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578m 왕복 승강기 타고 3분 내려가니 온통 회색 암벽
국내 유일 상업철광석 갱도 아래 조성…"예산 크게 아꼈다"

국내 최저심도 지하실험실이 있다는 강원도 정선 신동읍 예미산.
서울에서 차를 타고 약 2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이곳은 사방이 산이었다.

겉으로는 조용한 산 어느 지하에 우주의 비밀을 캐내려는 연구자들의 열정이 가득한 첨단의 과학시설이 숨어 있었다.

과기정통부·기초과학연구원(IBS)을 출입하는 언론사 취재단 15명은 지난달 29일 '예미랩'을 찾았다.

[르포] 국내 최저심도 지하실험실 '예미랩' 가보니
가장 먼저 안내받은 곳은 지상 3층짜리 지상연구실이었다.

IBS는 과거 함백중고등학교 건물이었다는 이곳을 사들여 일부를 연구실로 꾸몄다.

건물을 통째로 리모델링해 연구실로 바꿀 예산은 없어, 절반 이상은 사용하지 못한 채 방화벽을 쳐뒀다고 IBS 관계자가 웃으며 귀띔했다.

취재진은 이곳에서 예미랩 모형을 보며 설명을 들었다.

하얗게 칠해진 예미랩 모형 옆에는 검게 뭉쳐져 있는 광산 갱도가 함께 보였다.

[르포] 국내 최저심도 지하실험실 '예미랩' 가보니
예미랩은 국내 유일 상업 철광석 광산인 '한덕철광'의 지하갱도 아래에 조성된 연구실이다.

IBS 관계자는 한덕철광이 철광석 채굴을 위해 이미 예미산 지하에 갱도를 뚫어둔 덕에, IBS가 지하실험실 조성을 위해 들여야 하는 비용이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한덕철광과 IBS는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인승용 케이지)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취재진은 이후 안전교육을 받고 안전모와 안전화를 착용하고 지하실험실로 가기 위해 준비했다.

지상연구실에서 차를 타고 약 5분 정도 달리자 예미랩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였다.

푸른 건물 외벽에 IBS 로고가 보였다.

[르포] 국내 최저심도 지하실험실 '예미랩' 가보니
건물 안에는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인승용 케이지가 있었다.

가로 2.8m, 폭 1.5m, 높이 3.5m로 한 번에 4∼5명 정도가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였다.

일반 엘리베이터와 가장 큰 차이점은 1초에 4m씩 내려가는 엄청난 속도였다.

이 승강기는 지하 587m까지 수직으로 왕복하는데, 빠른 속도에도 불구하고 워낙 깊은 곳까지 내려가니 2∼3분을 타고 있어야 했다.

[르포] 국내 최저심도 지하실험실 '예미랩' 가보니
그렇게 도착한 곳은 온통 벽이 회색 암벽이었다.

여기서부터 예미랩인가 싶었으나, 다시 경사도 12%의 터널 782m를 달려야 한다고 IBS 측은 설명했다.

준비된 차를 타고 다시 5분여를 달리자 점점 기온이 오르면서 실험공간이 보였다.

점점 따뜻해지는 이유는 기계열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르포] 국내 최저심도 지하실험실 '예미랩' 가보니
그곳에서 취재진을 맞아준 이재승 IBS 연구위원은 예미랩을 구석구석 소개했다.

기자의 눈에는 아직 연구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예미랩이 그저 텅 빈 땅굴 같았지만, 이 연구위원은 앞으로 들어올 연구 장비와 추진할 연구들이 눈에 그려지는 듯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연구 장비가 들어오고 벽면에 에폭시를 다 바르면 지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르포] 국내 최저심도 지하실험실 '예미랩' 가보니
예미랩에서는 종종 지하수가 작은 수로를 따라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도 있었다.

이 연구위원은 "예미산 지하에서 지하수가 많이 나오지 않아 예미랩 공사에 수월했다"며 "수질검사를 통해 지하수를 마셔도 된다는 판단이 나오면 연구원들이 식수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르포] 국내 최저심도 지하실험실 '예미랩' 가보니
이 연구위원은 기자들에게 높이와 넓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큰 공동도 보여줬다.

그는 이 공간이 대형 액체섬광물질 검출기(LSC)가 들어올 자리라고 소개했다.

LSC는 태양과 초신성 등에서 날아오는 중성미자를 검출해 중성미자의 특성을 규명하기 위한 설비다.

이를 위해 LSC에 구축하는 액체섬광물질의 양만 약 2천500t으로, 국내에서 진행되는 입자물리 실험 중 최대 규모다.

예미랩에서 마지막으로 본 곳은 중성미자 연구를 하는 IBS AMoRE팀의 연구시설이었다.

연구진은 이곳에서 '중성미자 미방출 이중베타붕괴' 현상을 포착하기 위한 실험을 하게 된다.

이 연구위원은 IBS는 양양에 있는 지하실험실에서 몰리브덴 동위원소를 활용해 이중베타붕괴를 관찰하는 실험을 수행해왔는데, 예미랩에서는 더 규모를 키우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르포] 국내 최저심도 지하실험실 '예미랩' 가보니
IBS 연구팀이 관측하려는 중성미자가 발생하지 않는 이중베타붕괴 현상을 실제로 포착할 확률이 매우 낮으므로, 예미랩에서는 몰리브덴 결정 크기를 기존 6㎏에서 22㎏까지 키운다.

이 연구위원은 중성미자 없는 이중베타 붕괴 실험과 관련해 "(붕괴를) 발견할 가능성은 작다"면서도 "그래도 언젠가 관측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소망했다.

그러면서 "연구가 재밌다.

재밌으니까 이런 험난한 환경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