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미국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제정으로 인한 한국 전기차 산업의 피해 우려와 관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최혜국 대우 조항 위반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IRA가 미국 의회를 통과한 이후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가 공개 석상에서 이 같은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다만 한 총리는 FTA 분쟁 해결 절차가 복잡한 만큼 외교적인 해법을 우선해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총리는 20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안보·통일 분야 대정부질문에 참석해 “한국산 전기차 차별이 한·미 FTA의 최혜국 대우 조항 위반이 아니냐”는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한 총리는 이어 “다만 한·미 FTA 규정을 이행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최후의 방법으로 보고 다른 방안을 찾고 있다”며 “한·미 간 대화의 진행 상황을 공동위원회 구성,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가능한 방안 가운데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방한 당시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펠로시 패싱’이 IRA 제정으로 이어졌다는 일각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는 “백악관과 소통해본 결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펠로시 의장의 방한 당시 IRA는 상원을 통과하지 않아 큰 이슈가 아닌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야당 의원들은 정부가 IRA 입법 과정에서 이렇다 할 조처를 하지 않은 점을 거론하며 ‘외교 참사’라고 지적했다.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월부터 입법 과정이 진행됐는데 주미 한국대사관은 법안이 통과되고 나서야 문제를 의식했다”고 비판했다. 한 총리는 “외교적인 측면에서 미흡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IRA 통과로 자동차 산업이 타격을 받는 25개 국가 가운데서는 가장 빠르게 반응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IRA는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에서 조립한 전기차에 대당 7500달러(약 1391만원)의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 자동차 기업들이 현재 북미에서 판매하는 전기차는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역차별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날 한 총리와 야당 의원 사이에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육군 대장 출신인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한 총리에게 질의하는 과정에서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는 대통령 전용 병원인 서울지구병원과 너무 멀어 유사시 골든 타임을 놓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전용 병원의 이름이 공개되자 한 총리는 격분하며 “어떻게 그런 것을 밝히느냐”며 “김 의원은 누구보다 비밀의 중요성을 알고 있어야 할 분”이라고 항의했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