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별이여, 내가 너처럼 한결같다면 좋으련만-
밤하늘 높은 곳에서 외로운 광채를 발하며,
참을성 있게 잠자지 않는 자연의 수도자처럼,
영원히 눈을 감지 않은 채,
출렁이는 바닷물이 종교의식처럼
육지의 해안을 정결하게 씻는 걸 지켜보거나,
혹은 산과 황야에 새롭게 눈이 내려
부드럽게 쌓이는 것을 가만히 응시하는 게 아니라-
그런 게 아니라- 그러나 여전히 한결같이, 변함없이,
아름다운 내 연인의 풍만한 가슴에 기대어,
부드럽게 오르내리는 것을 영원히 느끼며,
그 달콤한 동요 속에서 언제까지 깨어있으면서,
평온하게, 그녀의 부드러운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렇게 영원히 살고 싶어라- 아니면 차라리 죽어지리라.
* 존 키츠(1795~1821) : 영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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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영국 시인 존 키츠의 사랑시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는 유독 지식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요. 단 4년간 활동한 뒤 26세에 요절했지만, 영국 낭만주의 대표 시인이 됐습니다.
그가 몇 년만 더 살았더라면 세계문학사가 달라졌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는 사람도 많았죠. 셰익스피어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평가받았고 바이런, 셸리와 더불어 당대 시단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졌으니 그럴 만했습니다.
짧은 생애에 비해 많은 작품을 쓴 그는 ‘가장 아름다운 서정시’와 ‘가장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를 동시에 남겼습니다. 그의 사랑 얘기를 그린 제인 캠피온 감독의 영화 ‘브라이트 스타’가 흥행한 뒤에는 더욱 그랬지요.
전기작가들이 특별히 궁금해한 것은 그가 죽기 전 끔찍이 사랑했던 연인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순간을 지킨 친구는 알고 있었지만, 여인의 남은 생을 위해 입을 다물었기에 궁금증은 더했죠.
나중에야 알려졌지만 그의 연인은 패니 브론이라는 이웃집 처녀였습니다. 유명한 연시 ‘빛나는 별이여’도 그녀를 위해 쓴 것이었지요.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스물세 살 때인 1818년 가을이었습니다. 첫 시집을 내고 출판사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지 1년쯤 됐을 때였죠.
악수를 청하는 패니의 손을 잡는 순간 그는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활발하면서도 재치 있는 언어에 완전히 반했지요. 그녀도 감수성이 풍부한 키츠에게 차츰 빠져들었습니다.
그 무렵 키츠의 동생이 폐결핵으로 죽자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덟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열네 살 때 어머니를 잃은 그였죠. 연인 덕분에 괴로움을 이겨낸 그는 날마다 편지를 보냈습니다.
‘우리가 나비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 여름 사흘을 당신과 함께 보낸다면, 그저 그런 50년을 사는 것보다 더 행복할 것 같아요.’
둘은 1년 만에 약혼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에 그가 결핵으로 쓰러지고 말았지요. 병세가 악화돼 로마로 요양을 떠날 때, 그는 동행하려는 연인의 손길을 거부했습니다. 대신 “당신이 없어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선물을 하나 줘!”라고 했죠. 그녀는 붉은색이 도는 하얀 타원형 홍옥수를 손에 쥐여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게 헤어진 그는 결국 홍옥수를 어루만지며 친구의 품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지요. 죽기 전 ‘여기 물 위에 이름을 새긴 사람이 누워 있노라’라는 묘비명을 새겨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그의 이 묘비명 또한 ‘빛나는 별이여’라는 시만큼 아릿합니다.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