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최장 60년인 원전의 수명 제한을 없애기로 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를 계기로 원전 비중을 대폭 줄였던 일본이 빠르게 원전 대국으로 복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원자력규제청은 가동한 지 30년부터 10년마다 원전 안전성을 심사하는 새로운 규제 방안을 3일 발표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전으로 복귀

기존 원자로규제법은 원전 수명을 원칙적으로 40년으로 하되 한 차례 20년간 연장해 최대 60년까지로 정하고 있다. 이를 30년부터 10년마다 반복해서 안전성을 심사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원전 수명을 따로 정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안전성 검사를 시행하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의 사례를 따랐다.

새 규제 방식대로라면 가동한 지 60년이 지난 원전도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 한 계속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원전 규제를 담당하는 독립 기관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이런 방안을 담은 원자로 규제법 개정안을 연내 마련할 계획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도입된 원전 수명 규제는 11년 만에 사라지게 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정부는 모든 원전 가동을 중지시킨 뒤 새로운 안전 기준을 통과한 6기만 가동하고 있다. 일본의 ‘원전 거리두기’ 방침이 180도 바뀐 것은 지난 8월 24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050년 탈석탄사회 실현을 위한 자문회의’에서 “차세대 원전 개발과 건설을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다. 기시다 총리는 “원전의 운전 기간 연장에 대해서도 연말까지 구체적인 결론을 내달라”고 주문했다.

일본이 원전 복귀를 선언한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안전보장이 핵심 과제로 떠올라서다. 만성적인 전력 부족이 일상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원전 위험성은 높아져

원전 가동을 대폭 줄인 이후 일본은 전체 전력의 76%(2019년 기준)를 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30%에 달하던 원전 비중은 6%까지 줄었다. 높은 화력발전 의존도는 일본의 무역적자를 키우고,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에너지의 90%를 수입에 의존한다. 그 결과 8월 무역수지는 역대 최대인 2조8173억엔(약 27조174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14개월 연속 이어진 무역적자로 지난달 21일 달러당 엔화 가치는 32년 만의 최저치인 151.92엔까지 떨어졌다.

일본 정부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탈석탄사회를 2050년까지 실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원전도 탈석탄 실현을 위해 필수적인 발전 수단으로 규정했다.

원전 신설과 함께 원전 수명 제한을 없애는 것은 기존 원전의 노후화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원전 33기 가운데 17기는 가동을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다. 지난 10년간 원전을 새로 짓지 않은 결과다. 현재의 원전을 모두 60년씩 운영해도 2070년이면 3기만 남는다.

원전의 수명 제한을 없애는 것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노 히로미쓰 도쿄대 명예교수는 “과학·기술은 100% 완벽한 게 아니다”며 “운전 기간을 늘리면 늘릴수록 노후화되기 때문에 위험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