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호주 前 EU 집행위원장 "탈세계화 불확실성 넘으려면…비판적 사고 갖춘 인재 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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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연설자 인터뷰 - 조제 마누엘 바호주 前 EU 집행위원장
세계화의 양상, 과거와 달라져
무형의 디지털 세계화는 가속
적극적 협력과 개방만이 살 길
기후변화 분야로 첫단추 끼워야
세계화의 양상, 과거와 달라져
무형의 디지털 세계화는 가속
적극적 협력과 개방만이 살 길
기후변화 분야로 첫단추 끼워야
“탈세계화 시기에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사고를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골드만삭스 인터내셔널 회장(전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사진)은 1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알고 실행해온 원칙들을 적용할 수 없는 탈세계화 시대에는 인적 자원에 대한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포르투갈 총리를 지낸 바호주 회장은 다음달 2일 열리는 ‘글로벌인재포럼 2022’에서 ‘세계 대전환과 탈세계화’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할 예정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기후 변화, 팬데믹 등 세계인이 당면한 주요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열쇠가 ‘협력’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바호주 회장은 “탈세계화의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협력 가능성은 열려 있다”며 “데이터로 보면 느린 속도이긴 하지만 여전히 무역과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세계화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팬데믹 이후 디지털화가 가속화하면서 무형의 세계화가 늘어났고 유형의 상호작용이 줄어드는 것을 상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바호주 회장은 “물질적 상호작용이 줄어들면서 공급망 혼란 등 경제 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하고 있다”며 “탈세계화를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더 큰 마찰과 불확실성, 비용을 초래하는 또 다른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탈세계화의 동인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꼽았다. 바호주 회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탈세계화 가능성을 높이는 상황을 촉발하고 악화시킨 것은 맞지만 글로벌 경제의 디커플링(단절)과 탈세계화의 가장 중요한 동인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이 늘어난 것”이라며 “이미 팬데믹 기간에 공급망을 새로 짜려는 여러 시도를 봐 왔다”고 말했다.
탈세계화 시대에 한국의 역할에도 주목했다. 한국은 매우 성공적이고 개방적이며 경쟁력 있는 경제를 갖추고 있어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유럽이 그렇듯 한국도 개방된 경제와 사회를 유지하는 데 관심이 있다고 본다”며 “비슷한 경제모델을 채택한 나라들과 강력한 유대를 유지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의장도 맡고 있는 바호주 회장은 팬데믹과 싸우기 위해 협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바이러스는 비자가 필요하지 않고, 국경에서 멈추지도 않는다”며 “자국중심주의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기후 변화에 대한 협력도 강조했다. 그는 “지구 어느 곳에 있어도 기후 변화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적극적인 글로벌 협력이 필요한 부분은 개방을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바호주 회장도 협력이 쉽지 않다는 점은 인정했다. 이 때문에 기후 변화와 같이 ‘정치적으로 오염되지 않은 분야’가 글로벌 협력의 첫 단계로 적합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세계적인 여론이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행동이 당장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협력이 쉽고, 저항을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는 세계적 불행이라고 했다. 전쟁 당사국은 물론 영향권에서 벗어나 보이는 미국과 중국 역시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은 지난 수십 년간 누려온 세계화에 따른 이익을 향유하기 어렵게 됐다고 했다. 중국에 러시아보다는 미국과 유럽 시장이 더 중요할 것이라는 평가다. 바호주 회장은 “러시아의 공격적인 입장은 세계화를 더 어렵게 했고, 디커플링 가능성을 더 높였다”며 “이것은 명백하게 중국의 이해관계에 어긋난다”고 평가했다.
미국 일부에서 제기되는 ‘미국 수혜설’도 반박했다. 미국이 유럽과 같은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진 않지만 이번 전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이끌어온 세계질서가 큰 도전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는 “러시아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저개발국들이 가진 반식민주의, 반제국주의 분노를 이용하려는 시도가 보인다”며 “이 같은 마찰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지켜온 현재 시스템의 유지를 어렵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탈세계화 시기에 필요한 인재가 되려면 비판적인 사고와 적응력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특히 STEM으로 불리는 과학 기술 공학 수학뿐 아니라 인문학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바호주 회장은 “인문학은 젊은이들이 비판적 사고를 하는 능력을 키워준다”며 “이는 급격히 바뀌고 변동성이 큰 환경을 잘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기업에는 경쟁력 향상뿐 아니라 적응 능력, 위험관리 능력, 다양한 시나리오 예측 능력, 거대한 불확실성 준비 능력 등에 투자해야 할 시기라고 조언했다. 그는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회복력”이라며 “매우 극단적인 상황을 포함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이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바호주 前 EU집행위원장은
조제 마누엘 바호주 골드만삭스 인터내셔널 회장은 포르투갈 총리를 거쳐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맡아 EU를 이끌었다. 재임 기간에 EU 통합 강화, 자유무역 확대, 기후 변화 대응 등에 집중했다. 바호주 회장은 지난 5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년 만에 스위스에서 대면으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해 탈세계화의 위험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1956년 포르투갈 리스본 출생 △리스본대 법학과 졸업 △스위스 제네바대 경제·사회학 석사 △미국 조지타운대 국제정치학 박사 △포르투갈 외무장관, 총리 △EU 집행위원장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조제 마누엘 바호주 골드만삭스 인터내셔널 회장(전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사진)은 1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알고 실행해온 원칙들을 적용할 수 없는 탈세계화 시대에는 인적 자원에 대한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포르투갈 총리를 지낸 바호주 회장은 다음달 2일 열리는 ‘글로벌인재포럼 2022’에서 ‘세계 대전환과 탈세계화’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할 예정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기후 변화, 팬데믹 등 세계인이 당면한 주요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열쇠가 ‘협력’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바호주 회장은 “탈세계화의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협력 가능성은 열려 있다”며 “데이터로 보면 느린 속도이긴 하지만 여전히 무역과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세계화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팬데믹 이후 디지털화가 가속화하면서 무형의 세계화가 늘어났고 유형의 상호작용이 줄어드는 것을 상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바호주 회장은 “물질적 상호작용이 줄어들면서 공급망 혼란 등 경제 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하고 있다”며 “탈세계화를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더 큰 마찰과 불확실성, 비용을 초래하는 또 다른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탈세계화의 동인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꼽았다. 바호주 회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탈세계화 가능성을 높이는 상황을 촉발하고 악화시킨 것은 맞지만 글로벌 경제의 디커플링(단절)과 탈세계화의 가장 중요한 동인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이 늘어난 것”이라며 “이미 팬데믹 기간에 공급망을 새로 짜려는 여러 시도를 봐 왔다”고 말했다.
탈세계화 시대에 한국의 역할에도 주목했다. 한국은 매우 성공적이고 개방적이며 경쟁력 있는 경제를 갖추고 있어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유럽이 그렇듯 한국도 개방된 경제와 사회를 유지하는 데 관심이 있다고 본다”며 “비슷한 경제모델을 채택한 나라들과 강력한 유대를 유지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의장도 맡고 있는 바호주 회장은 팬데믹과 싸우기 위해 협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바이러스는 비자가 필요하지 않고, 국경에서 멈추지도 않는다”며 “자국중심주의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기후 변화에 대한 협력도 강조했다. 그는 “지구 어느 곳에 있어도 기후 변화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적극적인 글로벌 협력이 필요한 부분은 개방을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바호주 회장도 협력이 쉽지 않다는 점은 인정했다. 이 때문에 기후 변화와 같이 ‘정치적으로 오염되지 않은 분야’가 글로벌 협력의 첫 단계로 적합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세계적인 여론이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행동이 당장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협력이 쉽고, 저항을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는 세계적 불행이라고 했다. 전쟁 당사국은 물론 영향권에서 벗어나 보이는 미국과 중국 역시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은 지난 수십 년간 누려온 세계화에 따른 이익을 향유하기 어렵게 됐다고 했다. 중국에 러시아보다는 미국과 유럽 시장이 더 중요할 것이라는 평가다. 바호주 회장은 “러시아의 공격적인 입장은 세계화를 더 어렵게 했고, 디커플링 가능성을 더 높였다”며 “이것은 명백하게 중국의 이해관계에 어긋난다”고 평가했다.
미국 일부에서 제기되는 ‘미국 수혜설’도 반박했다. 미국이 유럽과 같은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진 않지만 이번 전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이끌어온 세계질서가 큰 도전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는 “러시아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저개발국들이 가진 반식민주의, 반제국주의 분노를 이용하려는 시도가 보인다”며 “이 같은 마찰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지켜온 현재 시스템의 유지를 어렵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탈세계화 시기에 필요한 인재가 되려면 비판적인 사고와 적응력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특히 STEM으로 불리는 과학 기술 공학 수학뿐 아니라 인문학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바호주 회장은 “인문학은 젊은이들이 비판적 사고를 하는 능력을 키워준다”며 “이는 급격히 바뀌고 변동성이 큰 환경을 잘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기업에는 경쟁력 향상뿐 아니라 적응 능력, 위험관리 능력, 다양한 시나리오 예측 능력, 거대한 불확실성 준비 능력 등에 투자해야 할 시기라고 조언했다. 그는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회복력”이라며 “매우 극단적인 상황을 포함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이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바호주 前 EU집행위원장은
포르투갈 총리 출신 10년간 유럽연합 이끌어
조제 마누엘 바호주 골드만삭스 인터내셔널 회장은 포르투갈 총리를 거쳐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맡아 EU를 이끌었다. 재임 기간에 EU 통합 강화, 자유무역 확대, 기후 변화 대응 등에 집중했다. 바호주 회장은 지난 5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년 만에 스위스에서 대면으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해 탈세계화의 위험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1956년 포르투갈 리스본 출생 △리스본대 법학과 졸업 △스위스 제네바대 경제·사회학 석사 △미국 조지타운대 국제정치학 박사 △포르투갈 외무장관, 총리 △EU 집행위원장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