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500m 우승 이어 주종목 아닌 1,000m에서 준우승
생각의 틀 바꾼 훈련 패턴 변화…새로운 에이스 탄생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단거리 간판 김민선(23·의정부시청)은 서문여고 재학 시절부터 큰 기대를 받았다.

그는 만 18세였던 2017년 9월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대회 여자 500m에서 세계주니어신기록(37초70)을 세웠고, 국내 빙상계는 이상화(은퇴)의 뒤를 이을 선수가 나타났다고 흥분했다.

김민선은 당시 이상화가 보유했던 세계주니어기록(37초81)를 무려 0.11초나 단축했다.

0.001초 차이로도 승부가 갈리는 빙속 단거리 종목에서 0.11초 차이는 엄청난 격차다.

주변에선 이상화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김민선의 성장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그는 이상화 은퇴 이후 국내 단거리 일인자 자리를 지켰지만, 국제대회에선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김민선은 월드컵 시리즈 여자 500m와 여자 1,000m에서 세계 주요 선수들과 뚜렷한 기량 차를 보였고, 메달권과도 거리가 멀었다.

입상은커녕 디비전A(1부리그)와 디비전B(2부리그)를 오르내렸다.

'독을 품은' 김민선이 훈련 방식을 바꾼 건 지난해부터다.

소속팀인 의정부시청의 제갈성렬 감독은 "김민선은 그동안 허리 통증 문제로 원활하게 훈련을 소화하지 못했다"며 "김민선은 근력을 키워야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는 선수인데, 허리 문제로 관련 훈련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답답한 상황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김민선은 집중적인 허리 치료와 함께 단거리 훈련 대신 '중장거리 훈련'을 시작했다.

부족한 근력을 지구력으로 대체하기 위한 묘수였다.

제갈성렬 감독은 "김민선은 (직선 주로에서 내달리는) 스케이팅 능력이 좋은 선수"라며 "그동안 500m에 초점을 맞춰 스타트 훈련, 근력 훈련에 전념했던 김민선은 1,000m, 1,500m를 함께 뛰며 장점을 극대화했다"고 전했다.

훈련 효과는 나쁘지 않았다.

지구력과 체력을 키운 김민선은 안정적인 레이스를 펼치기 시작했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앞두고는 허리 통증 문제도 점차 좋아졌다.

허리 문제를 극복하기 시작한 김민선은 조금씩 근력 훈련의 강도까지 높였고, 베이징올림픽 여자 500m에서 7위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자신감을 찾은 김민선은 지난 3월 2021-2022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파이널 여자 500m에서 동메달을 차지하며 개인 첫 시니어 국제무대 입상까지 성공했다.

2021-2022시즌을 마친 김민선은 다시 집중적인 중장거리 훈련으로 기량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지난 12일 노르웨이 스타방에르에서 열린 2022-2023 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1차 대회 여자 500m에서 37초553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며 세계 정상의 자리에 섰다.

한국 선수가 ISU 월드컵 여자 500m에서 우승한 건 2015년 12월에 열린 2015-2016 월드컵 4차 대회 이상화 이후 약 7년 만이었다.

김민선의 거침없는 레이스는 계속됐다.

그는 13일 여자 1,000m에서 1분15초82의 성적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이 종목 금메달리스트로 시상대에 올랐던 일본의 에이스 다카기 미호까지 꺾었다.

한국 여자 선수가 월드컵 시리즈 1,000m에서 우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상화는 여자 500m에서 다양한 기록을 쏟아냈지만, 월드컵 1,000m에선 동메달 2개만 획득했다.

단거리 훈련에 집중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훈련 패턴을 바꾼 묘수가 이상화도 해내지 못한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제갈성렬 감독은 "500m를 주 종목으로 하는 단거리 선수가 월드컵 1,000m까지 메달을 휩쓴 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지난해부터 중장거리 훈련을 집중했던 김민선은 500m뿐만 아니라 1,000m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