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수사 발전으로 21년만에 진실 밝혀진 대전 은행 강도살인(종합)

범행에 사용한 차에 남겨진 마스크 DNA, 불법게임장서 발견된 것과 일치
사건 발생 7천553일만에 밝혀내…사건 기록만 15만 장

영구 미제로 남을 뻔했던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의 진실이 과학수사 기법의 발전으로 21년 만에 밝혀졌다.

당시 범행에 사용된 차량에서 발견된 마스크에서 DNA를 16년만에 검출하는 데 성공했고, 이것이 충북 소재 불법 게임장에 남겨진 유전자와 일치하는 게 확인되면서 이 사건 피의자 이승만(52)과 이정학(51)을 검거하게 됐다.

백기동 대전경찰청 형사과장은 30일 브리핑을 열어 두 사람의 신상을 공개하고 이들의 검거 경위를 발표했다.

경찰 내부위원 3명·외부위원 4명으로 구성된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는 이날 오전 회의를 열고 이승만과 이정학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 사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들은 2001년 12월 21일 오전 10시께 대전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 지하 1층 주차장에서 현금 수송 차량을 검은색 그랜저로 막아선 뒤 저항하던 김모(당시 45) 출납 과장에게 경찰이 사용하는 총기인 38구경으로 실탄을 발사해 살해하고서 현금 3억원을 들고 달아난 혐의를 받는다.

이 사건 2달여 전인 10월 15일 0시께 대덕구 송촌동 일대에서 도보 순찰 중이던 경찰관을 차량으로 들이받은 뒤 빼앗은 권총을 범행에 사용했다.

검은색 그랜저는 범행 3주 전인 12월 1일 경기 수원에서 시동이 걸린 채 주차된 차량을 훔친 것이었다.

이씨 일당은 여러 차례 국민은행을 방문해 답사하고 차량 안에는 자동 점화장치를 설치, 불을 내 증거를 인멸하려는 치밀함도 보였다.

사건 직후 300ｍ 떨어진 상가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차량을 바꿔 타고 달아난 이들이 경찰에 붙잡히기까지는 2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경찰은 발생 후 1년 동안 목격자·전과자 등 5천321명, 차량 9천276대, 통신기록 18만2천378건을 조사하고, 2만9천260곳을 탐문 수사했지만, 이승만과 이정학의 흔적을 찾는 데 실패했다.

이들은 지난 21년 동안 단 한 번도 수사선상에 오른 적이 없다.

경찰은 이듬해 8월 이 사건 용의자로 20대 3명을 붙잡았지만, 법원은 '범죄증거 소명부족'을 이유로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2011년 대전경찰청에 중요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이 설치되면서 사건은 둔산경찰서에서 지방청으로 넘어왔다.

답보 상태가 이어지던 중 2017년 10월 현장 유류물에서 유전자(DNA)가 검출되면서 수사는 전환점을 맞는다.

이들이 범행에 사용한 차량 내부에 있던 마스크와 손수건에서 잇달아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의 유전자가 검출된 것이다.

경찰은 2001년 마스크를 감식 의뢰했지만, 당시 기술로는 유전자가 검출되지 않았다.

경찰은 이 유전자가 2015년 충북의 한 불법게임장 현장 유류물에서 검출된 유전자와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경찰은 종업원과 손님 등 게임장에 출입했을 가능성이 있는 1만5천 명에 대한 수사 끝에 지난 3월 유전자의 주인을 찾았다.

2001년 당시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작성된 몽타주와 얼굴을 비교하고, 시동이 걸린 차량을 훔쳐 간 전력이 있는 전과자들을 추려 나갔다.

결국 유전자의 주인이 이정학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이후 보강 수사를 해 지난 25일 이씨를 검거했다.

이정학의 진술을 토대로 이어 이승만도 긴급 체포했다.

사건 발생일로부터 7천553일 만이었다.

경찰의 수사기록은 약 15만 쪽에 달한다.

현재 이정학은 범행을 대체로 인정하면서 유족과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승만이 주도적으로 경찰관의 총기를 탈취했고,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현장에서 이승만이 총을 쏘는 등 주도적으로 범행을 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권총은 이승만이 바다에 버렸다는 게 이정학의 진술이다.

이승만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상황이다.

백기동 형사과장은 "두 사람의 성향과 관계, 주변인 진술 등으로 보면 이정학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많이 늦었지만, 미궁에 빠졌던 사건을 해결해 고인과 유족을 위로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학 수사기법의 발전과 범인을 반드시 검거하겠다는 형사의 끈질긴 집념으로 미궁에 빠졌던 사건을 21년만에 해결한 쾌거"라며 "송치 이후에도 검찰과 협력해 권총의 행방과 여죄 유무 등에 대해 수사해 피의자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