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부당지원 동기 답변 못해
검찰, 수사 속도..벼랑 끝 SPC '긴장'
이번 행정소송은 SPC에 대한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다, 사업 수직계열화를 이룬 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위법성에 대한 기준점이 될 수 있어 경제계가 주목하고 있다.
◆내년으로 미뤄진 선고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행정6-2부(위광하 홍성욱 최봉희 부장판사)는 지난 16일 오후 열린 공판에서 파리크라상·SPL·비알코리아·샤니·SPC삼립 등 SPC 계열 5개사가 공정위를 상대로 낸 과징금 부과 및 시정명령 취소 소송과 관련, 내년 2월 추가 변론을 진행키로 결정했다.당초 16일이 최종 변론기일로 예고돼 연내 선고 일정이 확정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내년 이후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선고 일정이 미뤄진 데는 "SPC의 계열사 부당지원행위의 동기가 후계 승계인지 입증하라"는 재판부의 석명사항에 대해 공정위가 답변을 하지 못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석명이란 판사가 재판에 본질적인 사항이라고 판단하는 내용에 대해 입증을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앞서 공정위는 2020년 7월 SPC에 부당지원 혐의로는 역대 최고액인 64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허영인 회장, 황재복 파리크라상 대표 등을 검찰 고발했다. 당시 공정위는 후계 승계를 목적으로 SPC계열사들이 SPC삼립에 밀다원 저가 양도와 '통행세' 등을 통해 414억원을 부당지원했다고 발표했다.
◆상장사 SPC삼립에 일감몰아주기?
하지만 공정위가 수혜를 입은 것으로 지목한 SPC삼립은 SPC그룹의 유일한 상장사로, 총수와 후계 지분율이 가장 낮은 계열사여서 공정위의 논리에 헛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후계 승계를 위해선 2세들이 보유한 비상장사에 일감을 몰아줘 기업가치를 키우고 그룹의 주력사의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실탄을 만드는 것이 통상적인 수순이다. 특히 법조계에선 파리크라상이 SPC삼립을 지원한 주체이면서 SPC삼립의 최대주주로 수혜를 입는 주체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공정위의 계열사 부당지원 제재에 법적 모순이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시가총액 6000억~7000억원 규모인 SPC삼립에 몇백억원의 매출이 더해졌다고 해서 승계를 위한 실탄이 마련될지 의문"이라며 "SPC삼립의 가치가 커지면 삼립의 최대주주이자 그룹의 주력사인 파리크라상(지분율 40.7%)의 가치도 함께 높아져 애초에 2세들이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구조가 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공정위는 "다음 기일에 재판부의 석명에 대해 답변할 예정"이라며 "계열사 부당지원 자체가 중요한 사실이며 어떤 동기로 했는지는 법 위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공정위 고발 2년 후 압색 나선 검찰
검찰은 최근 공정위가 SPC의 계열사 부당지원 혐의를 고발한 것과 관련,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말 황재복 SPC 사장 소환조사, 이달 8일 SPC그룹 본사 및 계열사 사무실 압수수색에 이어 이날은 조상호 전 SPC그룹 총괄사장을 소환조사했다.지난 5월 송경호 지검장, 7월 이정섭 공정거래조사부장 부임 등으로 서울중앙지검 SPC그룹 수사팀 주요 인원이 교체된 후 나타난 변화다. 검찰은 현재 수사팀이 꾸려지기 전까지만 해도 SPC그룹 수사에서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공정위 고발 이후 2년여간 압수수색 영장을 한 차례 청구했다가 기각되고 일부 직원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 정도였다.
검찰 안팎에선 "SPC그룹을 바라보는 수사팀의 관점 자체가 이전과 달라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새 수사팀이 허 회장 배임 등 일부 혐의의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새로운 쟁점이 생겼다기보다는 SPC그룹에 적용된 혐의와 관련해 추가로 증거를 수집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허 회장 배임 등 일부 혐의는 다음달 공소시효가 끝난다. 최근 인명사고와 불매운동으로 벼랑 끝에 몰린 SPC는 이번 행정소송이 검찰 수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하수정/김진성/이지훈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