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간'이라고 하면 으레 생길 수 있는 질환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음주에서 비롯되는 알코올성 지방간은 한동안 술만 끊어도 쉽게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지방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건 '비알코올성 지방간'으로 알코올성 지방간과 다르다.
최근 의학계에서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암과 심부전, 치매 등의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간에 지방이 5% 넘게 쌓인 상태를 말한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서구화된 식습관, 운동 부족 등으로 영양 섭취가 과도해지면서 남은 영양분이 간에 중성지방으로 쌓여 발병하는 질환이다.
15일 국내외에서 발표된 최신 의학 논문을 종합하면,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여러 추적 관찰 연구에서 그 자체로 간염, 간경화 등으로 악화할 뿐만 아니라 이차적으로 췌장암과 심부전, 치매, 심혈관질환 등의 치명적인 질병 발생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연구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견줘 10년 내 심혈관질환이 발병할 위험이 8∼9배까지 높아지고, 췌장암 발병 위험은 17%가량 상승한다는 보고가 나와 있다.
또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는 심부전과 치매가 나타날 위험이 각각 50%, 38%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 연구에서는 비알코올성 지방간 지수가 높은 그룹과 중간인 그룹은 낮은 그룹보다 전체적인 사망 위험이 각각 67%, 19% 높은 것으로 추산됐다.
전문가들은 알코올성 지방간이 금주로 쉽게 치료되는 것과 달리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식생활 습관을 크게 바꾸지 않는 이상 치료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더욱이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대부분 증상이 없어 진단이 늦는 게 맹점이다.
증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른쪽 상복부가 답답하거나 약간 불쾌한 느낌이 드는 정도다.
하지만 우리나라 성인 3~4명 중 1명은 비알코올성 지방간에 해당할 정도로 유병률이 높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최종기 교수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초기에 증상이 없고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염증 반응이 생겨 지방간염이 되면 간병변, 간암까지 진행될 수 있다"면서 "이때부터는 각종 암은 물론 심혈관질환 등의 합병증이 생길 위험이 높은 만큼 조기에 치료하고 환자 스스로 관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자가진단 체크리스트를 이용하면 조기 발견에 도움이 된다.
체크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만약 특별하게 느껴지는 증상이 없더라도 7가지 중 여러 개가 해당한다면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① 허리둘레나 체중이 정상 수치보다 높다.
② 평소 패스트푸드나 튀김 등 고칼로리 음식과 야식을 즐긴다.
③ 당뇨병 또는 고지혈증이 있다.
④ 소화가 잘 안 되고 가스가 차는 느낌이다.
⑤ 오른쪽 상복부에 가끔 뻐근한 느낌이 든다.
⑥ 소변이 진한 갈색을 띠고 대변의 색이 밝아졌다.
⑦ 아침에 일어나기 어렵고 피로와 권태감이 오랫동안 지속된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치료하는 확실한 약은 아직 없다.
따라서 비알코올성 지방간과 관련된 당뇨병, 비만, 대사증후군 등의 원인을 먼저 치료해야 간도 좋아진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 생약제 등은 사용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첫째는 체중을 줄여야 한다.
대부분의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는 과체중 혹은 비만을 동반한다.
근육량과 체지방량을 측정해 정확하게 분석하는 게 좋겠지만, 체질량지수(BMI)와 허리둘레만으로도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체질량지수는 몸무게(㎏)를 키(m)의 제곱으로 나눠 계산한다.
이 수치가 25를 넘으면 비만으로 본다.
허리둘레의 경우 남자는 90㎝, 여자는 80㎝가 넘으면 복부비만에 해당한다.
만약 비알코올성 지방간으로 진단됐다면 현재 체중의 10%를 3~6개월 이내에 서서히 줄여야 한다.
너무 갑작스러운 체중 감량은 오히려 지방간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두 번째로 식사량을 줄여야 한다.
식사량은 한 번에 급격히 줄이는 대신 조금씩 줄이는 방법이 좋다.
또한 식사를 거르는 것은 그다음 식사 시간에 과식을 부를 수 있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야식을 피하고 기름에 튀긴 음식보다는 삶은 음식이 권장된다.
또 당분이 들어간 음료수 대신 물이나 차 종류를 마시는 게 좋다.
라면, 케이크, 삼겹살, 햄, 콜라 등 열량이 높은 음식을 과하게 섭취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평소 식습관을 한 번에 바꾸기가 쉽지 않은데, 바꿔야 좋아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노력해야 한다.
세 번째는 운동이다.
운동은 각자의 상황과 체력에 맞게 빠르게 걷기, 자전거 타기, 조깅, 수영, 등산 등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일주일에 3번 이상, 한 번 할 때 30분 이상 하는 것이 좋다.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할 수 있으면 더 좋다.
몸이 땀으로 촉촉이 젖고 옆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정도가 바람직하다.
다만 무작정 운동을 시작하기보다는 준비 운동을 철저히 하면 혹시 모를 몸의 이상을 미리 방지할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