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이야말로 이기적 전략"…'협력의 유전자'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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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심리학자가 쓴 협력과 배신, 진화에 대한 이야기
브라질에 서식하는 개미, 폴레리우스 푸실루스는 해 질 무렵 땅 밑에 있는 안전한 보금자리로 돌아간다.
그런데 개미굴로 돌아가지 않고 남는 일개미가 있다.
그들은 동료 개미들이 개미굴로 내려가기를 기다렸다가 모래알 같은 부스러기들을 끌어와 개미굴 입구를 감쪽같이 막아버린다.
굴을 막은 후 일개미들은 개미굴로 들어갈 수 없으니 굴과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떠난다.
개미굴 근처에서 죽으면 포식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위험이 있어서다.
보호자 임무를 완수한 일개미들은 그날 밤 대부분 죽음을 맞이한다.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따르면 동식물은 대부분 생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런데 폴레리우스 푸실루스는 집단을 위해 자신을 버린다.
이런 자기희생적인 태도가 동물의 세계에서 가능한 일일까?
런던대 생물학과에서 진화심리학을 가르치는 니컬라 라이하니 교수는 최근 번역 출간된 '협력의 유전자'(한빛비즈)에서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협력이야말로 모든 생명의 탄생과 진화를 추동케 한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자연 상태에서 협력의 예는 흔히 볼 수 있다.
미어캣은 자신의 생식을 포기하면서까지 조력자를 자처하며 동료의 새끼를 가르친다.
대규모 군락 생활을 하는 흡혈박쥐는 피를 구하지 못한 동료를 위해 섭취한 피를 게워내 그들과 나눈다.
이는 리처드 도킨스가 지적한 것처럼 '이기적 유전자' 때문이다.
여기서 '이기적'이라는 뜻은 유전자가 교활하고 영악하다는 말이 아니다.
유전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관심사'가 있음을 뜻한다.
그 유일한 목표는 바로 미래 세대로 가는 길을 찾는 것이다.
이런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을 통한 영생'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얼마든지 서로 협력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러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지구의 수많은 생명체는 집단행동과 협력을 통해 수많은 역사적 쾌거를 이뤄냈다.
협력이야말로 종을 존속시키는 '이기적 전략'인 셈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37조2천억 개의 세포가 서로 협력해 현재까지 살아남았다.
이 때문에 저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은 농업이 시작되거나 바퀴의 발명 따위가 아니라 이런 유전자 간의 우연한 협력이 발생한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이라고 말한다.
맹수에 견줘 힘이 부족한 인간은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협력해야 했다.
사냥이나 채집뿐 아니라 생활 기술을 가르치고, 육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방면에서 협력을 통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물론, 협력 과정에서 사기꾼과 배신자도 존재했다.
세포 단위에서는 암세포가 그런 내부 변절자다.
암세포는 협력을 거부하고 우리의 건강을 갉아먹으며 증식하는 속임수 세포다.
여성의 폐경도 협력의 잔인한 면모 중 하나다.
저자에 따르면 폐경이란 수많은 세월 동안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벌어진 진화 대결의 산물이다.
산업화 이전 역사자료를 보면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같은 시기에 아이를 낳아 기를 때 두 사람의 아이가 모두 생존할 확률이 대단히 낮았다.
이에 따라 시어머니가 늦둥이를 갖는 것보다 손주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유전적 관점에서 종의 이득이 크고, 이런 종의 이득에 따라 여성 폐경이 발생했다는 것이 저자의 추론이다.
이처럼 협력 과정에선 여러 시행착오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인류가 더한층 진보하기 위해선 반드시 협력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특히 기후변화, 동식물의 서식지 파괴, 핵무기 등 위험 요소가 산재한 현대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류 역사에서 협력은 동화 속 마술 지팡이 같은 역할을 한다.
잘 사용하면 풍요를 안겨주지만 잘못 사용하면 파멸을 부른다…. 우리가 협력을 잘 이용할 길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 앞에 놓인 지구적 문제로 협력의 범위를 넓히지 못한다면, 우리가 이뤄낸 성공이 우리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이 동화가 행복한 결말을 맞을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
김정아 옮김. 380쪽. 2만2천원.
/연합뉴스
브라질에 서식하는 개미, 폴레리우스 푸실루스는 해 질 무렵 땅 밑에 있는 안전한 보금자리로 돌아간다.
그런데 개미굴로 돌아가지 않고 남는 일개미가 있다.
그들은 동료 개미들이 개미굴로 내려가기를 기다렸다가 모래알 같은 부스러기들을 끌어와 개미굴 입구를 감쪽같이 막아버린다.
굴을 막은 후 일개미들은 개미굴로 들어갈 수 없으니 굴과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떠난다.
개미굴 근처에서 죽으면 포식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위험이 있어서다.
보호자 임무를 완수한 일개미들은 그날 밤 대부분 죽음을 맞이한다.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따르면 동식물은 대부분 생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런데 폴레리우스 푸실루스는 집단을 위해 자신을 버린다.
이런 자기희생적인 태도가 동물의 세계에서 가능한 일일까?
런던대 생물학과에서 진화심리학을 가르치는 니컬라 라이하니 교수는 최근 번역 출간된 '협력의 유전자'(한빛비즈)에서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협력이야말로 모든 생명의 탄생과 진화를 추동케 한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자연 상태에서 협력의 예는 흔히 볼 수 있다.
미어캣은 자신의 생식을 포기하면서까지 조력자를 자처하며 동료의 새끼를 가르친다.
대규모 군락 생활을 하는 흡혈박쥐는 피를 구하지 못한 동료를 위해 섭취한 피를 게워내 그들과 나눈다.
이는 리처드 도킨스가 지적한 것처럼 '이기적 유전자' 때문이다.
여기서 '이기적'이라는 뜻은 유전자가 교활하고 영악하다는 말이 아니다.
유전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관심사'가 있음을 뜻한다.
그 유일한 목표는 바로 미래 세대로 가는 길을 찾는 것이다.
이런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을 통한 영생'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얼마든지 서로 협력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러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지구의 수많은 생명체는 집단행동과 협력을 통해 수많은 역사적 쾌거를 이뤄냈다.
협력이야말로 종을 존속시키는 '이기적 전략'인 셈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37조2천억 개의 세포가 서로 협력해 현재까지 살아남았다.
이 때문에 저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은 농업이 시작되거나 바퀴의 발명 따위가 아니라 이런 유전자 간의 우연한 협력이 발생한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이라고 말한다.
맹수에 견줘 힘이 부족한 인간은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협력해야 했다.
사냥이나 채집뿐 아니라 생활 기술을 가르치고, 육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방면에서 협력을 통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물론, 협력 과정에서 사기꾼과 배신자도 존재했다.
세포 단위에서는 암세포가 그런 내부 변절자다.
암세포는 협력을 거부하고 우리의 건강을 갉아먹으며 증식하는 속임수 세포다.
여성의 폐경도 협력의 잔인한 면모 중 하나다.
저자에 따르면 폐경이란 수많은 세월 동안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벌어진 진화 대결의 산물이다.
산업화 이전 역사자료를 보면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같은 시기에 아이를 낳아 기를 때 두 사람의 아이가 모두 생존할 확률이 대단히 낮았다.
이에 따라 시어머니가 늦둥이를 갖는 것보다 손주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유전적 관점에서 종의 이득이 크고, 이런 종의 이득에 따라 여성 폐경이 발생했다는 것이 저자의 추론이다.
이처럼 협력 과정에선 여러 시행착오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인류가 더한층 진보하기 위해선 반드시 협력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특히 기후변화, 동식물의 서식지 파괴, 핵무기 등 위험 요소가 산재한 현대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류 역사에서 협력은 동화 속 마술 지팡이 같은 역할을 한다.
잘 사용하면 풍요를 안겨주지만 잘못 사용하면 파멸을 부른다…. 우리가 협력을 잘 이용할 길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 앞에 놓인 지구적 문제로 협력의 범위를 넓히지 못한다면, 우리가 이뤄낸 성공이 우리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이 동화가 행복한 결말을 맞을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
김정아 옮김. 380쪽. 2만2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