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세계 자살 유족의 날…자살 유족은 잠재적 고위험군
동료지원 활동가들 "유가족 지원 지역별 편차 커…자조모임 활성화해야"
"자살 유족에 '이제 잊으라'는 말은 비수…지원확대가 자살예방"
"자살 유가족은 잠재적 자살 위험이 훨씬 높은 고위험군인데 여전히 사회적 관심이나 체계적 관리는 부족해요.

사회의 따뜻한 시선과 정부의 지원 다각화가 절실합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을 낮출 근본적 방법은 자살 유족에 대한 관심·관리라는 사실을 사회가 각별히 인식해 주길 바랍니다"
11년 전 아버지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심소영씨는 세계 자살 유족의 날인 19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심씨는 자살 유가족 단체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다' 운영진으로 활동하며 자조모임에서 다른 자살 유가족을 돕고 있다.

심씨는 "과거보다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자살 유족들은 충격과 죄책감, 사회적 편견 등으로 인해 슬픔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 위험 사각지대에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한국에서 한해 평균 1만여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통계를 고려하면 자살 고위험군인 유족이 매년 수만명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보건복지부의 2015∼2021 자살 심리부검 면담분석 결과에 따르면 유족 중 97%가 우울 증상을 경험하고, 60%는 자살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앙심리부검센터의 분석(2019)에서도 자살자 유족(2촌 이내 혈족과 배우자 또는 고인과 동거했던 4촌 이내 혈족)은 고인 사망 후 일반인보다 자살 시도 경험이 7.64배, 자살 계획 경험은 8.64배 높다고 나타난 바 있다.

심 활동가는 "고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애도를 충분히 잘해야 우울감이나 자살 생각이 줄어들어 회복할 수 있다"며 "자살자가 많아지는 만큼 유가족도 계속 늘어나지만 유가족 자조모임이나 정부·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을 이용하지 않는 유족이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자조모임의 분위기가 매우 어둡고 우울했지만 정부와 언론 등의 관심이 점점 커지고 동료지원 활동가들도 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유가족 지원에 있어 지역별 편차가 크고 유족의 다양한 욕구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자살 유족에 '이제 잊으라'는 말은 비수…지원확대가 자살예방"
동료지원 활동가로서 자살 유족 권익 옹호에 기여한 공로로 전날 장관 표창을 받은 조동연 활동가도 "자살 유족들은 기본적으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 가족들 간에도 아픈 기억을 상기하는 대화를 꺼리고, 주변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며 "대화와 공감을 통해 해소를 하지 못하면 병들어 간다.

그런 의미에서 자조모임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살 유족들에게 상처가 되는 대표적인 말은 '이제 그만 잊어라', '괜찮을 때도 됐잖아', '왜 그랬대' 등이 꼽힌다.

주변인들의 이런 반응은 유족을 더욱 움츠러들게 한다.

실제 자살 유족의 72%가 고인과 유족에 대한 비난 등을 우려해 자살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같은 아픔을 겪은 이들끼리는 공감을 토대로 한 대화가 가능하다.

"가족이 갓 떠난 분이 '이 슬픔이 언제 끝날까'라고 물으면 가족이 떠난 지 오래된 다른 분은 '끝나진 않는다.

그래도 살아지더라'라고 답한다.

이런 대화 자체가 우리에겐 큰 위로가 된다"고 조 활동가는 말했다.

정부는 자살 유가족에 대한 관리·지원 필요성에 따라 2019년부터 '자살유족원스톱서비스'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가족이 극단 선택을 한 유족을 가장 먼저 대면하는 경찰이나 소방서, 주민센터가 자살예방센터(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락해 원스톱 서비스팀이 유족을 찾아가 상담, 자조모임, 법률 지원, 생활지원 등 제공 가능한 도움을 알려주고 지원하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각 지자체가 운영하는 자살 유족 자조 모임은 84개, 민간이 운영하는 자조모임은 6개다.

자조모임이 이전보다 확대되고는 있지만, 운영에 있어 다양한 유가족에 맞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유족들은 말한다.

심 활동가는 "주변에 소문이 나는 것을 꺼려 본인이 사는 지자체의 자조모임이 아닌 다른 지자체 자조모임을 가고 싶어하는 유족이 많지만 아직은 막혀 있다"며 "또한 서울과 일부 수도권 외에 지방은 자조모임 운영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고인과 유족의 관계, 시기, 연령대 등에 따라 모임 구분도 세분화될 필요성도 제기된다.

조 활동가와 심 활동가 모두 "부모나 형제를 잃은 청소년 유족은 본인이 원하더라도 나갈 수 있는 자조 모임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조 활동가는 "자살 유족이 도움을 받으려면 일단 자조모임을 비롯한 지원이 더 알려져야 한다"며 "특히 자살유족원스톱서비스가 시범사업에서 전국 사업으로 확대해 자리 잡고 경찰·소방과 연계도 더욱 유기적으로 강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세계 자살 유족의 날은 가족의 자살로 인해 상처받은 유족이 치유·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건강한 애도를 하기 위한 날이다.

부친이 스스로 세상을 떠난 해리 리드 미국 전 상원의원이 발의한 세계 자살 유족의 날 지정 결의안이 통과된 1999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매년 추수감사절 전주 토요일에 기리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