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불끄기 모드…채권 금리 2∼3%p 상승 대비"
영국 연기금들, BOE 국채매입 '데드라인' 전 앞다퉈 현금 확보
영국 금융시장 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이 실시한 긴급 국채 매입 조치의 종료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연기금들이 금융위기 가능성을 우려해 앞다퉈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시간) 영국 연기금들이 '실시간 불 끄기 모드'에 들어갔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평가받아온 영국 국채시장이 최근 요동치면서 연기금들은 추가 담보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BOE는 시장 일각의 연장 기대에도 국채 매입을 예정대로 오는 14일 끝내겠다고 밝힌 상태다.

앤드루 베일리 BOE 총재는 지난 11일 연설에서 연기금 등에 유동성 확보를 주문하며 "(예고대로 국채 매입이 끝날 14일까지) 이제 사흘 남았다.

일을 마쳐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영국 연기금들은 그동안 장기 국채 등을 담보로 한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자산과 부채의 현금흐름을 매칭하는 부채주도투자(LDI) 전략을 활용해왔다.

LDI는 파생상품을 이용해 채권 금리 변동에 따른 위험성을 관리할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이를 통해 주식 같은 고수익 상품 투자 여력을 늘려온 것이다.

영국 연기금의 LDI 투자 자산은 작년 기준 1조6천억 파운드(약 2천530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지난달 BOE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 속에 발표된 영국 정부의 감세안으로 시장 불안이 고조되며 국채 금리가 뛰자 연기금들은 담보가치 하락으로 유동성 부족에 직면한 상태다.

영국 연금펀드들은 현금 마련을 위해 앞다퉈 보유 국채 매도에 나섰고 이 여파로 국채 금리가 다시 올라 마진콜(자산가치 하락에 따른 추가 증거금 납부 요구)을 받는 악순환이 이어지자, BOE가 긴급히 국채 매입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BOE가 12일 하루 동안 40억 파운드(약 6조3천억원) 이상의 장기물 국채를 매입했다고 밝힌 가운데, 30년물 국채 금리는 이날 장중 한때 5%를 돌파했다가 4.8%로 내려오기도 했다.

시장관계자들은 연기금이 자산 매각을 통해 BOE의 국채 매입 프로그램 종료를 대비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60억 파운드(약 9조5천억원) 규모 연금을 신탁 관리하는 한 인사는 최근 상황에 대해 "정말 '스트레스 테스트'였다"면서 BOE의 국채 매입 이후 포트폴리오의 20% 정도를 팔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공포에 질리지 않았지만 즉시 자산 리밸런싱(비중 재조정)을 위해 조치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면서 의지와 상관없이 유동성이 높은 자산을 매각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연금 컨설턴트는 "자산관리인들이 고객들에게 국채금리가 3%포인트 정도 올라도 견딜 수 있게 담보를 늘리도록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금융업계가 2천억∼3천억 파운드(약 316조∼474조원) 수준의 추가 유동성을 필요로 하며 현재까지 많게는 3분의 2 정도를 확보했을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한 투자회사 최고경영자(CEO)는 "대다수 연기금이 다른 보유자산 매각 없이 14일까지 2∼3%포인트 채권 금리 상승을 견딜 수 있기를 원한다"면서 최대한 보수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BOE는 국채 금리 상승에 따라 비은행권 금융시스템 일부가 취약해질 가능성을 경고한 것으로 이날 전해졌다.

지난달 30일 BOE의 금융정책위원회(FPC) 회의록에 따르면 회의에서는 전 세계 자산 가격의 추가 조정에 대해 논의했으며, 특히 이러한 조정이 신용위험 우려와 함께 일어날 경우 머니마켓펀드(MMF) 등에서 과도한 환매가 나올 가능성을 거론했다.

또 연기금들이 레버리지 포지션을 축소해야 할 상황에 놓일 경우 "투기등급(하이일드) 회사채와 레버리지 론 등 다른 자금시장에 기능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