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신간 '한 번은 불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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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옥 명지대 교수가 탐구한 한국인의 인종차별사
아프리카 출신 D씨는 클럽에 갔다가 입장을 거부당했다.
수단 출신 C씨는 한 호텔과 도급계약을 맺은 세탁업체에서 채용을 거절당했으며 인도 출신 귀화인 A씨도 피부색 탓에 직장에서 동료 교사에게 모욕당했다.
모두 검은 피부색 때문이었다.
피부색에 따른 차별뿐 아니라 문화적 차별도 존재한다.
한국에 사는 중국인 '화교'에 대한 차별이 대표적이다.
국민 상당수가 중국 음식은 즐겨 먹으면서도 여전히 화교를 '짱깨'와 같은 멸칭(蔑稱)으로 부른다.
화교는 100년 이상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이방인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종적·문화적 차별은 언제부터, 왜 발생한 것일까? 최근 출간된 '한번은 불러보았다'(위즈덤하우스)는 근현대 한국인의 인종차별과 멸칭의 역사를 탐구한 대중 연구서다.
저자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개항기부터 시작된 변형된 오리엔탈리즘이 우리 문화에 깊이 스며들어 인종주의를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오리엔탈리즘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연유한 개념으로, 제국주의적 지배와 침략을 정당화하는, 서양의 동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태도 등을 가리킨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식 인종주의는 1876년 개항과 함께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됐다.
당시 서재필, 유길준 등 개화파는 서구의 위계적 인종주의를 진지한 성찰 없이 그대로 수용했다.
이들 엘리트 계층은 독립신문 등 근대적 매체를 창간했고, 이를 통해 대중도 근대 관념인 인종주의를 접했다.
예컨대 서재필·윤치호가 만든 독립신문 사설을 보면 국가를 문명화 정도에 따라 등수를 매기고 위계화한다.
"잉글랜드·아메리카·프랑스·독일은 1등 문명국, 일본·이탈리아·러시아·덴마크는 개화국, 대한제국·청국·태국·이집트 등은 반개화국이다.
" 왜곡된 인종주의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더욱 강화했다.
일본은 한국의 역사와 전통 등을 모두 열등한 것으로 치부했고, 이는 한국인의 의식에 패배감, 수치감, 죄의식, 보상 욕망을 심어줬다.
친일 지식인 이광수는 한국민의 성격적 결함 등을 제시하며 민족을 개조해야 한다고까지 얘기했다.
인종주의의 부상 속에 민족주의도 형성됐다.
역사가 신채호 등이 앞장서 외부에 가해지는 폭력에 대응하고 내부 단결을 강화하고자 민족주의 담론을 꺼내 들었다.
이후 민족주의는 식민지 해방, 근대국가 건설, 분단 극복과 통일, 경제성장, 세계화 추진 등으로 외피를 갈아입으며 한민족 문화에 공고히 뿌리내렸다.
그러나 이는 혈통을 중시하고 동질성과 순수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배타적 민족주의의 단초가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알제리 출신 포스트식민주의 사상가 프란츠 파농을 언급하며 식민지배의 부정적 영향을 설파한다.
파농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앤틸리스 제도 흑인들이 그들을 지배하는 백인들의 사고방식마저 닮아간다고 비판했다.
파농에 의하면 앤틸리스 제도 흑인들은 학교에서 백인이 야만인에 관해 쓴 내용을 공부할 때 세네갈의 흑인을 떠올렸다.
자신들은 절대 흑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앤틸리스 제도의 흑인처럼 우리도 자기 자신은 황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동남아시아인만 황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비판한다.
그는 "오늘날 한국인은 백인을 모방하는 동시에, 같은 인종이지만 경제성장이 더딘 동남아시아인을 멸시하는 태도를 보인다"며 "서구중심주의 속에서 형성된 오리엔탈리즘을 한국식으로 변용하는 우리의 모습을 '복제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이어 "우리는 150여 년 전부터 지독한 인종주의자였다"며 "식민지배의 경험을 통해 '민족'이라는 전통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관용'과 '환대'의 전통을 만들 차례"라고 강조한다.
272쪽. 1만7천원.
/연합뉴스
수단 출신 C씨는 한 호텔과 도급계약을 맺은 세탁업체에서 채용을 거절당했으며 인도 출신 귀화인 A씨도 피부색 탓에 직장에서 동료 교사에게 모욕당했다.
모두 검은 피부색 때문이었다.
피부색에 따른 차별뿐 아니라 문화적 차별도 존재한다.
한국에 사는 중국인 '화교'에 대한 차별이 대표적이다.
국민 상당수가 중국 음식은 즐겨 먹으면서도 여전히 화교를 '짱깨'와 같은 멸칭(蔑稱)으로 부른다.
화교는 100년 이상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이방인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종적·문화적 차별은 언제부터, 왜 발생한 것일까? 최근 출간된 '한번은 불러보았다'(위즈덤하우스)는 근현대 한국인의 인종차별과 멸칭의 역사를 탐구한 대중 연구서다.
저자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개항기부터 시작된 변형된 오리엔탈리즘이 우리 문화에 깊이 스며들어 인종주의를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오리엔탈리즘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연유한 개념으로, 제국주의적 지배와 침략을 정당화하는, 서양의 동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태도 등을 가리킨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식 인종주의는 1876년 개항과 함께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됐다.
당시 서재필, 유길준 등 개화파는 서구의 위계적 인종주의를 진지한 성찰 없이 그대로 수용했다.
이들 엘리트 계층은 독립신문 등 근대적 매체를 창간했고, 이를 통해 대중도 근대 관념인 인종주의를 접했다.
예컨대 서재필·윤치호가 만든 독립신문 사설을 보면 국가를 문명화 정도에 따라 등수를 매기고 위계화한다.
"잉글랜드·아메리카·프랑스·독일은 1등 문명국, 일본·이탈리아·러시아·덴마크는 개화국, 대한제국·청국·태국·이집트 등은 반개화국이다.
" 왜곡된 인종주의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더욱 강화했다.
일본은 한국의 역사와 전통 등을 모두 열등한 것으로 치부했고, 이는 한국인의 의식에 패배감, 수치감, 죄의식, 보상 욕망을 심어줬다.
친일 지식인 이광수는 한국민의 성격적 결함 등을 제시하며 민족을 개조해야 한다고까지 얘기했다.
인종주의의 부상 속에 민족주의도 형성됐다.
역사가 신채호 등이 앞장서 외부에 가해지는 폭력에 대응하고 내부 단결을 강화하고자 민족주의 담론을 꺼내 들었다.
이후 민족주의는 식민지 해방, 근대국가 건설, 분단 극복과 통일, 경제성장, 세계화 추진 등으로 외피를 갈아입으며 한민족 문화에 공고히 뿌리내렸다.
그러나 이는 혈통을 중시하고 동질성과 순수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배타적 민족주의의 단초가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알제리 출신 포스트식민주의 사상가 프란츠 파농을 언급하며 식민지배의 부정적 영향을 설파한다.
파농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앤틸리스 제도 흑인들이 그들을 지배하는 백인들의 사고방식마저 닮아간다고 비판했다.
파농에 의하면 앤틸리스 제도 흑인들은 학교에서 백인이 야만인에 관해 쓴 내용을 공부할 때 세네갈의 흑인을 떠올렸다.
자신들은 절대 흑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앤틸리스 제도의 흑인처럼 우리도 자기 자신은 황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동남아시아인만 황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비판한다.
그는 "오늘날 한국인은 백인을 모방하는 동시에, 같은 인종이지만 경제성장이 더딘 동남아시아인을 멸시하는 태도를 보인다"며 "서구중심주의 속에서 형성된 오리엔탈리즘을 한국식으로 변용하는 우리의 모습을 '복제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이어 "우리는 150여 년 전부터 지독한 인종주의자였다"며 "식민지배의 경험을 통해 '민족'이라는 전통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관용'과 '환대'의 전통을 만들 차례"라고 강조한다.
272쪽. 1만7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