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대 범죄심리학과 논문…"탄원서 받으면 관대해져"
"배심원 성차별 의식 높을수록 성범죄 '무죄' 판단 경향"
성차별 의식이 강하거나 '피해자는 이럴 것'이라는 '피해자다움' 통념을 받아들이는 사람일수록 국민참여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여할 경우 성범죄 피고인에게 무죄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박사과정 황규진·박우현씨는 '여성연구' 최근호에 실린 논문 '성범죄사건 양형판단에서 배심원 특성의 영향과 피고인 요인의 조절효과'(교신저자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에서 이처럼 주장했다.

2008년 국내에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은 지방법원 관할 구역에 사는 만 20세 이상 주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한 배심원들이 재판에 참여해 유·무죄 평결을 내리는 제도다.

배심원 유·무죄 평결과 양형 의견은 법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재판부는 이를 선고에 참작한다.

연구진은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선정 가능성이 있는 만 20∼69세 351명(여성 173명·남성 17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참여자들이 연구의 목적을 인지할 경우 편향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성인 남녀의 성(性) 인식에 관한 연구'에 참여하는 것으로 안내했다.

이들은 성범죄(준강간)에 대한 시나리오를 읽고 피고인의 유무죄 판단과 양형 판단 관련 문항에 응답했다.

그 결과 배심원의 성차별 의식이 높을수록 성범죄 피고인을 무죄로 판단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또 피해자에게는 '통념에 입각한 전형적인 피해자다움'이 있어야 한다는 '강간통념' 수용도가 높은 배심원도 무죄 판결을 내릴 확률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았다.

이 밖에 배심원단의 성별과 탄원서 제출 여부도 영향을 미쳤다.

배심원단의 판단을 성별로 보면 여자는 50.9%(173명 중 88명)가 유죄를 내려 남자의 31.5%(178명 중 56명)보다 유죄를 결정한 비율이 높았다.

피고인 측이 선처 탄원서를 제출한 경우에는 피고인을 더욱 관대하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다만 피고인의 배심원에 대한 감정호소는 양형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연구진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탄원서가 제출된 조건에서 성차별 의식, 강간 통념 수용도가 높은 배심원은 유의미하게 큰 폭으로 낮은 형량을 부과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며 "이를 고려하면 사건을 판단할 때 배제해야 할 부분을 다루는 배심원 사전교육을 의무화하는 정책이 고안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