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국가배상 인정 판결에 "일관성 결여된 혼란한 판결"
긴급조치 피해자들 "이미 패소 확정된 사람은 어쩌나" 한숨
대법원이 과거의 판례를 뒤집고 유신 시절 긴급조치 9호로 피해를 본 국민에게 국가가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자 피해자 단체는 '만시지탄'이란 반응을 내놨다.

긴급조치 피해자 단체인 사단법인 '긴급조치사람들'은 30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의 판결에 "사필귀정"이라고 말했다.

이 단체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은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위헌적 긴급조치 발령이 불법행위가 되고 그로 인한 피해자는 국가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연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사법농단으로 주문이 뒤집힌 지 7년 5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 바로잡은 판결이란 점에서 실로 만시지탄이라는 느낌"이라고도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기인 2015년 3월 대법원 3부(당시 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긴급조치 9호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원고 패소 취지로 판결했다.

당시 대법원 재판부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로 대통령은 정치적 책임을 질 뿐이고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므로 불법행위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판결은 긴급조치를 위헌으로 판단한 과거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나 대법원의 판결과 모순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대법원이 이날 7년 만에 판례를 변경했지만 과거 패소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겐 효력이 미치지 못한다.

패소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이 다시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기판력(확정판결에 부여되는 구속력)에 반해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단체가 파악하고 있는 긴급조치 9호 피해자는 417명이며, 이 중 패소 판결이 확정된 사람은 193명에 이른다.

단체는 "긴급조치 9호 국가배상 소송 제기자의 상당수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사법농단에 의해 이미 패소 판결을 확정받아 오늘 전원합의체 판결에도 국가배상을 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라며 "똑같이 피해를 본 사람 중 누구는 국가배상을 받을 수 있고, 누구는 사법농단 때문에 패소 판결이 확정돼 배상을 받을 수 없는 이중적 상황"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재판의 일관성이 결여된 이런 혼란한 판결은 도저히 법이라고 할 수 없고 정의라고도 할 수 없다"며 "피해자들의 권리 회복을 위해 대법원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실질적 해결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단체는 국회에도 "사법농단에 의해 부당하게 권리를 박탈당한 피해자들의 권리 회복을 위해 재심 특례법 등 입법 조치를 신속하게 추진해달라"고 요구했다.

/연합뉴스