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전 경기장 밖에서 이란 반정부 시위 지지자와 반대자들 충돌
1차전에서 국가 연주에 침묵한 이란 선수들, 2차전서는 일부는 제창
[월드컵] 정치적 충돌로 얼룩진 이란 경기장…킥오프하자 '원팀'
이란의 2022 카타르 월드컵 두 번째 경기가 이란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팬들과 정부를 지지하는 팬들의 충돌로 얼룩졌다.

AP는 이란과 웨일스의 대회 조별리그 B조 2차전이 열린 카타르 알라이얀의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 인근에서 충돌이 잇따랐다고 25일 보도했다.

AP에 따르면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팬들이 이란 혁명 이전에 쓰이던 국기를 들고 있다가 정부를 지지하는 팬들로부터 빼앗겼다.

정부를 지지하는 팬들은 반정부 시위 구호인 '여성, 생명, 자유'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팬들을 향해 모욕적인 말을 내뱉기도 했다.

자국 시위에 대해 외국 방송과 인터뷰를 하는 여성 팬을 한 무리의 남성들이 둘러싸고 '이란 이슬람 공화국(현 이란의 정식 명칭)'을 외치는 장면도 목격됐다고 AP는 전했다.

[월드컵] 정치적 충돌로 얼룩진 이란 경기장…킥오프하자 '원팀'
경기장 보안요원들은 현재 이란 국기를 제외한 모든 것을 압수했다.

'여성'이라고 쓴 이란 국기를 들고 경기장에 들어가려다가 빼앗겼다는 이란계 미국인 1세대 여성 아예 샴스 씨는 "단지 경기를 즐기고, 이슬람 정권에 맞서 싸우는 이란 국민을 지지하기 위해 여기에 왔을 뿐"이라고 AP와 인터뷰에서 말했다.

다만,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깃발이나 플래카드, 걸개를 경기장에 반입하는 것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엄격하게 금지하는 사항이다.

한국 축구대표팀도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박종우(부산)가 이른바 '독도 세리머니'를 했다가 출전정지 징계를 받은 바 있다.

연합뉴스가 찾은 경기장에서도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이란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감지됐다.

[월드컵] 정치적 충돌로 얼룩진 이란 경기장…킥오프하자 '원팀'
한 이란 여성은 검은 눈물을 흘리는 듯한 분장과 함께 '마흐사 아미니'라는 이름과 등번호 22가 적힌 이란 유니폼을 들었다.

아미니는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돼 구금됐다가 숨진 22세 여성이다.

이 사건이 현재 반정부 시위를 촉발했다.

보안요원의 '짐 검사'를 뚫어내고 반입한 '여성, 삶, 자유'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어 보인 팬들도 있었다.

경기 전 이란 국가가 연주될 때 이란 관중석에서 야유 소리가 들렸다.

다만, 대부분의 관중이 야유했다고 보기에는 소리가 작았다.

이란 선수들은 절반 정도는 국가를 불렀고, 나머지는 침묵했다.

[월드컵] 정치적 충돌로 얼룩진 이란 경기장…킥오프하자 '원팀'
이란 선수들은 잉글랜드를 상대로 치른 첫 경기에서는 반정부 시위에 지지 의사를 나타내는 차원에서 전원이 국가를 부르지 않았다.

경기가 시작되자 다른 축구 경기장과 분위기가 다를 게 없어졌다.

모든 관중이 하나가 돼 선수들을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야 알리 마다트(알리 이맘이시여, 우리를 도와주소서)' '얄라얄라 마골미카인(골 넣고 이기자)' 등 이란 특유의 응원 구호만 울려 퍼졌다.

연합뉴스가 만난 이란 기자들은 대체로 정부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이번 대회에서 서방 언론이 너무 정치적인 부분만 부각하려 한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한 기자는 이란 관중석을 가리키며 "저 중에는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라면서 "적어도 내 귀에는 경기장에서 정치적 구호는 전혀 안 들린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