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애호가들은 ‘레드와인의 여왕’ 피노 누아를 제대로 즐기려면 10만원 이상 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미국산 피노 누아 중엔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피노 누아만의 우아하고 산뜻한 향을 음미할 수 있는 엔트리급 와인이 적지 않다.

3만원대 ‘덥석 와인’

‘카멜로드 피노 누아’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피노 누아 열풍을 불러온 주인공으로 꼽힌다. 캘리포니아에서도 훌륭한 피노 누아 산지인 센트럴코스트의 몬터레이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이다.

과실잼을 연상시킬 만큼 짙은 향과 오크통 숙성으로 더해진 토스티함이 캘리포니아 피노 누아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부르고뉴산 피노 누아 가격의 절반 수준인 3만9000원대 가격이 매력적이다. 피노 누아에 처음 도전하는 사람도 큰 부담 없이 덥석 집어들만하다.

‘뒤피스 아벨 빈야드 피노 누아’는 캘리포니아 북부 멘도치노카운티의 앤더슨밸리에서 생산됐다. 이 곳을 대표하는 와이너리 뒤피스의 웰즈 거스리가 생산부터 병입까지 책임지며 만들어낸 프리미엄급 피노 누아다. 국내 판매가 8만원대.

거스리는 프랑스 대표 고급 와인 산지인 론과 부르고뉴에서 일하며 쌓은 지식으로 캘리포니아에 돌아와 자신의 이름을 건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우아하고 부드러운 질감, 붉은 과실과 허브 향이 어우러진 풍미가 인상적이다.

‘샤토 부에나비스타 소노마 코스트 피노 누아’는 캘리포니아 최초의 부티크 와이너리인 부에나비스타에서 생산된 대표 피노 누아다. 미국 피노 누아의 기준이 된다는 평가를 받는 와인으로 가격은 9만원대.

투명한 루비 빛깔에 베리류와 초콜릿, 카더몬이 어우러진 향, 스파이시한 끝맛이 모든 감각을 만족시킨다. 이 밖에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카운티에서 생산된 ‘오 봉 클리마 피노 누아’ 역시 5만원 안팎의 가격으로 피노 누아의 섬세함을 충분히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만~50만원대 프리미엄 피노 누아

캘리포니아 앤더슨밸리에서 생산된 ‘리드 홀랜드 딥 엔드 피노 누아’는 세련된 라벨만큼 감각적인 피노 누아를 선보인다. 가격은 19만원대다.

한국에는 아직 낯선 메이커지만 미국에선 꾸준히 파커포인트 90점 이상을 획득하며 검증을 받았다. 첫 향에선 체리와 라즈베리, 바닐라와 허브 등이 다양하게 피어오른다.

입 안에 머금을 땐 높은 산도와 잘 정제된 타닌의 조화가 부드럽다. “가장 이상적인 순간에 즐기는 피노 누아를 만들고 싶었다”는 와인 생산자 애슐리의 바람이 인상적이다.

20만원대 미국 피노 누아 중에선 ‘하트퍼드 코트 파 코스트 피노 누아’도 손꼽힌다. 소노마코스트 지역에서 빚어진 이 피노 누아는 연간 1만 병 정도만 소량 생산된다.

이 때문에 숨겨진 다이아몬드 같은 와인으로도 불린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 방미 당시 백악관 환영 만찬에 나온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30만원 이상 가격대에선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1등급 포도밭에서 생산된 프리미에 크뤼급 피노 누아를 맛볼 수 있다. ‘도멘 흐모리케 프리미에 크뤼 뤼드쇼’는 부르고뉴에서도 손꼽히는 피노 누아 산지인 코트 드 뉘의 뉘생조르주 마을에서 생산됐다. 때로는 자주색에 가까운 강렬한 루비 빛깔이 특징이다.

첫 향에선 체리와 딸기, 블랙커런트가 피어오르더니 점차 와인이 열릴수록 가죽과 트러플, 으깬 자두의 숙성된 향이 폭발한다. 섬세함과 견고함, 활력이 공존하는 이곳만의 피노 누아다.

도멘 흐모리케의 피노 누아 중에선 인근 1등급 포도밭 레 다모드에서 생산된 ‘도멘 흐모리케 프리미에 크뤼 레 다모드’도 시도해볼 만하다. 가격은 10만원대로 부담이 작은 편이다.

경사진 레 다모드의 테루아를 흡수하고 자란 피노 누아는 높은 산도와 복합적인 풍미를 선사한다. 프리미에 크뤼 피노 누아를 처음 시도하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하다.

부르고뉴 피노 누아의 백미는 특급 포도밭에서 생산된 그랑 크뤼 와인이다. 그중에서도 ‘루이라투르 코르통 그랑시 그랑 크뤼’는 50만원대의 비싼 가격에도 언젠가는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피노 누아다.

부르고뉴의 와인 명가 루이라투르가 그랑 크뤼급 포도밭인 코르통에서 생산했다. 루이라투르는 부르고뉴의 포도밭 중 2%에 불과한 그랑 크뤼를 가장 많이 소유한 와이너리다.

1797년 창업한 루이 라투르의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7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와인 생산 역사가 오랜 부르고뉴 지방에서도 드문 사례다.

이 와인은 코르통에서도 수령이 40년 이상 된 포도나무 4개에서 수확한 최상의 포도로만 빚어졌다. 잔에 따르면 가넷처럼 깊은 붉은 빛과 딸기, 꽃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향이 인상적이다.

체리와 감초의 은은한 향미도 오랫동안 남아 오감을 충족시킨다. 2019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수입박람회 프랑스관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 건배를 제안한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