 듯이 쓰던 기억, '새야 새야'를 쓰며 허구의 세계가 현실 같아 기묘한 두려움에 싸였던 순간도 담았다.
그는 "세 번쯤 섬찟한 단계를 넘어가야 완성되는 작품은 작가 자신도 못 잊는다"며 "'새야 새야'뿐 아니라 '외딴 방'과 '엄마를 부탁해'의 어느 장면을 쓸 때도 그랬다.
'아버지에게 갔었어'도 여러 시간을 겪은 후 쓴 작품이어선지 (그런 순간이) 굉장히 많았다"고 기억했다.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출간한 지난해 여름, 그의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이 소설은 이 시대 익명의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헌사와 같은 작품이다.
"2020년에 1년간 집중적으로 써서 지난해 아버지에게 갖다 드리니 책을 쓰다듬으며 '경숙이가 책을 냈구나' 하시더라고요.
한국 현대사를 거친 아버지들은 무서워서 하지 못한 말들을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아버지들의 잠긴 말들을 끄집어 내놓은 소설이었죠." "글을 쓰는 마음이 늘 무겁다"는 그는 내년 초 중편 위주의 소설집을 낼 계획이다.
지난해 온라인 간담회에서 밝힌 차기작을 쓰려던 계획은 내년으로 미뤘다.
그는 "어느 날 아침에 다른 날들처럼 출근했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의 하루를 올해 내내 쓰려고 했는데, 내년에 작업하려 한다"고 말했다.
'맨 아시아 문학상'을 받은 '엄마를 부탁해'를 비롯해 '외딴 방', '리진' 등 해외에 번역 출간되는 그의 작품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 4월 미국에서 출간된 '바이올렛'은 내셔널퍼블릭라디오(NPR) 올해의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내년 3월에는 '아버지에게 갔었어' 영문판이 나올 예정이다.
그는 "많은 책이 번역되고 소개되는 것은 소중하다"며 "한국 문학 안에 좋은 작품이 많다.
이렇게 시작해서 젊은 세대는 한국어에 갇히지 않은 작업을 하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