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산 고속차량 韓철도 달릴까…토종기술 경쟁력 악화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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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철도차량 업체, 국내 고속철 사업 참여 검토…현대로템과 경쟁할 듯
철도 부품사들 "국내 시장 보호해야…산업 생태계 붕괴 위험"
스페인 철도차량 업체가 우리나라 고속철도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국내 유일한 고속철도차량 제작 업체인 현대로템이 독점했던 국내 고속철 시장에서 경쟁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기술을 개발하는 등 육성해온 국내 철도 산업이 외국 기업에 '안방'을 내주면 자칫 경쟁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31일 철도업계 등에 따르면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이르면 다음달 오송선 'EMU-320' 고속차량 120량 등 총 136량의 동력분산식 고속차량 입찰 공고를 할 예정이다.
◇ 현대로템·스페인 탈고, 국내 고속철 수주 경쟁
스페인 철도차량 제작사인 '탈고'는 국내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번 코레일 입찰에 참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탈고가 입찰에 참여하면 2005년 이후 17년 만에 '안방'에서 국내 업체와 해외 업체가 고속철 수주를 위한 경쟁을 하게 된다.
현대로템은 2005년 코레일이 발주한 고속차량 사업에서 프랑스 철도차량 제작사인 알스톰을 제치고 최종 낙찰자로 선정된 바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본사를 둔 탈고는 고속차량을 수출한 실적이 있지만, 동력분산식 고속차량을 제작·납품한 실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현대로템은 국가 정책지원을 바탕으로 동력분산식 KTX-이음을 제작·납품한 바 있다.
고속차량은 동력집중식과 동력분산식으로 나뉜다.
동력분산식은 동력 장치가 차량마다 아래쪽에 분산 배치돼 가·감속 성능이 뛰어나고 수송력과 유지보수 용이성 등에서 동력집중식보다 비교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탈고는 동력집중식 고속열차 전문 업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코레일의 입찰 참가 자격 제한이 없어졌기 때문에 이번 동력분산식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코레일은 2020년까지 고속차량 발주 시 시속 250∼300㎞ 이상 최고 속력을 내는 고속차량 제작·납품 실적이 있는 업체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한했지만, 지난해부터 해당 제한 규정을 삭제했다.
코레일은 "조달청에 고속차량 제조업체로 등록한 업체의 입찰을 모두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제한을 두지 않았다"며 "국제 입찰 시 한국과 정부조달협정을 체결한 국가의 국민에 대해서는 국내 기업과 동일한 조건으로 입찰을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한다는 규정을 준수했다"고 설명했다.
코레일은 기술 평가에서 합격 혹은 불합격을 심사한 뒤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를 최종 사업자로 선정할 계획이다.
코레일은 입찰 경쟁이 이뤄지면 더 낮은 가격으로 고속열차를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탈고는 글로벌 수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내 시장에 진출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의 수익보다 납품 실적이 중요한 탈고가 이번 입찰에서 응찰가를 최대한 낮추는 방식으로 수주전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
코레일이 발주한 수원인천발(경부선 등) 고속차량 가운데 가장 납기가 빠른 16량은 2026년 11월까지 최종 납품이 완료돼야 하고, 평택오송선은 2027년 개통될 예정이다.
◇ "해외 기업에 '안방' 내주면 국내 철도 생태계 붕괴 위험"
국내에서는 1996년 국가 선도기술개발사업협의회에서 처음으로 고속차량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됐다.
현재 최고 시속 350㎞급 고속차량 동력 시스템 등 총 71개 고속철 관련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있다.
초기 기술 확보 단계부터 한국형 동력분산식 고속차량 개발과 안정화 단계에 투입된 민관 투자액은 총 2조7천억원에 달한다.
철도업계는 국내 시장이 다른 국가의 시장보다 해외업체의 진입을 쉽게 허용하는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해외 업체는 조달청에 철도차량 물품 공급업체로 등록하고, 해당 업체가 철도차량 물품 제조업체임을 증명하는 소속국의 공식 서류만 있으면 국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와 달리 다른 나라들은 높은 입찰 진입 장벽을 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의 경우 시행사가 발주하면 입찰 공고에 개별 업체들이 신청을 할 수 있지만, 시행사가 입찰 초청서를 발송한 업체들만 최종적으로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2018년 쿠알라룸푸르-싱가포르 고속차량 사업의 경우 운영속도 시속 300㎞ 이상을 내는 고속차량을 납품한 실적을 입찰 자격으로 뒀다.
태국과 튀르키예(터키)도 각각 2018년과 2016년 발주한 고속차량 사업 참가 자격을 동력분산식 차량 제작업체로 한정했다.
글로벌 철도차량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인한 간접 투자 감소로 당분간 발주 물량이 급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철도 시장의 둔화세와 함께 해외 기업의 국내 철도시장 진출까지 이뤄지면 철도업계는 순수 국내 기술이 사장(死藏)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내 업체의 수주량 감소로 고속차량 기술 사용 빈도가 감소하면 연구개발 투자도 줄어들어 결국 철도산업이 해외 기술에 종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철도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면 그때까지 저가로 공급했던 해외 업체들이 다시 가격을 올릴 수도 있다.
철도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쟁을 명분으로 해외 업체의 무분별한 국내 고속차량 사업 입찰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 차원에서 어떠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지 숙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철도차량 부품사들은 이날 코레일에 철도 산업 생태계 보호를 위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달라며 호소문을 보낼 예정이다.
부품사들은 해외 업체에 발주가 이뤄지면 국내 철도 산업 생태계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저가의 중국산 부품을 사용해 단가를 낮춰 입찰 경쟁에 나서는 업체들이 생기는 등의 최저가 낙찰제의 문제도 지적할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철도 부품사들 "국내 시장 보호해야…산업 생태계 붕괴 위험"
스페인 철도차량 업체가 우리나라 고속철도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국내 유일한 고속철도차량 제작 업체인 현대로템이 독점했던 국내 고속철 시장에서 경쟁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기술을 개발하는 등 육성해온 국내 철도 산업이 외국 기업에 '안방'을 내주면 자칫 경쟁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31일 철도업계 등에 따르면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이르면 다음달 오송선 'EMU-320' 고속차량 120량 등 총 136량의 동력분산식 고속차량 입찰 공고를 할 예정이다.
◇ 현대로템·스페인 탈고, 국내 고속철 수주 경쟁
스페인 철도차량 제작사인 '탈고'는 국내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번 코레일 입찰에 참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탈고가 입찰에 참여하면 2005년 이후 17년 만에 '안방'에서 국내 업체와 해외 업체가 고속철 수주를 위한 경쟁을 하게 된다.
현대로템은 2005년 코레일이 발주한 고속차량 사업에서 프랑스 철도차량 제작사인 알스톰을 제치고 최종 낙찰자로 선정된 바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본사를 둔 탈고는 고속차량을 수출한 실적이 있지만, 동력분산식 고속차량을 제작·납품한 실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현대로템은 국가 정책지원을 바탕으로 동력분산식 KTX-이음을 제작·납품한 바 있다.
고속차량은 동력집중식과 동력분산식으로 나뉜다.
동력분산식은 동력 장치가 차량마다 아래쪽에 분산 배치돼 가·감속 성능이 뛰어나고 수송력과 유지보수 용이성 등에서 동력집중식보다 비교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탈고는 동력집중식 고속열차 전문 업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코레일의 입찰 참가 자격 제한이 없어졌기 때문에 이번 동력분산식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코레일은 2020년까지 고속차량 발주 시 시속 250∼300㎞ 이상 최고 속력을 내는 고속차량 제작·납품 실적이 있는 업체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한했지만, 지난해부터 해당 제한 규정을 삭제했다.
코레일은 "조달청에 고속차량 제조업체로 등록한 업체의 입찰을 모두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제한을 두지 않았다"며 "국제 입찰 시 한국과 정부조달협정을 체결한 국가의 국민에 대해서는 국내 기업과 동일한 조건으로 입찰을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한다는 규정을 준수했다"고 설명했다.
코레일은 기술 평가에서 합격 혹은 불합격을 심사한 뒤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를 최종 사업자로 선정할 계획이다.
코레일은 입찰 경쟁이 이뤄지면 더 낮은 가격으로 고속열차를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탈고는 글로벌 수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내 시장에 진출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의 수익보다 납품 실적이 중요한 탈고가 이번 입찰에서 응찰가를 최대한 낮추는 방식으로 수주전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
코레일이 발주한 수원인천발(경부선 등) 고속차량 가운데 가장 납기가 빠른 16량은 2026년 11월까지 최종 납품이 완료돼야 하고, 평택오송선은 2027년 개통될 예정이다.
◇ "해외 기업에 '안방' 내주면 국내 철도 생태계 붕괴 위험"
국내에서는 1996년 국가 선도기술개발사업협의회에서 처음으로 고속차량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됐다.
현재 최고 시속 350㎞급 고속차량 동력 시스템 등 총 71개 고속철 관련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있다.
초기 기술 확보 단계부터 한국형 동력분산식 고속차량 개발과 안정화 단계에 투입된 민관 투자액은 총 2조7천억원에 달한다.
철도업계는 국내 시장이 다른 국가의 시장보다 해외업체의 진입을 쉽게 허용하는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해외 업체는 조달청에 철도차량 물품 공급업체로 등록하고, 해당 업체가 철도차량 물품 제조업체임을 증명하는 소속국의 공식 서류만 있으면 국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와 달리 다른 나라들은 높은 입찰 진입 장벽을 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의 경우 시행사가 발주하면 입찰 공고에 개별 업체들이 신청을 할 수 있지만, 시행사가 입찰 초청서를 발송한 업체들만 최종적으로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2018년 쿠알라룸푸르-싱가포르 고속차량 사업의 경우 운영속도 시속 300㎞ 이상을 내는 고속차량을 납품한 실적을 입찰 자격으로 뒀다.
태국과 튀르키예(터키)도 각각 2018년과 2016년 발주한 고속차량 사업 참가 자격을 동력분산식 차량 제작업체로 한정했다.
글로벌 철도차량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인한 간접 투자 감소로 당분간 발주 물량이 급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철도 시장의 둔화세와 함께 해외 기업의 국내 철도시장 진출까지 이뤄지면 철도업계는 순수 국내 기술이 사장(死藏)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내 업체의 수주량 감소로 고속차량 기술 사용 빈도가 감소하면 연구개발 투자도 줄어들어 결국 철도산업이 해외 기술에 종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철도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면 그때까지 저가로 공급했던 해외 업체들이 다시 가격을 올릴 수도 있다.
철도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쟁을 명분으로 해외 업체의 무분별한 국내 고속차량 사업 입찰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 차원에서 어떠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지 숙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철도차량 부품사들은 이날 코레일에 철도 산업 생태계 보호를 위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달라며 호소문을 보낼 예정이다.
부품사들은 해외 업체에 발주가 이뤄지면 국내 철도 산업 생태계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저가의 중국산 부품을 사용해 단가를 낮춰 입찰 경쟁에 나서는 업체들이 생기는 등의 최저가 낙찰제의 문제도 지적할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