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 "SNS 글 믿기 어려워…한국정부도 보호의무 방기"
"히잡 미착용 이란선수 자진귀국 맞나"…해명 요구
시민·인권단체들이 최근 히잡을 착용하지 않고 서울에서 열린 대회에 출전했던 이란 클라이밍 선수 엘나즈 레카비(33)의 강제 귀국조치 의혹을 해명하라고 이란 정부에 촉구했다.

16개 단체 연대체인 '이란시위를 지지하는 한국시민모임'은 19일 서울 용산구 주한이란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레카비 선수의 SNS에 자의로 귀국했다는 해명이 있었으나, 한국 일정이 남아있었고 선수 개인이 마음대로 일정을 조절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면 믿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지에서는 레카비가 공항에서 곧바로 정치범수용소인 에빈 교도소로 이동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며 "이는 히잡 착용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여성 선수를 노골적으로 탄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히잡 미착용 이란선수 자진귀국 맞나"…해명 요구
이란 출신 여성 박씨마는 "레카비는 이란에서 히잡 문제로 시위하고 죽어가는 여성들을 지지하는 의미에서 히잡을 벗고 경기했다"며 "그녀의 행동이 이란의 많은 여성에게 용기를 줬기 때문에 억지로 데려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국제경기를 주최하면서 선수보호 의무를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김연주 난민인권네트워크 변호사는 "난민협약과 고문방지협약 가입국인 한국은 생명·신체 위험이나 고문 등 비인도적 처우가 발생할 수 있는 국가로 (선수를) 송환해서는 안 된다"며 "지금이라도 선수가 출국하는 과정의 모든 기록과 영상자료를 확보해 위법한 강제송환이 있었는지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체 관계자 4명은 히잡 시위에 연대한다는 의미에서 가위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직접 자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히잡 미착용 이란선수 자진귀국 맞나"…해명 요구
기자회견 도중 이란대사관 측이 차량을 이용해 행사를 방해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대사관 측은 입차·출차를 이유로 기자회견이 열린 주차장 입구를 한동안 차량으로 가로막았다.

이 때문에 기자회견이 중단되자 참가자들이 차량을 현수막으로 둘러싸고 구호를 외치며 항의했다.

이란에서는 지난달 13일(현지시간) 마흐사 아미니(22)가 히잡착용 불량을 이유로 체포된 뒤 의문사한 사건을 계기로 반정부 시위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달 10∼16일 서울에서 열린 2022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레카비 선수가 16일부터 연락이 두절됐고 여권과 휴대전화를 압수당한 채 귀국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와 강제귀국 의혹이 불거졌다.

전날 레카비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히잡 문제가 불거진 것은 나의 부주의였다.

국민에게 걱정을 끼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글이 게시됐다.

이 게시물에는 "현재 팀원들과 함께 예정된 일정에 따라 귀국길에 올랐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